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만 칼럼니스트, 재한동포무인협회 이사
[서울=동북아신문]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자가 호시탐탐 얼룩말을 노리고 있다. 맹수의 공격이 임박한 것을 눈치 챈 얼룩말들은 결단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사자의 공격을 피할지, 아니면 사자의 무리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 생각엔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일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대개 얼룩말들은 떼를 지어 사자를 향해 돌진 한다. 말들은 낮에 풀을 많이 뜯어 먹었기에 충분한 힘을 비축하고 있다.

얼룩말들이 사력을 다 해 달려오면 아무리 용맹한 사자라고 할지라도 ‘움찔’ 놀랄 수밖에 없다. 자칫 얼룩말무리와 부딪쳐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자가 일단 옆으로 피하고 나면 전속력으로 달아나는 얼룩말을 다시 따라 잡기란 쉽지 않다.

2016년 11월, 토요일 밤 마다 집회가 있었다. TV에서 광화문 촛불집회시위를 보고 감회가 아주 깊었다. 저녁 밤마다 적어서 2십만 명 많아서 백여만 명의 데모가 이어졌다. 시위에 십여만 명의 경찰이 투입됐다. 나는 시위자들의 행보가 저으기 근심이 되었다. 혹시 경찰들과의 마찰로 불상사가 나오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이었다. 그런데 내가 우려했던 그런 일은 발생하지도 않았다. 집회에서 경찰과의 약간의 마찰은 있었지만 그래도 질서정연했다. 문명하고 평화로운 집회,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춘 집회가 되기에 손색없었다.

왜일까. 우선 자신의 판단을 믿고 일사천리로 내달리는 ‘얼룩말의 기백’을 방불케 했다. 연약하지만 순발력이 뛰어난 얼룩말떼들이 ‘만신창이의 수렁’을 벗어날 때 용맹한 순발력을 보는듯하다. 이런 무리들이 지혜롭고 용맹하고 하나로 똘똘 뭉친 데야 맹수 사자도 기죽고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얼룩말의 대적인 ‘사자’를 경찰로 야유하자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정부비리에 국민이 분노해 나섰다. 흩어진 모래알의 민심은 힘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수십만 시민, 학생이 그것도 애국성을 보이며 일제히 거리에 뛰쳐나와 촛불과 피켓, 플래카드를 높이 추켜들었으니 ‘정부관원’도 머리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리지 못하는 권력자들에게, 국정혼란과 국익을 훼손하는 자들에게 보기좋게 국민 채찍의 맛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이번 데모는 다른 데모 언론평가 때 와는 달리 ‘좌빨’이요, ‘종북이요’하는 ‘수식어’도 붙지 않았다. ‘최진실게이트’, ‘대통령퇴진’은 모든 방송언론과 SNS의 초점이 되었던 것이다. 나라생사존망의 갈림길에 이성적으로 몸부림치며 거리로 향한 국민에 대해 세계언론도 놀라워하면서 찬사까지 보냈다.

건국초기 마오쩌둥 주석은 “빈 종이에 그림그리기가 더 편리하다”는 말을 남겼다. 아무 것도 없을 때 사업을 잘 진행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지금은 수십 년 전 극심한 가난 때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때와는 다르다. 지금 중국은 물론 한국 국민의 생활수준, 물질문명은 고단계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더 높은 발전수준을 향해 발돋움 하고 있다. 지도자들, 기업 총책들이 그런 의사를 거역할 때 국민의 질타를 받는다. 특히 비리, 불합리적인 것을 보면 날 선 공방이 이어진다. 부정부패는 종당에 가서 국민, 법률의 심판을 받는다.

데모는 정부사업을 재조명해 보고 금후 사업갱신에 중요한 가교역할을 한다. 이번 데모를 보고 중국 고향에 있었던 두 번의 시위가 떠오른다. 첫 시위는 89년 4월부터 대학생 ‘학조운동’으로 시작 되었다. 5월말에 고조가 일었다. 대학생들이 톈안먼광장에 나와 시위하고 단식투쟁을 이어나갔다.

당시 개혁개방을 하면서 허다한 사회문제가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 시기 농민들의 시세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지식분자들과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낙관하지 못했다. 그때 이런 유행어가 생겼다. “수술 칼을 쥔 의사가 돼지 칼자루 쥔 백정보다 못하고, 대학교수가 저잣거리에서 차계란(茶叶蛋) 파는 노파보다 못하다네.” 당시 공장에선 숱한 해고 노동자들이 생겼다. 개혁개방 초급단계에서 피하기 어려웠던 국면이었다.

이런 불평등이 대학교수와 학생들을 격노시켰다. 수만 명이 톈안먼 광장에 나와 시위, ‘단식투쟁’에 나섰다. 그런데 그 당시 학생운동을 이용한 불법분자들이 기회를 타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바람에 6월4일 계염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계엄군이 시위군에 의해 살상되었다. 위법행위가 강행되고 몇일 동안 시위군이 톈인먼광장에 ‘웅거(盘踞)’해서 철수를 거부한다. 이런 부득이한 상황에서 계엄부대가 탱크로 밀면서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내는 참사가 벌어졌다.

또 한 차례는 2천년 가을, 무단장시 화림다이야 공장에서 있었던 시위다. 이 공장은 38년도에 건립되었다. 전국에서 제일 큰 다이야공장이다. 50년도 심양으로부터 무단장에 옮기면서 화림다이야 공장으로 명명되었다. 공장직공만 6,500여명이다. 92년 6월 20일, 당시 국가주석 짱쩌민이 이 공장을 시찰한 적도 있다. 이 공장은 나라를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후에 이 공장은 시장경쟁에서 뒷걸음을 반복했다. 노동자들의 복지가 떨어지고 임금마저 제대로 못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공장부패는 요동쳤다. 과장급 이상부터 무단장시 중심에다 아파트를 구입했고 어떤 사람은 별장을 사서 얼나이(二奶: 숨겨둔 여인, 정부)를 두었다.

그해 여름, 무단장 모 병원에서 총격사건도 일어난 일도 있었다. 공장 보안간사 아내가 난산으로 병원에 이송했다. 그런데 돈을 미처 가져오지 못한 원인으로 즉각 처치가 늦다보니 산모가 죽었다. 그래서 이지를 상실한 이 남편이 총을 발사하여 담당의사를 죽였던 것이다.

금전만능으로 사회가 삭막해지고, 여러 가지 불공평에 대한 분노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 때 집회에 5~6천명의 시위대오가 거리바닥을 휩쓸었다. 그 바람에 기차도 다섯 시간이나 연착되었다. 성장, 시장이 내려와서 화해 설득해서야 그 시위를 수습할 수 있었다. 그 후 요녕성 선양공업그룹에서 이 공장을 인수하고 문제되는 과장급 이상 중층 간부를 엄격히 처리했다.

두 차례의 시위는 언론개방,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대우를 높이고, 부정부패를 타격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 후 화림다이야 공장은 세계다이야 생산 10위권 안에 들어서려고 박차를 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광화문 촛불집회나 20여 년 전에 화림시위는 모두 경찰의 유연한 대책으로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국민의 성숙된 모습과 고상한 풍격의 반영이고, 당국이 헌법을 수호하고 인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고도의 인류문명의 체현이다. 민주화에 대한 갈망과 정부, 사회모순을 두고 시위를 단행했던 80년 ‘5.18광주 민주항쟁’, 89년 ‘6.4톈안먼사건’때와 완전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때의 데모에서는 정부의 강경한 대책으로 수백명의 희생자를 내는 뼈저린 아픔을 남겼으니 말이다.

서울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한국 헌법의 ‘결사 시위 자유, 언론자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집회에서 대통령, 정부요원에 대한 분노, 풍자, 야유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나라를 교란하고, 나라를 배신할 국민은 없다. 국가가 소수 사람한테 농락당하고 국익이 훼손되는 것을 눈 뜨고 가만히 보고 있을 국민들이 아니다. ‘항룡유회(亢龙有悔)’란 고사성어가 있다. 절정에 이른 뒤 자칫 후회하기 쉽다는 얘기다. 자기의 영달에 다 올랐으면서도 계속 ‘욕심’을 부리다간 낙마할 수도 있다. 대통령, 정부관원 비리를 보면 백성은 참지 못하고 저주하고 원망하고 분노한다. 민주사회에서 법률은 그런 성난 민심을 잘 대변하고 있다.

풀이나 잎을 뜯어 먹는 얼룩말이나 양 같은 동물은 본래 순진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그러되 사악한 짐승무리를 보면 용맹한 결단을 내린다. 그것만이 오직 자기를 보호할 수 있다는 본능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이번 거리바닥을 종횡무진하는 집회의 ‘촛불바다’를 바라보면서 “한국국민은 정말 대단하면서 진정한 애국자들이구나!”하며 나 스스로 감격의 눈물을 가질 때도 있었다. 이것이 한국이 세계선진국행렬에 들어 설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 국민과 권력자는 물과 배의 관계이다. 홍수 물결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물에 가라 앉힐 수도 있는 법이다. 이번 데모를 보면서 이 도리를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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