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바이마을의 상징물 앞에선 필자 박연희 동포모니터링단장
[서울=동북아신문]2016년 10월의 두 번째 목요일 재한중국기업대표단 일행으로 GTI 국제무역투자박람회에 참가하려고 우리는 강원도 속초로 행했다. 차가 막혀 낙산사 구경을 포기하고 단풍이 살짝 물들기 시작한 설악산을 버스에서나마 감상할 수 있었다. 오후 일정인 한중FTA경제협력포럼 및 상담회에 참석하려고 속초 마레몬스 호텔에 이르렀다. 한 시간의 여유시간을 이용해 강릉에서 속초를 잇는 7번국도 바로 옆에 있는 속초해맞이공원으로 나갔다.

속초 8경 중 하나인 이곳은 양양과 대포항, 설악산이 갈리는 교통요지이다. 공원 안에는 설악항 활어회센터와 속초종합관광안내소, 야외공연장, 희망과 화합의 광장, 밀레니엄 광장, 해맞이광장 등이 있었으며 속초시승격 50주년 기념 타임캡슐과 연인의 길, 행복의 길, 사랑의 길, 조각상, 설악산 관문 상징 조형물, 조명 분수대를 갖추고 있다.

활어회센터 2층 옥상에 올라서니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그 아래 맛나게 회를 먹고 있는 사람 풍경이 있었다. 빨간 등대 옆에는 동계스포츠 종목이 그려져 있었으며 스키선수의 활공모습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2011년에 평창올림픽 유치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희망의 광장에는 1990년 고성군에서 열린 세계잼버리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잼버리기념탑과 분수가 있었고 주변에는 30여점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분수대 옆에 눈에 띄는 작품 하나가 있었는데 탄생 99(뭍에 오르다. 김영원 작)였다. 건장한 남자가 바다를 거쳐 땅 속에서 태양이 떠오르듯이 불쑥 솟아오르는 느낌을 통해 희망의 땅임을 상징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리얼한 남자의 나체상이라 감히 그 곁에서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가만히 훔쳐보기만 했다. 김영선의 또 다른 조각품인 성장공간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상징으로 넓고 푸근한 가슴 언덕에서 노는 천진스런 어린이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방풍림 소나무를 지나서 걷다보니 바닷가에 세워진 남녀 한 쌍의 인어연인상을 만날 수 있었다. 1977년 풍랑으로 인해 초토화된 내물치라는 이 마을에서 물질을 하며 살던 한 처녀가 결혼을 약속한 총각이 풍랑에 조난당해 돌아오지 못하자 3년 동안 이 갯바위에 앉아 그리워하다 숨지고 말았다. 동화 속의 인어공주처럼 끝내 이루지 못하였지만 마을사람들이 영원히 사랑을 속삭일 수 있도록 조형물을 세웠다. 그 후 이곳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바닷가 마을로 연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인어상은 가로 150cm, 세로 120cm, 높이 220cm​의 크기로 주변에 돌고래 조각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조각상에 있는 총각의 팔목을 꼭 잡은 채 나도 미래의 사랑을 기원해보았다.

모래가 아닌 자갈이 있는 바닷가라서 그런지 파도소리가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해맞이 공원 벤치에 앉아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설악항은 아쉽게도 그렇게 흔하다는 갈매기는 별로 보이지 않고 넘실대는 파도만이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관광안내소 뒤로 가보았다. 야외공연장과 화합의 광장, 사랑의 길, 연인의 길, 약속의 광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입구에는 그동안 속초시를 찾은 많은 관광객의 수많은 손길들이 들어간 핸드프린팅 작품을 볼 수 있다. 마치 무슨 관문을 지나듯 가로 벽을 지나면 망향의 한과 통일의 염원을 기리며 세운 상징탑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해맞이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설악항을 지나 속초 최대 규모인 대포항이 있었고 인근의 외옹치항의 아담한 어촌의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이밖에도 배낚시 어장이 있는 장사항과 흰 등대와 빨간 등대가 있는 동명항도 보였다. 그곳까지 갈수 없는 아쉬움을 안고 다시 마레몬스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 속초도심을 연결하는 2개의 다리. 왼쪽이 금강대교, 오른쪽이 설악대교, 가운데 있는 마을이 아바이마을이다.
이튿날 오전은 박람회 전시장에서 구경을 하고 점심으로 맛있는 막국수를 먹고 우리 일행 몇 명은 택시를 타고 아바이마을로 행했다. 청초호를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는 속초시는 호수와 동해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청호동 북쪽 끝자락에 작은 출입구를 터놓아 바닷물이 드나들고 고깃배들이 왕래하게 했다. 속초는 6·25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동해안의 이름 없는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쟁 당시 북한에 살던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하면서 빠르게 성장한 항구도시이다. 고향 땅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빈손인 그들이 정착한 곳이 입에 풀칠할 일거리가 많은 청호동이었다. 남자는 고깃배 타고 나가서 어부로 일하고, 아낙네들은 포구로 돌아온 고깃배 그물에서 생선 들을 떼어내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다.

이 같은 신산의 세월의 자취가 아직껏 남아있는 동네가 바로 청호동이다. 속초해수욕장 위쪽으로 난 길을 곧게 따라가다 보면 속초도심을 연결하는 2개의 다리가 세워졌는데 남쪽에 위치한 것은 설악대교, 북쪽 편에 위치한 것은 금강대교이다. 이 대교의 중간에 있는 것이 바로 청호동 아바이마을이다. 길은 좁고 집들은 낮은데 세월을 거슬러 간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마을은 청초호를 막고 있는 모래톱에 형성되었는데 최근에 수로가 만들어지면서 아바이마을 북쪽은 작은 섬으로 바뀌었다.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남하한 실향민들. 한반도의 총성은 1953년에 멎었으나 실향민들의 가슴 속에 사무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60여 년이 지나도 아물 기미 없이 가슴을 더욱 저리게 한다. 두고 온 이북 땅이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실향민들은 매일 아침 북쪽을 보며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아바이마을은 아픈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외지 사람들도 터를 잡았지만 현재까지도 주민의 60%가 함경도 출신이라는 특징을 안고 있다. 현재는 행정명칭이 바뀌어 청호동이라고 불리긴 하나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한다 하여 함경도의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인 아바이를 붙여 ‘아바이마을’이라고 한다.

아바이마을에서 친구가 건네주는 따뜻한 생강차 한잔을 마시면서 해변 가에 있는 조형물들을 바라보았다. 엑스포광장까지 걸어가려고 우리는 설악대교에 올랐다. 이 분홍색 ‘설악대교’와 하늘색 ‘금강대교’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설악과 금강이 만나 통일을 이루는 불씨가 되는 속초가 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설악대교 아래로 큰 배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중앙동과 청호동 사이 바다를 이어주는 갯배가 보였다. ‘멍텅구리 줄배’라고도 불리는 갯배는 50m 바닷길에 줄을 엮어 끌며,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추억의 명물이다. 갯배 선착장 옆에는 가을동화 기념 동상도 있었다.

청초호 뒤로 파란 하늘색의 속초 시내가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로 울산바위를 품은 설악산이 거대한 산줄기를 뽐내고 있었다.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장쾌한 풍경이다. 우리는 설악대교에서 내려 바닷길을 따라 엑스포타워전망대를 행했다. 중국 유커와 중국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한중교류의 밤 ‘치맥파티’를 생각하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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