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지난 11월 초순경에 통일포럼에 참여하고자 광화문광장 부근으로 갔었다. 이른 시간이라 광화문광장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데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 사람이 모여서 뭔가 구경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부채, 북, 의자, 장난감, 리모컨, 바구니, 냄비, 포장지, 오토바이 부품 등 온갖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무언가 싶어서 한 발 더 다가갔더니 ‘자세히 보아야 아트다. 너도 그렇다’라고 씌어진 안내판과 작은 정사각형 돋보기가 있었다. 그 안으로 들여다봤더니 반갑게도 세종대왕이 나타났고 거기에는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베르나르 프라'라는 프랑스 설치미술 작가가 570돌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과 한글을 주제로 만들었는데 정해진 위치에서 작품이 보이게끔 착시 효과를 이용한 작품이다. 재차 들여다보았다. '배달의 민족'이 적힌 피켓, 세종대왕 턱에 벌레 모양의 장난감, 세종대왕 얼굴과 익선관, 곤룡포가 각각 어떤 물건들로 만들어져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안내판의 제일 끝에는 ‘자세한 ‘세종대왕 이야기’는 세종문화회관 지하 1층에 가시면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광화문광장지하에 전시관이 있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세종이야기는 2009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개관하였고, 충무공이야기는 2010년 4월 28일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을 맞아 개관하여 현재까지 약 23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서울 관광 명소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세종 • 충무공이야기는 세종대왕동상 지하에 있었는데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과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생생한 역사 문화 공간이었다.

세련되고 디테일한 입구는 마치 조신시대의 궁궐문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계단을 따라 지하에 내려가면 세종이야기라는 간판이 보이고 문을 지나자마다 보이는 벽 화면 영상들은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훈민정음 창체,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편종 등이 부조형식으로 새겨져 있었고 반대쪽에는 고은 시인의 ‘아 세종’이라는 시와 송강 정철의 작품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씌어 있었다.

전시관 안내데스크에는 각 나라의 글로 되어있는 리플렛이 진렬되어 있었고 맞은편에는 5개 언어와 수화까지 지원되는 MP3과 PDA를 사용하고 있는 몇몇 외국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세종이야기에 들어서면 바로 눈에 띠는 것이 있는데 중앙에 설치된 세종대왕의 초상화와 임금님의 어좌이다. 그곳에서 중국 관람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한창 북적이고 있었다. 

세종이야기 전시관은 인간 세종, 민본사상, 한글창제, 과학과 예술, 군사정책, 한글갤러리, 한글도서관 등 7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대왕의 출생지, 가족관계, 품성과 취미 등을 소개하고 세종의 연대기를 소개하고 있는 인간 세종의 이야기와 세종의 부민고소금지법, 노비출산휴가제도, 전세제도 여론조사 등 민본사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시관 내부는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전시 작품 하나하나가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언해본, 월인천강지곡 등 대표적인 조선시대 한글 문헌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배경부터 훈민정음 반포까지의 과정을 나타내는 장면을 인형들을 통해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잠간 쉬어가려고 커피숍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사들고 한글이라고 새겨진 의자에 몸을 실었다. 가까운 곳에 터치스크린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한글 체험, 세종대왕이 창시한 보태평과 정대업은 터치스크린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직접 연주하면서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세종시대 제작된 편종, 편경과 종묘제례악과 구성 악기 등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세종시대 제작된 신기전과 실제 발사 영상이 생동하게 전시되어 있었으며 세종대왕의 평화적 외교와 천문학, 신악 창제 열정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3D 홀로그램으로는 앙부일구(해시계)와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관한 해설과 측우기, 혼천의 등을 관람했다. 

이 외에도 KBS 대하드라마 ‘대왕세종’ 영상을 관람할 수 있는 세종영상관,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관련 서적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읽을 수 있는 한글 도서관도 있었다. 비록 도서가 많지는 않았지만 서울시내 광화문광장의 지하에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니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외에도 한글을 소재로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획전시 공간 한글갤러리 등도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더해주었다. 

세종이야기와 충무공이야기, 광화문 아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서로 연계되어 있었는데 꽤 넓은 공간에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이 곳곳에 있어서 한참을 구경해도 다 못 할 정도였다. 이곳은 실로 유익하고 볼거리, 즐길 거리, 느낄 거리도 많은 전시관이었다. 

관람을 끝내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속에도 한글이 쫙 깔려있었다. 한글과 세종대왕에 대한 자부심을 가슴에 안고 광화문광장에 나왔더니 세월호 참사 추모 천막들이 광장거리를 누런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세종대왕동상은 더 근엄해 보이고 이순신장군은 여전히 매서운 눈초리로 광장을 지켜보고 있는데 ‘대통령 퇴진하라’는 현수막과 피켓을 든 시민들의 초불집회가 한창이었고 청와대를 향해 외치는 민중의 함성은 하늘높이 오래도록 울려퍼지고 있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지하로 아니, 세종대왕한테로 가고 싶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이 시국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란 작품이 건넨 질문을 곱씹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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