▲ 최세만/칼럼니스트,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서울=동북아신문]지난 주말 강원도 속초 GTI 무역투자 박람회에 다녀왔다.

먼저 박람회장 가는 길에 양양군 오봉산에 위치한 낙산사(洛山寺)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차량이 막히는 바람에 3시간이면 당도한다는 관광버스가 2시간 넘게 연착되어 다섯 시간도 더 걸렸다.

그 통에 낙산사 정문까지 갔다가 바로 회의장소로 이동했다.

박람회는 ‘박람 행사’라기보다 맥주파티를 하면서 음악 감상이나 하는 이벤트가 전부였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낙산사를 다 둘러 보고나서 갔으면 좋았겠다고 내 혼자 생각했다.

내가 불교사찰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은 내 둘째 아들 녀석이 불교를 열심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공즉시색(空即是色)이란 말이 있다. 마음을 텅 비워두면 재물이 채워진다고 여긴다.

마음이 텅 빈 상태를 둔다는 것은 물질에 욕심이 없거나 청빈한 생활을 한다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도 어떤 개인적인 ‘소망,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학 4학년부터 불교를 접한 차남(次男)한테서 받은 계시다. 차남은 불교공부를 하면서 술, 담배는 금하고 있다.

육식도 전혀 하지 않는다. 명절 같은 공휴일이면 시장에 나가 살아있는 물고기를 사서는 하천에 나가 방생(放生)한다.

그리고 북경시교에 있는 고아원을 찾아 1,000 위안을 기부하기도 했다.

나는 아들 녀석이 하는 이런 행동에 언제나 적극 찬성이다.

나 자신은 불교의 ‘금물’을 철저히 지키지는 못해도 어질고 살생을 꺼려하는 점은 있다.

오늘 이날까지 닭 모가지 한 번 비틀어 본 적 없고, 개목에 칼을 한번 박아 본 일이 없다.

원래 낚시질에 취미가 없는 것도 있겠지만 팔팔 뛰는 물고기를 낚시로 끄집어 올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투우경기 프로를 무지무지하게 혐오한다.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소를 슬슬 약을 올려가면서 서서히 죽이는 것이 어째서 ‘유쾌한 오락’이 될 수 있는지 말이다.

투우는 지독하고 잔인한 천인공노 할 동물 학대라고 본다.

불교에서는 언제나 살생을 피하고 선행 할 것을 바란다.

항상 욕심에서 벗어나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바른 행복관을 선호한다.

항상 삶을 긍정적으로 정의하고, 베풀면서 잠재 된 자신의 고통도 해소시킨다.

명성이나 지위, 재부를 많이 얻는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유명해지려거나 지위를 높이려고 하지 않고, 과욕을 버리는 사람이 현실생활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많다.

명성이나 지위, 만족스러운 생활 속에서 고민이 생길 때 훨씬 더 심각한 불행을 느낄 수 있는 게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올릭픽 동메달리스트들의 행복 점수는 은메달획득자들 보다도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은메달리스트들은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금메달이었겠는데”라고 자탄하지만 동메달선수들은 “하마터면 노메달(NO)될 뻔 했네” 하면서 자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행복, 불행도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가 보다.

공자를 비롯한 우리의 위대한 성인들이 한결같이 “착하게 살라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가장 고상하고 중요한 불교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거기에 주는 대답은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좋은 일만 하라”이다.

이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이지만 머리가 허연 노인들도 좀처럼 잘 실천하지 못한다.

성인이나 불교에서 말한 것처럼 베풀면서 착하게 살고 선행을 하는 것, 모든 면에서 즐거운 느낌이 닿을 때 거기서 만족하고 행복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진정 매일 일상을 평범하면서도 꽉 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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