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자존심 하나로 살아왔는데 유독 그 하잘 것 없는 체중계 앞에서만은 자존심은커녕 한없이 작아진다. 

얼마 전 e마트에서 체중계 하나를 구매했다. 포장을 뜯어보니 진한 빨간색에 얇고 작은 사이즈의 디지털 체중계였다. 허겁지겁 입었던 옷들을 남김없이 그리고 알뜰히 벗어 버리고 체중계에 발을 올려놓았다. 헉 60이란 수자를 넘기고 있었다. 아니겠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체중계에 몸을 실었다. 틀림없는 똑같은 숫자였다. 자세한 숫자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다시 흑판에 60이라는 숫자를 쓰고 곱하기 2를 해보았다. 키가 155cm도 되지 않는데 무게에 120근도 넘으니 한심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허구한 날 다이어트를 웨치고 다니는 50대 여성에게 이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금방까지 앙증맞아 귀엽기만 했던 그 디지털 체중계도 보기 싫어졌다. 체중계를 다시 포장해 보이지 않는 곳에 휙 넣어버렸다.

휴ㅡ긴 한숨을 내뱉으며 베개에 머리를 박고 언제부터 내가 살이 쪘는지 나이를 거슬러 보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40킬로그램이 안되어 헌혈도 하지 않았다. 처녀시절 연애를 할

때도 가녀린 몸이라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남자 부모가 반대를 하기도 했었다. 결혼 후 30살이 다 되는 나이에 임신을 하면서부터 몸이 늘기 시작했고 해산할 때 제왕절개수술을 하면서 면 보자기로 배를 허술하게 동여맸던 탓이기도 하다.

기자일과 방송사업을 하면서 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도 원인 중에 하나다. 그러다가 갑상선항진증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몸이 허약하다고 친구가 태반 두 개를 얻어주었다. 본인 손으로 태반을 씻어서 칼로 작게 저며서 매일 먹기 시작했는데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후로 체중은 50킬로그램을 넘기기 시작했고 몸무게는 거침없이 상승하였다. 

나름대로 노력도 해보았다. 고기식 다이어트라고 해서 아침은 계란 두 개, 점심은 닭고기 가슴살, 저녁은 야채에 소스를 뿌려서 먹었다. 한약다이어트도 해보았다. 두 달 동안 하루건너 등짝에 십여 개의 침을 맞고 부황을 뜨면서 몸에 짓물이 흐르는 것도 참았다. 시중에 파는 다이어트 약을 먹고 설사를 하다가 탈수가 와서 점적주사를 맞기도 했다. 끼니를 줄여보았다. 아침을 먹지 않았더니 저녁때 두 끼 음식이 한꺼번에 배속에서 불러들이는지 주위에 먹을 만한 것은 모조리 먹어야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회식 때 고기파티가 있으면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척 하면서 적게 먹기도 한다. 남들이 술을 마실 때 나는 채소만 집어 먹는다. 

하지만 죄다 수포로 돌아갔다. 당분간 몸에 살이 빠지면 신나서 백화점에 가서 바로 구입했던 옷들은 한 계절도 넘기지 못하고 농짝에 처박혀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동안 살과의 싸움을 하느라 체중계도 여러 개를 바꾸었다. 다이어트가 끝나고 이제는 괜찮겠다 싶어서 체중계를 버리고 나면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체중계를 사야 하는 상황이 무수히 반복이 되었다. 

한번은 지인들과 함께 고급식당에서 비싼 코스요리를 먹었다. 작은 숟가락에 담아도 차지 않는 소량의 알 수 없는 요리가 7,8차정도 나온 듯싶더니 마지막 코스인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고기 한 점에 야채가 살짝 곁들어 나왔다. <무한도전>이란 유명한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다는 멋진 셀프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었다. ‘이 스테이크는 소고기 등심보다 부드럽고 안심보다 맛있습니다.’ 맛은 있는 것 같았지만 고기 한 조각으로 배를 어떻게 불리라는 건지 원망이 갔다. 민초는 어쩔 수 없이 질보다 양이 우선인 걸 모르는 듯싶다.

 체중이 불어서 제일 힘든 것은 어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멋 부리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제일 큰 스트레스다. 올 여름에 어쩌다 공짜로 워터파크에 갔었는데 새롭게 구매한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속의 모습은 임신부의 배에 밀가루포대 같은 다리통에 턱이 두 줄로 된 퉁퉁한 얼굴이 얼마나 가관인지 다시 봐도 한숨만 나갔다.

 살찐 몸매를 가리려고 옷 파는 가게를 돌고 또 돌아도 마음에 드는 옷을 살 수가 없다. 나이 들어도 여자의 마음이라 하늘하늘 예쁜 옷들을 눈도장으로 찍으면 사이즈가 없단다. 한 옷가게의 사장이 위로의 말 한마디다. ‘77사이즈라도 괜찮아. 그래도 이 시장에서는 언니만 하면 다 미스코리아야.’ 얼마나 보기 민망했으면 이런 표현까지 할까 싶어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체중이 불어나자 혈압이 올라갔고 다리도 관절염으로 시달렸다. 200이라는 숫자를 보자 의사는 고혈압으로 인해서 또 다른 질병이 올 수 있다며 무조건 살부터 빼라고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하루 한 시간씩 빠른 걸음으로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강역에 나가보니 날씬한 여자들이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이악스레 온 몸을 흔들어대며 걷고 있었다. 그녀들을 볼 때마다 은근히 화가 났다. 하지만 매일같이 걷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근이 늦어지거나 회식이 있으면 운동을 하지 못하다 보니 운동하는 날보다 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체중계에 몸을 실으면 눈금이 0.5 정도 움직일까 말까이다. 아침에 깨어나자 말자 체중계에 오르면 그 줄어들었던 0.5가 다시 제 걸음을 한다.

 언젠가 속옷만 입은 채 체중계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들이 한마디 한다. ‘아프다고 하면서도 먹을 건 다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은 왜 하는지.’

 누구처럼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닌 것 같다. 체중에 대한 고민을 들은 친구가 하는 말이었다. ‘넌 입에 절반만 지퍼를 잠그면 돼.’ 늘 체하기 직전인 상태로 밥을 많이 먹는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친구와 밥을 먹으면 그 친구는 자기의 밥그릇에서 절반을 갈라 주지만 그걸 남기지 못하고 다 먹는다. 밀가루 음식도 좋아한다. 만두는 큰 것을 두 개를 먹어야 성에 찬다. 한 시간만 식사시간이 늦어지면 허기져서 죽을 맛이다. 아침은 거르고 저녁은 포식한다. 간식 봉지를 뜯으면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음식만 먹고 해물이나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 편식습관이 있다. 솔직히 먹보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 같다.

 체중 때문에 생기는 또 다른 고민은 사진이다. 얼굴은 그나마 웃음 대문에 괜찮은데 체중을 커버하느라 입은 옷들은 뚱뚱한 몸매를 가리지 못했다. 그래서 사진에 목숨을 거는 이에게는 늘어나는 몸무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55사이즈에서 지금은 77사이즈이지만 언젠가 88사이즈로 될까 싶어 은근히 겁이 난다. 이대로 힘을 빼고 있으면 체중이 얼마까지 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든다. 체중계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그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지만 탕개는 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 또다시 체중계를 꺼내 잘 보이는 곳에 정중히 모셨다.

▲ 박연희 수필가, 동포모니터링단장,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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