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둥북아신문]‘군주민수(君舟民水)’가 교수들이 고른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이는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강물(백성)이 분노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말이다.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군주민수’의 원문은 ‘군자주야 서인자수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수즉재주 수즉복주(水則載舟 水則覆舟). 군이차사위 즉위장언이부지의(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로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니, 강물은 배를 뜨게 하나 뒤집을 수도 있다.
임금이 이를 알고 위기를 생각하면 그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광화문광장의 평화적 촛불시위는 대한민국의 희망이요 미래다.
머리가 허연 노인들부터 유모차를 탄 아기와 신혼 부부 그리고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들의 참여가 과거 민주화 세력의 시위와는 전혀 다른 다양하고 폭넓은 계층의 시민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시위는 강물 되어 흘렀다.
백두대간을 타고 광장에서 광장으로 반도의 끝까지 강물 되어 흘렀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강물이라는 순자의 말은 옳다.
그러나 그 옳음에도 불구하고 강물이 배를 수없이 뒤엎고 침몰시킨 적은 많지만 실제로 백성에 의해 군주가 쫓겨난 예는 흔치 않다.
진시황이 죽고 환관 조고와 이사가 전횡을 하던 시대. 진승과 오광은 만리장성 노역을 위해 진나라 병사에 의해 끌려가던 중 약속했던 날짜에 당도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법으로 이는 참형에 해당하는 죄이다. 진승과 오광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르짖으며 난을 일으켜 큰 호응을 받고 칭제를 했지만 결국 장한에게 패해 짧은 생을 마감한다.
우리나라에도 민란은 수없이 많이 있었다. 그때마다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고려시대 만적의 난과 조선시대 고부민란 즉 동학혁명 그리고 가까이에는 4.19혁명이 있다. 무인정권의 실력자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은 대대손손 이어지는 노비라는 신분제에 강한 불만을 품고 노비를 해방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충유의 가노 순정이 밀고하여 거사는 사전에 발각되었고, 만적을 비롯한 백여명이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만적의 난은 신분과 계급제의 타파를 위한 최초의 노비해방운동이었다.
동학은 최제우가 1860년 서학에 빗대 창시한 종교이다. 최제우가 양반 지배층의 반발로 처형되었지만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당한 최제우의 신원운동이 일어나 수만명의 동학교도들이 집결하였다. 이때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못 이겨 전봉준을 필두로 한 농민군이 관아를 습격한 것이 동학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정부는 수십만의 농민군을 달래는 척하면서 청과 일본 등 외세를 끌어들여 해결하였다. 결국 전봉준이 밀고자에 의해 체포, 처형되고 동학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의 처참함을 김삼웅 전 대한매일 주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군의 잔혹한 학살극으로 동학농민혁명은 30여만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진압되었다. 삼남지역은 시산혈해를 이루고 많은 마을이 폐허가 되었다. 일본군이 지나간 길목은 사방 10리에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인명이 살상되고 가축이 사라졌다.”
실패한 혁명의 뒤에는 처참한 살육의 냄새가 난다. 이처럼 수많은 민란이 강물처럼 일어났지만 배는 쉽게 뒤집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분노한 강물이 배를 전복시킨 것은 4.19혁명이었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는 전국적 시위를 야기했다. 시위 도중 사망한 김주열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상태로 바다에서 떠오르자 분노한 시위대는 경무대를 향했다. 데모를 막기 위해 경찰은 무고한 시민을 향해 발포하였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을 갔고, 이기붕의 가족은 아들 이강석에 의해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419를 실패한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뒤이어 발생한 5.16 군사 쿠데타 때문에 국가 개혁을 위한 아무 일도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많은 시민의 혁명이 시도되었다. 혁명이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의지는 강했고 촛불은 밝았다. 마침내 광화문광장의 시민혁명은 박근혜로 하여금 하야케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심 우려되는 바가 있는 것은 정치인들의 아전인수식 행태 때문이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즉 혁명의 완수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국가 대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말이다.
한낱 정치인들이 분노한 강물의 큰 흐름을 바꾸려 해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