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학 중국동포화가/ KC동반성장기획단 전단장의 이야기

▲ 림학 중국동포 화가 / KC동반성장기획단 전단장
[서울=동북아신문]“우리는 왜 나뉘어져 있을까?”

중국동포(조선족) 화가이자 서예가인 임학(림학 林鶴) 작가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왔다고 했다. 한-중국동포. 남-북간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분단이 그 원인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자신의 창작활동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그가 한국 정착 후 화가로서 이를 주제로 한 미술 창작활동을 해 오고, 이로써 화합의 장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연변시 연길에서 나고 자라며 어릴 때부터 서예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먹을 묻힌 붓에 익숙했던 것과는 달리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한중수교(1992년) 전까지는 중국에서 주로 북한의 문화를 접하며 살았던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을 접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다고 한다. 연변대학교 미술교육과를 다니던 그가 5년 3개월이란 중학교 미술교사직을 버리고 2005년 한국행을 결정하며 제주도로 향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제주대학교에 편입해 서양화를 전공했고 이어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학비 걱정 없이 공부했던 건 아니다. 처음 대학교에 편입한 후 학비를 내고 나니 그의 수중에는 단 돈 30만원만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 돈으론 방 한 칸도 구하기 힘들었죠. 하룻밤에 4천원이면 되는 사우나에서 숙박을 대신하고 아침에 빵을 뜯으며 등교하곤 했습니다. 다음 학기 학비를 벌어야 하니 근로장학생으로 일을 하고, 주말엔 식당에서 서빙, 방학이면 시급이 좋은 서울로 올라와 주유소 등에서 일했습니다. 조선족에 대한 편견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 타지에 와서 고생한다며 용돈을 쥐어주시거나 명절에 집으로 초대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힘을 얻고 잘 지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원 진학시에도 교수님의 추천을 받으며 교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한동안은 사회와 담을 쌓고 혼자 우울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바로 2010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다. 당시 박사과정(중앙대)에 입학 통보를 받은 직후였는데, 꿈만 쫓으며 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작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임종 마저도 곁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허망함과 회의감이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릴 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목표한 학업을 다 마치자. 그리고 나와 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동포사회를 돕는 일에 기여하자.”
임작가는 그 무렵 중국에서는 변방의 소수민족으로 소외 받고,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란 편견에 시달리면서 ‘왜 당당할 수 없는가’, ‘왜 이렇게 구분되어야 하는가’를 계속 자문(自問)한 끝에 한-중국동포 사회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KC동반성장기획단’의 단장으로 일하는 한편 중국동포 문화예술인을 양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를 창립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중단했던 학업도 다시 이어,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글로벌문화콘텐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작품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동서양의 기법을 융합하여 그림을 그리고 북한의 청봉체, 중국의 연변체, 한국의 판본체, 궁체 등이 융합된 그만의 서체로 글을 쓰기도 한다. 다름의 융합을 통해 더욱 아름답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는 “서로 조화롭고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 사이에서도 알아야 소통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인터뷰·정리 허경은

 
◆ 한민족의 정체성을 화폭에 담다

임 작가는 오는 12월 20일부터 26일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국제학술에 참석해 ‘조선족 미술’을 주제로 하는 발표를 앞두고 있다. 그가 분석하는 조선족 미술의 특징은 그 주제가 주로 ‘한국의 전통 문화’에 맞춰져 있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기법적인 특징보다는, 그들이 주로 무엇을 그리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주로 한복을 입은 모습, 탈춤을 추는 모습, 초가삼간 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바로 거기서 한국의 전통 문화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항일 독립운동의 근거지에서 살았고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라는 자긍심도 갖고 있지만,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한족으로부터 차별 받고 한국으로부터도 소외된 이들은 지금까지도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많은 수의 연변 조선족들은 북한에 친인척을 두고 있어 오랫동안 식량난에 처한 북한 주민들을 도와 왔지만, 그것도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연변지역에 사는 조선족도 50% 미만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세대만 지나면 조선족이란 민족의 공동체 자체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임 작가도 주로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화폭에 담아 왔다. 그의 작품 ‘탈’에 등장한 인물은 언뜻 보면 웃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탈을 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DMZ를 찾아 스케치를 하고 오기도 한다.

 

◆ 중국동포 예술인 창작·전시 활동 지원

임 작가는 중국동포들이 오랜 기간 중국 문화 속에서 살아왔어도 한민족의 특징을 여전히 유지해오고 있다며, 노래하고 춤 추길 좋아하는 흥 문화가 있다고 했다. 예술적 감각도 높아 그림, 서예 등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을 위한 교육 지원이나 활동 공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최근 뜻이 있는 동포사회 예술인들이 모여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를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협회는 다가오는 12월 17일 서울 구로도서관에서 ‘아리랑 스토리’라는 주제로 재한 조선족 미술인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 서예, 조선족 이주사진전 등을 연다.

“중국동포들은 중국 연변과 한국 외에도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미국, 일본 등 각국에 나가있는 예술인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 계획이고, 협회 후원금으로 지속적인 동포이주와 한민족 전통문화 등을 접목해서 창작한 미술 전시회를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1005-903-049532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

◆ 한 중 두 문화의 가교역할로 동반성장 꿈꾼다

‘KC동반성장기획단(단장 림학/ 이하 KC기획단)’의 KC는 ‘Korean-Chinese(조선족)’, ‘Korea & China(한국과 중국)’를 의미한다. 한국에 정착한 중국동포들, 아직 중국에 남아있는 조선족 등은 두 나라 문화를 체험했다는 것이 정신적 자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어느 한쪽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기도 어렵다는 것이 생존조건의 한계일 수도 있다. 이에 KC기획단은 동포사회를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보다는 두 문화의 가교역할을 하며 소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싱크탱크 모임이다.

임 작가는 KC기획단의 단장으로 선출된 후 그동안 재한중국동포의 올바른 역사인식·시민의식 향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경제인 교류 협력·한국문화 탐방 프로그램 운영 등을 이끌어 왔다. 그는 최근 서울시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 대림동 ‘중국동포타운 투어’ 프로그램에 공동 주최사 단장으로 참여해 서울 시민들에게 붓글씨로 가훈을 써주는 재능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가 주로 써 주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처럼, 남·북·동포가 한민족·한가족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화목을 다져 차별 없는 사회, 평화로운 통일국가를 이루자는 것이 그의 소망일 것이다. 

코리안드림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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