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희/동포모니터링단장,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서울=동북아신문]전철역이나 TV, 인터넷에서 여행이란 두 글자만 보아도 황금을 발견한 사람처럼 내 눈은 반짝인다. 어떤 곳이지? 무엇이 유명하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 무수한 물음표가 머리에 마구 떠오른다.

아직 국제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국내여행은 감히 2박 3일까지는 몇 번 시도해보았다. 제주도, 전남 목포와 진도 그리고 중국 사천성 성도는 여유롭게 며칠씩 여행을 다녀왔고 경기도 파주 평화동산마을, 동해바다 기차여행, 경주 백제와 부여의 문화탐방, 남이섬과 수목원, 강원도 강릉국제무역박람회, 고양 꽃 축제, 경주 감포, 양평 세미원, 포천의 들무새카페 등 여러 곳으로 하루 혹은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눈을 맞으며 새해 첫날 혼자 여행길에 오르기도 하고 주말에는 친구와 함께, 명절에는 단체여행을 가기도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 공휴일이 연이어 있는 날이면 표를 예매하기도 전에 내 마음은 어딘가로 훨훨 날아다닌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에게 여행을 신나게 다녀도 먹고 살만한가 하고 걱정하기도 한다. 사실 여행 좀 다닌다고 해서 저금한 돈이 거덜이 나는 것도 아니고 여행경비를 남긴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잘 벌지 못할 바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다니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다니다가 여행이라는 이 길 위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도 좋다는 것이 나름대로의 나의 인생관이다.  중국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이런 반상적인 행동에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여행에 미쳐가고 있는지 한번 정리해보았다.  첫째,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여행은 일상의 탈출구이며 활력소이다. 이리저리 치이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다보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많지 않은데 여행만큼은 스스로의 선택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이다. 2박 3일이건 30일이건 간에 내가 주인이 된다. 여행만 나서면 일상의 번뇌는 저 하늘에 멀리 가있고 내가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조차 마술처럼 잊어버리게 된다.  두 번째, 여행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과정 역시 여행이다. 차표를 예매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지라 명절 때면 며칠씩 밤새워 인터넷에서 힘을 뺐지만 표를 놓친 적도 있다. 하지만 기차표나 비행기티켓을 구입하고 여행을 결정한 순간부터 나는 이곳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이미 여행지에 가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일들도 여행전후라면 한 발짝 물러 설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살면서 힘들 때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 여행이기도 하다.  세 번째, 한차례의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이가 들고 작은 키에 뚱뚱한 몸집인데도 멋진 사진 한 장은 건질 수 있다. 여행지의 배경이 아름다운 곳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얼굴, 내 몸매가 잘 나오면 오케이다. 일상에서는 할 수 없던 생각과 평소에는 가질 수 없었던 여유로움, 그걸 가능하게 한 그 여행을 사진 속에 기록하고 여행 후에도 곱씹어 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다. 때로는 가방 속에 넘쳐나는 여러 벌의 옷을 보면서 사진을 찍으러 여행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지만 좋은 생각과 좋은 사진을 담는 것 역시 여행의 덤이라 하겠다.  네 번째, 이미 여행의 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듯, 여행은 중독이다. 물론 여행지에서도 어려운 문제가 있고 계획대로 여행하며 항상 낭만적이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낯선 타지에서 어려운 상황을 잘 해결하고 주체적으로 용기 있게 발을 내딛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그것의 매력을 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여행이다.  다섯 번째, 여행은 글의 소재를 얻는 최대의 기회이다. 여행과 글쓰기는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찌릿찌릿한 일이다. 처음에 여행은 충실한 기록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지난 후부터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백이라기보다는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여행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줬던, 나에게 따뜻함을 안겨줬던 그래서 내가 얻었던 힘과 위로를 바이러스처럼 마구 퍼트리고 싶은 마음에 뭔가를 끊임없이 써 대는 것 같다. 여행기를 쓰기 위해 나는 해설사의 이야기나 기록된 내용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 멋대로 여기 저기 마음대로 쏘다니면서 나만의 감수를 찾는다. 단체로 여행을 가면 복잡한 나머지 감각을 찾을 수 없을 때도 있다. 그 감성적인 정서를 찾기 위해 아침과 저녁을 이용하여 홀로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여섯 번째, SNS를 통해 여행수기와 여행사진들을 누군가에게 자랑하는 것도 쏠쏠한 여행의 재미다. 하나하나의 댓글과 ‘좋아요’를 엄청 즐기는 나르시시즘 형 인간인 나에게 여행은 폼 나는 일이 틀림없다.  일곱 번째, 여행지의 맛있는 먹거리 유혹이다. 먹는 거라면 참지 못하는 나에게 여행지의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더없는 재미다. 여행만 가면 그곳의 특산물은 빼놓지 않고 먹어본다. 여행을 떠날 때면 소풍가는 아이처럼 간식거리를 듬뿍 가방에 챙기는 걸 보면 여행이 나를 젊은 시절로 되돌려놓는 것 같다.  여덟 번째, 멀리에서 휘발유냄새만 맡아도 멀미를 하던 내가 하도 여행을 다니다보니 멀미를 이겨내는 비법을 알아가고 있다. 우선 배속이 든든해야 멀미를 덜하기 때문에 아무리 급해도 먹을 것을 푸짐히 챙겨가며 사탕은 필수로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입에 음식이 끊이지를 않는다. 예전에 비행기에 탑승할 때면 2시간 혹은 4시간을 잠만 자는 멀미약을 먹었는데 지금은 탑승 반시간전과 착륙하기 전 30분전에 물약을 조금 마시면 멀미를 면할 수 있다. 이 또한 여행에서 얻은 소득이라 하겠다.  아홉 번째, 여행의 유혹은 곳곳에 널려있다. 여행에 들뜨는 마음을 정리하려 애쓰고 있는데 문자나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서 날아드는 여행정보 그리고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여행토크쇼,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명승지 소개, 계절 여행지 소개가 내 마음을 현혹시킨다.  이외에도 형용할 수 없는 이유들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 여행이 끝나면 다시 아름답지 않은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또 여행을 꿈꾼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 폰으로 여행지를 검색하고 보이는 곳마다에서 여행 안내서들을 집어서 가방에 넣고 돌아온다.  만약 ‘여행’이라는 대상이 내 눈앞에 실존한다면 양팔을 벌리고 힘껏 안아주고 싶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손을 잡고 친구들에게 최고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너도 한번 사귀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누가 나에게 여행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면 나는 ‘여행은 바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을 떠날 때는 바람난 사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꽃을 열매로 바꿔 달리게 하듯 여행하면서 내 안에 잠재해 있는 감정을 흔들어 깨워 보다 감성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여행은 인생을 가볍게 그리고 훈훈하게 해주는 바람이며 가장 기분 좋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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