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임갑용 선생은 대재다능하다. 소설도 쓰고 시도 쓴다. 두 장르에 걸쳐 꽤 큰상도 받았다. 그의 시를 읊노라면 석영에 물든 강과 산과, 또 인간이 살고 간 흔적들, 심지어 무덤 같은 것들  조차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그만큼 시상詩想이 안정적이고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혹은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사색이 시맥詩脈에 깊이 내재되어 있다. 시어들은 화려함이나 난해함이 없이 일상에 쓰고 있는 언어들로 아주 쉽게, 또는 가볍게, 손가락으로 물방을 스치며 튕기듯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잘 정제된 운률과 리듬이 있다. 인생의 노을빛이 젖어들고 있는 듯한 시구가 아주 명료하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편집자      


득실(得失)
 

엄마는
생명을 주었는데
나는 때 이르게 삼베로
엄마를 묶는다

어울리지 않는 상복에
조문객의 눈빛이
이상하다

아파트는 높아지고
엄마의 무덤은
낮아진다
그래도 엄마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내가 수의를 입는
것을 보고서야
승천하신다

엄마는
수많은 별 속에 숨어
너그러운 눈빛을
깜빡이며 지켜보고
계신다
내가 땅속에
묻힐 때까지

제물상에 올린
사과 향이 짙어 갈 때
참회의 눈물은 별을
씻는다

 

        로또 
                                      

수억 마리 도전자가
난자의 핵을 둘러싸고
영역을 다툰다
그중 한두 마리만
궁전宮殿으로
들어간다

암놈은
수놈들을 유혹 한다
짝수가 아닌 홀수이다
수놈은 빼앗아 먹고
암놈은 골라 먹는다
외로운 나비는
가을걷이 끝난 밭에서
낟알을 줍는다

공기와 햇빛이 있는
야외에는 야생 꽃들이
향기를 풍긴다
향기는 암내음이다
꽃내음은 벌 나비를
부른다

외로운 사내는
꽃을 가꾼다
경쟁이 없는
시골의 꽃밭에서
기능 잃었던 고것들이
인공수정을 한다

하얗게 핀
아카시아 꽃 위에
꿀벌들이 꽃송이
하나씩 차지하고
실북 나들듯 하는
모습 참 보기 좋다


 절필시絶筆詩

                                
너는 묏자리 부탁하고
나는 별자리 부탁했다

재생을 꿈꾸다가
시골집 참나무 기둥 밑에
무릎을 꿇었다
죽어서도 꿋꿋이 
집을 떠이고 서 있는
새파란 고목 앞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성좌
현충원에는 별이 한 마당
가득 내려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한부 명줄에
자명종 튕겨 놓고
싱싱한 장기는 골라서
방생한다

고향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사라진 곳에
윤슬처럼
반짝이는 제일
작은 별 하나는
나를 닮은 것 같다

아버지 무덤 앞에서
부자는 마주보며
무후無後의 모자를
벗는다

 

육아일기
                                    
그네를 태운다
아빠는 그네 위에
추를 단다
아들도 달고
딸도 달고
똑같이 힘주어
밀어준다

오십 고개를 넘어
쉬여 가는 간이 역
벤치 아래 나뒹구는
노숙자는 깊은
잠에 빠졌다
그네의 추,
시계의 추,
무게를 가늠하는
저울의 추,
모두 다 멈췄다
빈 소주병과
빈종이 컵만이
파수꾼처럼
곁을 지킨다

오십 고개를 넘어
쉬여 가는 간이 역
정장 차림의 귀부인은
그네에 앉아 애들과 함께
냄비에 동전 던지는
게임을 한다
웃고 떠든다

똑같은 하늘 아래
똑같은 땅위에
종착역은 둘이고
연장선은 하나다
햇빛 넘치는
광야로 가는 길,
출발 시간이 다를
뿐이다

 

 부메랑 (연시조)
                                

               시간이
깨알처럼 쏟아지던 그 시절에
           가조시可照時
끝자락엔 내일이 걸렸었지
               던진 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곤 했지
              
                강물도
구름 따라 거꾸로 흐르는데
                 남은 해
몇 마리는 거미줄에 걸어볼까
                   아기는
               되돌아와서
       젖 달라고 울겠지요


                  
               
      은행나무公孙树(연시조)
               
                                  
                운문사
공손수는 노을 속에 불타고
                곱추의
지팡이는 파랗게 움이 튼다
                오백년
            암수 두 그루
         백발의 연인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수염은 검푸르고
                불같은
정열 속에 산모는 잉태한다
                할배는
            나무를 심고
        손자는 열매 딴다

                 노란잎
갈피갈피 비바람에 쌓아놓고
                 포근한
 낙옆 속에 열매는 잠이 든다
                 고찰의
              마야달력은
          내년을 기약한다


                   

      추수秋收 (1)
                            
                     
가을은 배불러 웃고
심상은 배고파 운다
황혼의 가을에

검은 머리 백발은
순리대로 세상을
떠나라 한다

덕지덕지 더럽힌 인연
거울처럼 닦아 놓고

누덕누덕 기운 구름
파란하늘 되돌려 놓고

하얀 껌 반추하며
청정무구로 세상을
떠나라 한다

              추수 (2)
           
숨길 수 없는 거울 앞에
비춰진 노고의 얼굴들

열매를 영글기 위해 
노랗고 빨갛고 까맣게
멍든 낙옆의 자국들
 
어둠이 쥐구멍에서
튀여 나오면 또 다시
파란 꿈을 꾼다

어둠은  언제나
내 모습이 투영된
잠상일 뿐

긴 터널 자궁속에서
태아의 울음소리
엿듣는다

 

▲ 임갑용 소설가 / 수필가

임갑용 프로필


중국 용녕성 단동시 출생
흑룡강신문 1984년 소설부문 대상, 2010년 재외동포재단 재외동포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2015년 11월 '문학바탕' 시부문 신인문학상(한국문단 등단), 재한동포문인협회회원.
현재 모 회사 회사원. 이메일: rjl89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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