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만/칼럼니스트,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서울=동북아신문]문학이란 막막(漠漠)한 길 위에서 막막(寞寞)해질 때 ‘지표(地标)’를 찾는 일이다. 그 표식은 내 밖이 아닌 내 안에 있다. 그야말로 자기 감성과 판단으로 본연의 모습을 찾는 간고한 작업이다.

한 주일 전, 한 문우가 ‘한중문화교류의 밤’에서 우리가 받은 ‘문인협회 우수회원’ 수상사진을 SNS에 올렸다. 거기에 축하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엘리트 친구는 표창장에 수필가로 명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묻기까지 했다. 어떻게 상을 받았고,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될 수 있었던 내력도 물었다. 작가가 되려면 작품도 많이 나오고, 데뷔작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아는 친구였다.

그에 나는 아무런 답변도 주지 못했다. 그렇다 할 내놓을 ‘자랑거리’가 없었던 게다. 또 작가니 수필가니 하는 것에 그렇게 연연하지도 않았다. 표창장에 ‘수필가’로 찍혀 있어도 그것은 상대방에 준한 존칭으로 여겼다. 한국에 오니 귀맛 당기는 존칭이 너무도 많다. 사장님, 사모님은 입버릇처럼 옮겨진다.

명함을 쥐어보면 열 개 중 일~여덟 개는 모모의 회장, 사장, 부장, 대표, 이사이다. 그런데 명함에 소설가요, 시인이요, 수필가요 하는 칭호는 없다. 아마 그런 칭호는 타인에 의해 불러지는 것 같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는 항상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는가 보다. ‘삼류작가’라도 문학등단은 필수다. 나 자신의 작품데뷔를 꼭 집어서 말하라고 하면 부끄러운 대로 조금은 입 뻥긋 할 수 있다. 헤룽장성 조선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하는 ‘은하수’잡지(2001년 4기)에 수필을 필명으로 발표한 일이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처녀작이 될 수 있다. 그 후 ‘송화강’ 잡지, 헤룽장성 조선말방송에 수필, 수기를 여러 편을 발표했다.

한국에 와서는 동포신문, 동포문학에 수필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잡지에 수필 한 편을 보냈는데 그것이 ‘주변인과 문학’(2016년 여름호)에 실렸다. 그러니 성과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미약했던 것이다. 신문사에서 신문학, 문학통신공부를 1년 하고, 성교육학원에서 조선언어문학을 수료한 자신이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그나마 조글로 포럼에 칼럼니스트로 등록되어 있으니 스스로 위안이 되곤 한다. 한국에 와서 ‘계급장’이 더 올라간 느낌이다. 고향학교에 있을 때 오피니언, 사회기사, 논문기사를 신문에 내곤 했다. 한국 와서도 동포신문에 주로 칼럼을 많이 써왔다. 나 스스로는 미진함을 번연히 알지만.

칼럼은 신문지상에 독창적인 주견, 주장을 하고, 시사 정평을 하는 글이어서 예술성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언어를 예술적 표현의 제재로 삼는 소설이나 수필 같은 글은 필자의 문학적 감수성을 전제로 한다. 이전부터 칼럼은 주로 전문지식을 갖춘 ‘학자’가 주도해 왔다. 그런데 칼럼은 기타 문학 장르의 작품처럼 상을 주는 행사는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교육문화칼럼을 집필하는 동아리끼리 서로 질투하고, 서로 경멸하는 ‘못 된 버릇’ 노출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물을 보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작품을 보면 작자의 심경을 알 수 있다. 모든 작품은 예술적 매력뿐만 아니라 작자의 인격과 수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니 문학의 길은 결코 쉽고 순탄하지 않다. 특히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문학을 하고, 글을 쓰는데 더 애로를 겪는다. 학자나 높은 직위에 있는 공직자들은 보고 듣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넓기에, 작품의 소재도 봇물처럼 터져 나 올 수 있으니 말이다.

허나 산전수전을 겪으며 글을 쓰는 일반문인들이 자격지심을 버리고, 취미를 본능으로 하면서 좋은 작품을 써내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하다. 독자들에게 사상, 취미, 정감을 전달하는 표현형식은 똑 같기 때문이다.

문학은 살아 온 만큼의 인생탑을 쌓는 게으름 없는 작업이다. 나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견해, 기발한 상상을 필묵에 담는다. 삶에 대한 낯섦과 익숙함, 미진함과 뿌듯함, 절망과 희망을 담아 그려낸다. 그로부터 사람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사회, 주위의 사물을 새로운 차원으로 판단, 사색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이 문학인이 바라는 포인트다.

문학창작은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을 그려내는 인간수업이다. 문학인들이 세상 눈길을 끌자면 세상 사람들의 복잡한 정감세계에 눈길을 돌려야 할 터. 문학글이든 칼럼이든 언제나 기성도덕에 대한 도전이고, ‘상상력의 모험’이기도 하다. 앞으로 진정한 위기는 ‘금융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위기이다. 또한 미래 세계는 정직하고, 지혜롭고, 자기 책임을 다 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나갈 것이다. 이 의미 있는 작업을 수행하는데 문학이란 이 위대한 매개체를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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