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만 칼럼니스트/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서울=동북아신문]여자영수가 나왔고 여성장관도 나왔다. 오늘 여성지도자, 여성박사, 여성사업가들이 용솟음쳐 나오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지위, 정치무대에서의 호황을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여자들이 큰 정치는 못한다는 신화가 깨뜨려진 것이다. 여성을 기시하고 배척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던 역사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녕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녀평등은 법적인 평등, 신분의 평등이다. 손가락 놀리고 입술을 놀리는 부드러운 직업영역에선 여성선택이 우선순위다. 현대에는 여자들이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똑 같은 교육을 받기에 그럴 만도 하다. 지금 허다한 분야에서 여성강자, 여성호걸이 출현되면서 사회가 여성을 보는 안광도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여성들의 지위개선, 화려한 성과로 하여 남성들이 주눅이 들 때가 많다. 가정안에서도 가뜩이나 ‘음성양쇄(여자가 세고 남자가 약하다는 뜻)’로 기를 못 펴고 있는 남자들이 눈을 멀뚱멀뚱 굴리며 부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확실히 요즘 보건데 집안에서 부인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허파 빈 남정들은 부인네들에게 치살리고 발라 맞추는 소리가 고양이 소리처럼 들려온다.

‘풍류남아’들은 밖에서 아가씨, 젊은 여인을 껴안고 ‘테면우(帖面舞, 얼굴을 붙이고 추는 춤)’를 추고 집에 들어와서는 금시 부인들의 눈을 슬금슬금 보면서 갖은 은연함을 다 보인다. 좀 더 ‘담대한’ 남정들은 집에서 야금야금 모아 둔 ‘비상용(非常用)’돈을 살그머니 꺼내 가지고는 쌍나위(搡拿欲, 사우나)나 ‘홍등가’에 나가 아가씨를 보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루저녁에 돈을 가랑잎처럼 뿌려가며 즐거움을 향수한다. 그러니 이러한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부인에게 불평불만을, 이 ‘좋은 세월’을 탓할 자격도 없다.

이러한 탈선행위는 남정 자신의 도덕적 타락, 희신염구(喜新厌旧, 새 것을 좋아하고 낡은 것을 싫어한다는 뜻)의 노출인데 부인들도 한 번 쯤 반성할 필요도 있겠다. 부인이 사회에서 잘 나가고 성공했지만 가정안에서 부부생활이 엉망이라는 말들도 간간히 들려온다. 여성들이 결혼생활 몇 년 하고는 권태를 느끼고 젊은 심장이 고동치던 격정도 사라졌다. 우아하고 다정다감하던 그 옛날 모습도 까맣게 잊은 듯싶다. 이런 것이 자제력이 약한 남편들을 엉뚱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아내가 외간 남자를 보면 남편이 무능하고 멍청하다고 뭇 사람들의 삿대질을 받는다. 하얼빈시교에 있던 내 친구의 얘기다. 그 친구는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대에서 입당까지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체구도 작고 천성이 어질고 고지식하다. 안정된 직업도 없다. 스물여섯 살에 타동네서 다른 사람의 소개로 키가 미끈하고 얼굴도 이쁜 처녀를 맞아들였다. 미모의 친구아내를 보는 사람마다 한 번 쯤은 뒤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수근수근 거리기도 했다.

“갸 뭐 볼게 있어~~당원간판을 가졌다구.”

“갸를 보고 왔겠나, 친 형이 부대에서 영급간부니 가문보고 왔겠지…….”

그래도 처음 친구부부는 아기자기한 결혼생활을 했다. 아들 둘씩이나 보았다. 수 년 지나 동네에서 제일 처음 큰 칼러 텔레비전을 갖추었다. 시교에다 제일 먼저 벽돌집도 지었다. 하지만 시시한 추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여자가 돈 많고 잘 생긴 남자들과 바람피워 새 집을 지은 것이 들통 났던 것이다.

소문이 한 입 두 입 건너 친구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이 친구는 모르쇠 했다. 싸워봤댔자 본인이 이득 될 건 하나도 없고 또 ‘인물 고운’ 아내가 탈출이라도 할까봐 두려웠다. 생활은 변화가 크고 윤택해졌지만 엉클어진 친구의 가슴은 녹이지 못했다. 그 후로 술을 더 크게 들면서 찌들어 갔고 결국 간암으로 죽었다. 얼굴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한 결혼의 비극,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친구의 나약함을 보여준 결과이다.

요즘 세월은 여성들이 신랑 당사자의 외모 신장(身长)을 보고, 신랑 쪽의 경제력과 능력을 보는데서 남자, 총각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오늘 남자들이 신부를 데려오자면 최대의 힘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돈이 없고 능력마저 모자라면 신부 얻을 꿈조차 꾸지 말아야 한다.

옛날 ‘고추달리개’를 낳으면 온 집안이 경사나 난 듯이 좋아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들자식을 보고 좋아하던 옛날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아들이면 대를 이을 수 있어 좋다는 생각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게다. 아들 둘을 가지면 동네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 하고 입버릇처럼 외운다.

정말 ‘여성숭배’, 여성 상위 시대다. 모든 면에서 미국 풍속을 좇아 움직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설사 어떤 모순으로 이혼하고, 심지어 아내가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남자가 위자료를 줘야 할 날이 곧 도래 할 것 같다. 남자가 무능하고 또 아내를 사랑해 주지 않아 할 수 없이 아내가 바람을 피우게 됐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남녀평등’이요, ‘부녀해방’ 운동만이 아니라 ‘남성해방운동’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무시당하고 너무 기가 죽어 음양(阴阳)의 조화가 깨어지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여성의 성적 침해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확실히 인권에서 남녀평등 시스템 작동은 잘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돈, 물질 면에서는 평등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가가는데 남자가 더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역대로 여자는 ‘팔리고’ 남자가 ‘사는’ 이 의식과 관습에서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며 처녀가 ‘상품’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프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여성이 자연, 풍속습관의 순리를 잘 따르고 있는 것도 틀림없다. 지금도 남자가 키 크고 힘도 세야 좋은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키 크고 얼굴 잘 생긴 남자를 선호한다. 예쁘고 우월한 여성들은 신랑의 인물체격을 보는 동시에 학벌과 능력, 경제력을 본다. ‘남자동포’들이 장가가기 힘든 주원인이 되기도 하다.

아무리 남녀평등이 잘 되어가는 민주 사회도 남자의 위엄, 존대감은 계속 발양되어야 한다. 남자 절대 다수가 흉금이 여성에 비해 너르고, 키도 크고 힘도 더 세다. 물론 덩치 크고 드살 센 아내한테 매 맞고 사는 남편도 많다. 또 지구력에 있어서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고 수명도 더 길다. 여성은 명예욕이나 허영심, 질투가 남자들보다 얼마나 더 강한지를 모른다. 이것이 여성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명예욕’은 그래도 배우고 노력하고 향상하려고 하는 것이 있어 좋다. 하지만 허영심, 질투는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치게 된다.

아울러 여성이 지나치게 정신적 행복으로 되는 명예추구, ‘벼슬 욕’에 집착하면 다른 희생이 잇따를 수 있다. 그로 인해 부부의 육체적 쾌락은 멀리하게 되고 부부감정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허영심, 과욕은 부부감정뿐만 아니라 기타 방면에서도 큰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그러니 남자들이 모든 면에서 여자를 초월해야 한다. 여성을 잘 ‘지배’하고 잘 리드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학식과 재능을 닦고, 도덕문명에서도 언제나 수양을 닦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천세계’, ‘큰 방향’을 향해 질주할 수 있고, 결혼생활에서도 가정의 질서와 평화가 오래 유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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