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만/행정사, 언론인 lcman2@naver.com
[서울=동북아신문]그날 루이 16세가 맞이한 새벽은 심상치 않았다. 수년 동안 미적대던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민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드디어 시민의 함성이 궁정에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루이 16세의 질문에 비서관이 다급히 말했다. “혁명입니다.”

1791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함으로써 프랑스 혁명은 시작되었다. 마침내 루이16세도 마리 앙뜨와네뜨도 분노한 시민의 손에 이끌려 단두대에 서야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앙시앵레짐이라고 하는 구제도를 타파하려는 시민의 분노에서 출발했다. 구제도하에서는 인구의 10%도 안 되는 제1신분(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이 주요 관직을 독점하면서도 각종 면세 혜택으로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인구의 약 90%가 넘는 제3신분(평민, 시민,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은 각종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했지만 오히려 정치 과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었다.

프랑스는 왕실의 과도한 지출로 인해 선대로부터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식료품 가격은 폭등했고 자연 재해는 거듭되었다. 미국독립전쟁 참전으로 국가 재정은 파탄 직전이었으며 사회 불안과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국가 예산이 파탄에 이르자 루이 16세는 세금을 추가로 징수하기 위해 그 동안의 성직자와 귀족들이 갖고 있던 면세특권을 폐지하려 했지만 귀족들이 이를 거부하고 삼부회소집을 요구했다.
곧 삼부회가 열렸다. 제3신분은 투표와 표결을 신분이 아닌 머릿수로 할 것을 요구했으나 성직자와 귀족은 이를 거부했다. 일이 꼬였다는 것을 안 시민은 '국민의회'를 조직했다. 국왕과 귀족들이 이를 해산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자 격분한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바스티유감옥을 공격하면서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을 포함해 전국의 광장에서 촛불시민 232만명이 모였다. 마침내 촛불을 대신한 횃불도 등장했다. “하야하라”, “퇴진하라”는 외침은 “구속하라”, “체포하라”는 말로 바뀌었다.

날이 갈수록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수사는 점차 강해졌다. 세계가 놀라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화적 시위가 언제 돌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탄핵이 부결되는 날 또는 박근혜 대통령이 또 다른 꼼수를 부리며 퇴진을 거부하는 날 촛불은 횃불로, 평화시위는 폭력을 더한 시위로 바뀔 수도 있다.

여야가 합의해 일정을 제시하면 퇴진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정치적 꼼수에 불과했다. 이제 국민은 믿지 않는다. 당장 물러나 오라를 받아야 한다.

여당의 비박의원들은 자신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어떻게 비박에 달려있단 말인가. 그들은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박근혜를 탄핵하는 것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 그리고 전국 각지의 광장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작은 촛불은 시민 혁명의 시작이요 미완의 혁명인 동학과 4.19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철저히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고 다시 그들이 권력의 중앙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다잡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이어진 군부 독재와 친일부패세력의 집권은 오욕의 역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 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광화문을 밝게 비추는 작은 촛불이 대한민국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촛불과 횃불을 기대하기에 그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광화문을 밝히는 촛불이 프랑스 대혁명처럼 완성된 시민혁명이 되기 위해서 더 밝게 빛나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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