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만 행정사/전 아시아투데이 사업국장
[서울=동북아신문]미국의 45대 대통령선거가 화제다. 당연히 당선될 것이라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맥없이 무너지고 이단아 트럼프가 당선됐다. 왜 이런 대형 사고가 터졌을까. 오류는 여러 가지이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론조사 기관, 여론조사 기법과 여론조사에 대한 맹신이다. 둘째는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를 전적으로 믿고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언론의 보도태도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변호사에 개혁적 마인드와 미모를 갖춘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자 직전 대통령 후보였으며,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이라는 화려한 경력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또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는 물론 전국의 언론까지 가세한 지지를 받고 있었으니 누구도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를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론은 트럼프 당선자에게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는 정치경험이 일천한 부동산 재벌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막말을 사용했으며 인종차별, 여성비하는 물론 무슬림 입국금지에 대한 언급까지 모두가 악재로만 활용됐다. 미국의 모든 언론은 트럼프를 미치광이로 표현했으며 공화당의 일부 지도자조차도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지지율이 여전히 클린턴에 크게 뒤지지 않고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다는 점이다. 어째서일까.

단순히 클린턴의 이메일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이 답이 아니다. 미국민이 찾아낸 답은 샤이 화이트(부끄러운 백인)였다. 트럼프의 막말이 싫다는 사람들 때문에 트럼프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 많이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샤이 화이트가 원한 것은 변화였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에서 투표당일 아침에 발표한 클린턴의 95% 당선 가능성은 정작 뚜껑을 열자 반대로 트럼프로 옮아갔다. 기적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적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트럼프가 유세장에서 그렇게 부르짖었던 미국 고립주의, 미국 우선주의에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정책이 미국민의 우선에 있지 않다고 본 것이다. 말의 저변에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면서 미국민의 세금을 쓸 수 없다는 기조가 깔려있다. 여기에는 대 한반도 정책의 큰 변화도 포함돼 있다.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문제가 그것이고 한미 FTA 협상이 그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대한 이해득실을 계산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언론은 지속적으로 트럼프에게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아마 방위비 분담이나 미군철수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한 언급에 따른 여파가 아니었나 싶다. 대한민국에는 트럼프의 당선을 놓고 미국의 정치가 곧 망가질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있다. 어쩌면 트럼프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국민은 현명한 판단을 했다. 클린턴을 지지한 모든 기득권세력에 대항해 트럼프와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럼프와 함께 이겼기 때문이다. 그의 지지자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숨어 있는 백인이라고 미국민은 말했다. 이것이야 말로 개혁이고 변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트럼프가 부동산 재벌이라고 해서 소외되고 못 배운 백인들을 위한 정책을 펴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가소롭게도 보수 신문 하나가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설치는 나라. 또 국민이 그 논리에 따라 뽑아주는 나라. 많은 국민이 하지 말라는 일을 지독하게 독선적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 세력만으로 기어이 해내는 나라. 소통하지 않는 나라. 권좌에서 무당이 춤을 추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어찌 수많은 신문과 방송이 당선될 것이라고 떠든 대통령 후보를 순전히 민의만으로 떨어뜨리는 나라의 국격을 논하는가. 트럼프는 미국과 세계 변화의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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