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문학상 응모 작품

[서울=동북아신문]줄곧 조선족학교에서 공부했고 거기에다 연변출신이어서 중국어가 짱짱하지 못한 나에게 한국에서 우연하게 중국어 통역 일을 맡게 되었다. 짧은 중국어를 보충하려고 신화자전 하나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택배포장을 뜯으니 큼직한 빨간색 신화자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신화자전을 펼치니 익숙한 중국 병음과 중국 글들이 눈 속으로 확 빨려 들어왔다. 순간 저도 모르게 신화자전을 가슴에 껴안았다. 반가움만이 아닌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작년 가을 사천성 성도에 출장을 갔다가 무후사를 방문했을 때도 이런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무후사는 유비를 비롯하여 중국 3세기를 풍미한 장비, 관우, 제갈량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사당이었다. 무후사에 들어서니 온통 붉은 색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는데 마치 삼국시대를 눈앞에서 보는 듯싶었다. 그 빨간색에 내 몸 전체가 흡수되는 듯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런 내가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빨간색과의 인연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학교 시절 나는 5년간 붉은 넥타이를 목에 매고 다녔고 때로 까먹고 가는 날에는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듣기가 일쑤였다. 언젠가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연길현동성용공사에 모택동저작 학습열성분자인 황순옥을 찾아가서 강연을 들었다. 그때 황순옥은 모택동저작 몇 폐지에 어떤 말씀이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암기하고 있었다. 그 덕에 일개 농촌부녀였던 황순옥은 엽검영 부주석의 초청으로 북경군구에 까지 가서 강연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 전국각지로 다니면서 강연을 했다. 우리 학교도 형세에 발맞추어 모주석 저작 학습바람이 불었다. 반급에서 간부였던 나도 빨간색으로 된 모택동선집을 1권부터 4권까지 열심히 읽었으며 심득필기를 여러 권의 목책에 적었는데 학교 내에서 꽤나 유명세를 탔고 선생님들의 극찬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모택동선집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빨간색에 대해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에는 첫 번째로 홍위병이 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두 번째 부문에 드디어 왼팔에 붉은 완장을 달았고, 그 후로 쭉 4년의 중학시절을 보냈다. 그 후 문화대혁명시기에 우리 선배들은 홍위병완장을 팔에 달고 일주일동안 밤낮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가서 모주석의 접견을 받았는데 천안문성루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모주석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 들었다. 12년마다 돌아오는 자신의 띠에 해당되는 해가 되면 나와 우리 가족은 그믐달부터 빨간 속옷과 빨간색 허리띠를 둘러 화를 물리치기도 했다. 결혼 혹은 생신 축의금도 행운을 뜻하는 빨간색 봉투 “훙보(红包)”에 넣어 상대에게 전해주는 것이 우리에게는 어느덧 상식이 되어버렸다. 한족들의 전통혼례나 집안장식은 빨간색이 위주였고 설날에 많이 사용되는 홍등(红灯), 폭죽(鞭炮), 대련(对联) 역시 빨간색이다. 지금은 많은 조선족들도 출입문에 복자가 있는 빨간색 그림을 붙이기도 하고 대련을 집에 걸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붉은색을 거부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동네에는 모 기관의 당위서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 집 3대독자 아들이 명문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한족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 일로 해서 그 집의 할머니는 몇 달 후에 돌아가셨고 아내는 속을 태우다 못해 귀가 멀기까지 했다. 그 시기만 해도 조선족이 한족과의 연애나 결혼은 수치였고 금물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조선족사회도 많이 달라졌다. 자녀가 한족배우자를 찾는 것은 별로 흠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이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같은 조선족보다 한족을 더 선호한다.  절반 이상이 한족인 직장에 다니면서 나는 은근히 한족이 싫었는데 한국에서 생활하다보니 드라마도 노래도 음식도 중국 것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중국에 살 때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치포를 한국에서 다문화행사 때마다 원 없이 입는다.  비록 한국에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중국어가 편하며 중국 글씨가 익숙하고 중국국가가 나오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두 눈은 이미 빨간색에 초점을 두고 있고 내 귀는 중국어와 폭죽소리에 민감하며 내 코는 짙은 차향에 절어있고 내 입은 기름진 볶음반찬에 길들어져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빨간색에 물젖어 50여년을 살았으니 어쩌면 빨간색은 내 운명이요, 나의 영원한 그리움인 것 같다.  
 
박연희 프로필 前연길시텔레비죤방송국 책임편집, 연변작가협회 회원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모니터링단 단장사단법인 <조각보> 중국대표한국에서 수필수기칼럼 100여편 발표2007년 kbs 서울프라이즈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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