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동북아신문] "그리운 내 아들아 오늘도 잘 있느냐
           이 엄마는 너를 위해 살아간단다
           돌아갈 그날을 위해 수만리 바다 건너
           할머니 고향 따스한 정도 있지만 때로는
           서러움에 동북하늘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고향에 두고 온 내 아들아 이 엄마를 믿어다오
          내가 가는 그날까지 아빠와 잘 있어다오"
 
살붙이를 중국에 버려두고 한국에 온 엄마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고백. 자식에 대한 미안함, 그리움, 간절함이 듬뿍 담긴 이 노래의 제목은 ‘그리운 내 아들아’이다.
 
마음에 간직하고 온 자식에 의지해 고달픈 한국생활을 이겨낸 수많은 조선족 엄마 중의 한 사람인 중국동포가수 최지은(54세, 흑룡강성 녕안)씨가 부른 이 노래는 ‘북경아가씨’의 작곡가 정원수씨가 2000년에 만들었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지은, 최성원 모자에게는 특별한 곡이다. 엄마의 신변 부재를 원망하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있던 아들 성원군(87년생)은 친구들을 초대한 생일파티에서 엄마가 불러준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착한 아들로 되돌아왔다.

이처럼 이들 모자에게 있어 노래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고 허무하게 느껴졌던 이별의 시간을 값지게 만드는 특효약이었다. 

▲ 행사장을 함께 찾은 최지은(엄마)씨와 최성원(아들)씨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다
1996년 최씨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한국에 나오면서 모자간의 긴 이별이 시작됐다.
 
“엄마가 잠깐 중국에 들릴 때는 잠을 자는 것이 두려웠어요.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없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죠. 엄마가 떠나고 나면 며칠씩 울었어요.”
 
아들에 대한 죄책감과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최씨는 식당, 공장 할거 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중국에서는 한때 잘 나가던 흑룡강성조선족가무단 가수로서 궂은 일을 해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가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다. 당시 동포사회행사가 활성화되면서 노래실력을 주변에 알린 그는 ‘휘파람’ 등 곡들이 삽입된 메들리 음반을 출시하고 가수협회에 등록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송해씨의 사회로 진행된 KBS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출연, 2003년에는 방송인 이상벽씨의 사회로 진행된 MBC 중국동포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출연, 같은 해 동포가수들로 뭉쳐진 '소년소녀가장돕기'콘서트에서 SBS 등 공중파 방송매체에 보도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엄마의 음악세포를 물려받은 성원군은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명지대학에서 실용음악학과를 전공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성원군은 외국인노래자랑 최우수상, 한국대중가요발전협회 우정상을 받으며 노래실력을 인정받고 주한중국대사관신춘문예공연,K팝신한류뮤직페스티벌, 재한중국동포민속문화대축제 등 큰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가수로 활약중이던 모자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합동공연을 한 것은 2012년 여의도에서 열린 재한중국동포문화예술대축제였다.


▲ 2016년 중국동포민속문화대축제에서 공동사회를 맡은 모자가수 최지은씨와 아들 최성원군
“애를 두고 나온 것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어요. 그렇게 걱정하던 아들이 잘 커줘 늠름하게 무대에 서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든든하고 대견하고 행복했어요.”
 
지금은 모자가 함께 공연할 기회가 많다. 거의 매주 행사에 같이 가기도 하고 서로 대타로 가주기도 한다.

엄마와 함께 하는 공연무대에 서면 아들 성원군이 꼭 부르는 노래가 있다. '어머니'라는 곡이다.
 
"어릴 때엔 넓은 품에  포근히 껴안으시고
더울세라 추울세라 소중히 키웠습니다
아~어머니 자애로운 어머니
무엇으로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까"

원제목 : 이별했던 아픈 시간 잊고 행복을 노래하는 한국동포사회 母子가수
흑룡강신문 나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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