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갱년기를 질풍노도라고 하며 갱년기가 사춘기와 싸우면 이긴다고도 한다. 나의 갱년기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심이 넘쳐나는 성격인지라 갱년기도 쉽게 넘길 수 있는 벽인줄 알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갱년기는 진행형이다.

갱년기가 시작된 것은 2014년 여름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시도 때도 없이 짜증이 나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땀이 줄줄 흐르고 이유 없이 우울하고 기억력이 상실되는 등 갱년기 증세가 빠짐없이 찾아왔다. 마침 tv에서 갱년기에 좋은 약이 있다고 해서 구매하여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반년도 되지 않아 가짜라고 밝혀져서 더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2015년 봄부터 한쪽 팔이 심하게 아팠다. 병원에서는 회전근개파열이라고 병명을 알려주었다. 200여 만 원을 들여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이 없었다. 밤중에 통증이 찾아와서 잠을 설쳤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제대로 닦을 수조차 없었다. 육체적인 아픔보다 더 힘든 것은 그렇게 초라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피신처를 찾아 중국고향으로 갔다.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가서 인민폐를 두툼하게 들이밀고 두 달 동안 열심히 치료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갱년기 증세였다는 것을 그 이듬해에야 알게 되었다.

2016년 초순경에 또다시 몸에 이상이 생겼다. 때로는 고기를 먹어도 위가 아무 이상이 없는데 때로는 약조차 넘어가지 않아 몇 달 동안 소화제를 가방에 챙기고 다녔다. 위암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내시경을 했더니 염증이 약간 있을 뿐이었다. 간염과 당뇨, 갑상선 등 여러 가지 검사를 모조리 해보았지만 문제가 없었다. 최종적으로 산부인과에서 갱년기라는 결론이 나왔다. 갱년기가 지난 줄로만 알았던 나는 허탈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의사의 분부대로 호르몬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생리가 다시 시작되는 바람에 귀찮고 힘들어서 약을 끊었더니 갱년기 증세가 복제되듯 다시 되살아났다. 육체적 고통을 참지 못한 나머지 다시 호르몬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호르몬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갱년기증세가 다 없어진 건 아니었다. 화끈화끈 얼굴홍조는 보너스이고 몇 초도 되지 않아 눈물을 질질 흘리고 괜히 욱하기도 하고 천당에서 지옥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감정기복이 생기고 누군가의 전화나 문자도 곧잘 씹었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아침부터 노래가 흥얼흥얼 나오다가도 또 어떤 날은 괜히 슬퍼지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예고 없이 머릿속으로 훅 들어온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갱년기를 극복하려면 약 복용과 함께 가벼운 산소운동도 필요하다고 의사가 당부를 했다. 그 덕에 운동을 하지 않던 내가 하루 한 시간 정도 무조건 걷기를 이어가고 있다. 음식을 편식하던 습관을 버리고 갱년기에 좋은 음식도 찾는다. 누군가 살찐 나의 몸매를 보고 몸에 이상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갱년기 때문이라고 구실을 대기도 한다. 상대방한테 화를 낸 후이면 호르몬분비 때문이니 이해해 달라고 밀어버리기도 한다. 일하기 싫을 때면 갱년기가 왔으니 좀 쉬어도 괜찮다고 자기를 위안한다.  

“갱년기(更年期)란 한자로 풀이하면 ‘해’를 바꾸는 시기로써 평생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 호르몬의 지배를 받으며 늙어가는 보통 여자와 남자에게 인생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이제껏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마치 축구경기처럼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잠간 휴식과 같은 하프타임인지도 모른다. 전반전을 열심히 뛴 피로감이 몰려들기도 하고 후반전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하는 시기이다. 전반전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거둔 이들은 좀 느긋하게 하프타임을 통해 여유롭게 후반전을 맞을 수 있고 전반전에서 부진한 기록이 있던 이들은 하프타임으로 다시 계획을 짜거나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삶을 새로 정비하는 것이 꼭 지난 세월보다 더 분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위로를 해주고 좀 나태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열정의 불을 붙여주고 늘 타인을 향해 있던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비추는 시기가 바로 갱년기이다.  

초경, 임신, 출산, 폐경, 갱년기가 바로 여성인생의 필수코스이다. 물론 어떤 여성은 아무 감각도 없이 지나가지만 나처럼 성질 더러운 여성은 요란하게 홍보하면서 갱년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것을 거슬러 보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자 허사이고 아예 갱년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 하늘땅이 맞붙는 출산도 했는데 그깟 갱년기가 뭐 그리 대수일까. 고통스럽고 힘든 증상들을 피해가기보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그 변화된 몸을 사랑하고 단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갱년기는 혼자만 겪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평생 가는 것도 아니다. 터널을 지나듯 인생에서 어차피 거쳐야만 하는 길이라면 터널 속에서 잠깐 눈감고 졸다보면 다시 밝은 빛이 보이듯 그렇게 갱년기를 버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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