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만/행정사, 언론인lcman2@naver.com
[서울=동북아신문]십상시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조정을 농락한 십여 명의 환관들을 말한다. 원래 환관은 궁중 일을 돕는 거세된 관리이다. 비슷한 말로 내시가 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내시는 거세되지 않고 왕의 곁에서 공무를 보는 관리였으나 원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이후 환관과 내시가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었다.

환관에게도 등급이 있다. 가장 높은 급이 중상시였으며 이들 중 십여명의 환관을 십상시라 불렀다. 십상시는 많은 봉토를 거느렸으며 부모형제까지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전횡을 일삼았다고 후한서는 전한다. 특히 영제가 십상시의 수장인 장양을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니 그 위세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십상시의 전횡

이들의 전횡은 매관매직에서 시작되었다. 현령은 사백만 전, 삼공은 일천만 전이라는 가격을 붙였다니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관직을 팔기만 했을 뿐 임기가 보장되지 않았으므로 십상시에게 돈을 주고 관직을 매수한 자들은 본전 생각으로 백성들을 마구 수탈했고 이 때문에 도처에서 난이 일어났다. 이 난들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큰 것이 바로 장각이 일으킨 황건적의 난이다.

보통 우리가 읽은 삼국지는 이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한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 후 십상시는 당시 권력자인 하진을 죽이고 십상시의 난을 일으켜 권토중래를 꾀하려다 원소에 의해 모두 살해당한다. 이렇게 권력을 추구하는 환관 즉, 간신의 득세는 나라를 사분오열시키고 끝내 망하게 한다.

문고리 3인방

우리나라에도 십상시에 버금가는 간신이 있다니 놀랍다. 그것도 조선시대도 아닌 얼마 전까지의 청와대에 말이다. 바로 문고리 3인방이다. 청문회를 통해 가끔 들려오는 소식에 어안이 벙벙하다. 왕 실장이라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문고리 3인방의 눈치를 살폈고 그들이 내민 문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문고리 3인방의 위세가 어땠는지 실감나는 장면이다.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던 98년 대구 달성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안봉근 비서관은 달성지구당 총무과장이었다. 또,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정호성 비서관과 그만 둔 또 다른 비서관의 후임으로 이재만 비서관이 발탁되었다.

1999년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의 문고리 3인방 체제가 완성되었다. 이들은 권력서열 1, 2, 3위인 최순실과 정윤회 그리고 박근혜에게 충성하면서 더욱 권력의 곁으로 다가갔다. 2006년 박근혜가 커터칼로 테러를 당했지만 경호담당 안봉근은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계속 박근혜의 곁을 지켰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2위인 비선실세 정윤회의 입김이 작용한 탓이다.

안봉근은 박근혜의 휴대폰을 들고 다녔다. 2007년 박근혜 캠프 관계자는 국회의원 공천은 물론 박근혜의 재가를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안봉근을 통하지 않고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문고리 3인방의 권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고리 3인방의 비리

2012년 박근혜가 대선에서 승리 후 청와대의 총무비서관에 이재만, 제1부속 비서관에 정호성, 제2부속 비서관에 안봉근이 임명되었다.

3인방의 견제 없는 권력은 비리로 발전되었다. 정호성 매형이 처남을 팔며 돈을 뜯고 다녔다. 그러나 애초에 정호성에 대한 조사는 하지도 않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2014년에는 이재만을 사칭해 한 대기업의 간부로 취업한 교회 장로가 있었다. 이재만이라는 전화 한 통에 대기업은 신원확인도 없이 부장급으로 취업시켰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들은 경찰인사에 개입했고, 공기업 임원에게 사퇴를 강요하기도 했다. 이들의 사퇴요구를 거부하면 검찰이 들이닥쳤다. 임원이 교체된 후에는 최순실과 차은택 소유의 회사에 이권을 몰아주었다. 전형적 조폭의 삥뜯기였다.

이들은 사전유출이 금지된 부동산개발문건을 입수한 후 마구잡이로 토지와 상가를 사들여 시세차익을 얻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2014년 9.1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이 나올 즈음 문고리 3인방 모두 강남에 아파트를 매입해 큰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들은 투기꾼의 역할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게 대통령인가?”

정윤회와 최순실은 매달 두 세 차례씩 문고리 3인방을 만나 청와대 내부와 정부 동향을 보고 받았다. 그러나 정작 장차관은 물론 다른 비서관은 대통령을 만날 수도, 일이 진척이 되는 것도 알 지 못했다고 하니 “이게 나라냐”고 하는 국민들의 원성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 이후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우려가 탄식처럼 나왔지만 그들의 자리는 견고했다. 박근혜의 불통 때문이었다. 이미 박근혜는 문고리 3인방 이외의 어떤 사람과도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왕 실장이 “대통령님을 뵙는 것은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정도”라고 밝혔을 때 국민들은 혼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윤회가 최순실과 이혼 후 비선실세에서 비껴있는 동안 대통령은 눈과 귀를 닫고 점점 더 고립되어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에게만 의존했다. 청문회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청와대의 생활상은 모든 국민을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청와대 예산으로 비아그라, 리도카인 그리고 프로포폴까지 구입했다.

황당하다. 도대체 관저에서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매일 머리 올리는데 두 시간 이상을 쓰고, 매주 수요일은 절대 업무를 보지 않았다. 또,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는 곳마다 변기와 샤워기 꼭지 심지어 침대 매트까지 교체했다. 이제는 황당한 것이 아니라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이게 대통령인가?”

이제 특검은 문고리 3인방은 물론 박근혜에 대해서도 압수수색과 대면조사를 통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비선실세가 어떻게 나라를 말아 먹었는지, 박근혜가 청와대 관저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세월호와 함께 생떼 같은 학생들이 수장 당하는 날 7시간 동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미르재단 등에 재벌을 포함한 누가 관련되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촛불혁명

십상시는 황제에 아첨하여 오직 좋은 말, 아첨만 일삼음으로써 황제의 눈과 귀를 막고 국정을 자신들의 뜻대로 조종했다. 자기들 마음대로 정책을 선정했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추가했다. 황제와 신하 그리고 백성의 소통을 막아 황제로 하여금 적절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백성들의 생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권세와 부를 축적하는 데에만 골몰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들에게 아첨하게 만들고, 자기들에게 저항하는 무리들을 가혹하게 응징함으로써 정상적인 정책과 언로를 파괴시켰다. 어찌 민란이 일어나지 않고 나라가 망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전역에서 촛불혁명이 타오른 이유가 여럿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문고리 3인방의 전횡이라고 보아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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