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숙 프로필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현재 서울에서 某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서울=동북아신문]아침 7시, 알람소리가 이불속에 푹 파묻혀 있는 나의 귀전에 울린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주방으로 가서 저녁에 미리 준비해둔 고구마와 계란을 압력솥에 넣고 찐다. 그 사이에 욕실로 들어갔다. 간단히 씻고 나오니 계란과 고구마도 다 익었다. 화장을 하는 사이에 단김을 빼고는 비닐봉투에 넣은 고구마를 핸드백에 넣고 출근길에 나선다.

음력시월의 날씨는 꽤 쌀쌀하다. 많은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몇 몇 중국식품가게 만이 문을 열었다. 그렇게 벅적거리던 거리도 아직은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어디 선가 아침정적을 깨뜨리며 떡메소리가 울려 퍼진다. 떵- 떵- 떡메소리는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련한 고향의 향수를 불러오며 마음에 울려 퍼진다. 마치도 우리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깨우침 소리처럼 울린다.

어린 시절 우리 고향마을에서는 동네잔치나 설 명절 때만이 저렇게 소담한 떡 구시에 찰밥을 담아놓고 힘센 젊은 남자들이 떡을 치군 했다. 두 사람이 떡메를 휘두르며 떡을 치고 여자 한사람은 손에 물을 묻혀가면서 가끔씩 뒤 집어주군 한다. 그렇게 반복을 하면 끈끈한 정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진 찰떡이 완성된다. 떡메에 흠뻑 두들겨 맞고 쫄깃하게 다져진 찰떡은 팥고물이나 콩고물에 무쳐져 맛있고, 고소한 떡으로 변신한다. 할머니와 엄마들은 서로 기회를 타서 군이나 자식들에게 찰떡을 베어서 한 두 개씩 쥐어 주군 하였다. 그 때는 그 찰떡이 어찌 그리 맛이 있던지,

잔치 상 에는 온 동네 남녀노소 모두 모여 앉아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구수한 얘기와 함께 쫄깃한 찰떡을 정 깊게 나누어 먹 군 하였다. 고기가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먹었던 고기가 조금만 들어간 반찬은 또한 별미였다.

언젠가 우리 이웃집에서 결혼식을 치렀는데, 한족들이 많이 사는 우리 고향에는 한족들도 결혼식에 많이 참석하였다. 한입에 쏙쏙 들어가는 물만두만 먹어왔던, 처음으로 찰떡을 맛보는 한족 아이는 찰떡을 한입에 넣었다가 숨이 넘어갈 번한 적도 있다. 물을 가져 온다, 잔등을 두드린다 한참 야단법석을 해서야 겨우 위기를 넘겼다. 눈물까지 찔끔 짠 그 한족 아이는 떡이 너무 질기다고 나무랐지만, 우리들에게는 더 없이 맛있기만 떡이었다.

또 어떤 할머니는 잔치 집에 갔다가 집에 두고 온 손주생각에 찰떡 몇 개를 종이에 싸서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찰떡이 옷에 다 달라붙어서 난처했던 적도 있다. 할머니는 물을 묻혀가며 떡을 뜯어내느라 애썼고, 손주는 할머니가 뜯어낸 떡을 즐겁게 맛나게 받아먹었다. 그런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짙게 남아있을 것이다.

대대로 내려오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소복이 담겨져 있는 찰떡에는 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기도 하다. 결혼을 하는 이들에게는 찰떡처럼 정 좋게 살아가라는 뜻이요, 시험 치르는 이에게는 찰떡처럼 척척 붙으라는 의미로 씌어 지기도 한다. 그리고 모내기철에는 꼭 찰떡을 쳐서 동네잔치를 했다고 한다. 찰떡 먹고 힘쓰라고. 찰떡은 이렇게 환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쓰이지만 어쨌든 간에 응원의 메시지로 이해된다.

세월이 흘러 요즘은 시골의 잔치도 많이 변했다. 시골에 모여 잔치를 치르지 않고, 도시에서 온 자식들이 버스에 동네 사람들을 싣고 시내 큰 식당에 가서 잔치를 치른다. 예전처럼 애들은 보기 드물고, 젊은이들도 별로 없고 동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어디서 주문을 했는지 잔치 상에는 그래도 찰떡은 빠지지 않는다. 찰떡의 의미는 여전히 그대로 전해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시골도 아니고, 고향도 아닌, 서울에서 찰떡 치는 소리를 듣노라니 여간 감개무량하지 않다. 비록 어린 시절의 그 맛은 아니지만 추억과 함께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있어 너무 감사하게 생각된다.

아침 쌀쌀한 바람을 안고 두 남자가 떡메를 휘두르며 아직도 김이 나는 떡밥을 내리 친다. 그 떡메소리는 마치도 유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연구생, 박사 학위에 척척 오르라는 응원의 소리 같기도 하고, 또 중국동포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사랑하는 가족의 평안한 생활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 열악한 환경이지만 오늘도 파이팅 하라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찬바람에 흩날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옷깃을 여미고, 아득한 거리와 저 멀리 아침하늘을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다그친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마치도 연한 하늘색 도화지 같다. 나는 그 넓은 도화지에 그림 하나를 그려 넣는다. 내가 이루어야 할 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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