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먹거리의 천국, 쇼핑 천국, 세상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큰 도시 중 하나, 세상에서 마천루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 세상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 세상에서 출산률이 가장 낮은 도시, 세상에서 에스켈레이터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 불야성......홍콩의 최고에 대해서 말할라치면 끝도 없다. 꽤 오랫동안 나는 설이 되면 홍콩에 가서 설을 쇴다.  그것은 시댁이 홍콩에 있는 원인도 있겠지만그곳의 따뜻하고 습윤한 기후, 바다와 산, 맛있는 음식은 늘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게 홍콩이란
홍콩에 대한 원초적인 요해는 어릴때 TV에서 봤던 드라마가 전부였다. 마을에텔레비젼도 몇 대 없던 그 시절 “곽원갑”이며 “독수리영웅전”같은 드라마는 지금껏 내가 경험했던 최고의 經典드라마였고 오락거리였다. 그러면서 알게 된 홍콩배우들을 손꼽을라치면 주윤발, 황일화, 양조위, 옹미령, 미설, 장만옥, 관지림, 유가령…등등이다. 그때는 이런 스타들의 스티커사진을 구해서 필기장이나 교과서에 붙이는게 가장 행복한 일이였다. 그러면서 홍콩이란 그 작은 섬도시에 어쩜 멋진 남자들과 예쁜 여자들이 이렇게 많을까 하는 의문을 늘 품고 있었다.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냈지만 나의 사춘기를 행복하게 관통한 건 분명 홍콩과 대만 가수들의 노래였다.

홍콩과의 인연
역시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나는 2002년에 드라마틱하게 홍콩 태생인 남편을 만나 2004년부터 줄기차게 홍콩을 드나들게 되었다. 드디어 언젠가 홍콩에 한 번 가봤으면 하던 상상이 현실로 된 순간이었다.  매 번 갈적마다 적게는 일주일, 많이는 2개월씩 머무르며 나는 차츰 홍콩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므로 내가 쓰려는 홍콩 이야기는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이나 일반 관광객들의 소감과는 많이 다름을 미리밝힌다. 또한 쇼핑과 관광, 음식중에서 꾸준히 나의 사랑을 받은 것은 결국엔 홍콩의 다양한 음식이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겠다.

처음 홍콩으로 갈 때 나는 상해에서 심천으로 날아가 심천 라호구(羅湖口)에서 홍콩으로 건너갔다. 상해-심천은 국내선이지만 상해-홍콩은 국제선에 해당하기에 비행기표값이 차이가 많이 났다. 그래서 후에도 특별히 짐이 많지 않거나 딸애와 같이 가지 않을 때면 나는 종종 국내선을 이용했다. 홍콩의 9월은 한창 무르익는 여름이었다. 버스 유리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푸른 산과 바다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활력이 넘쳤다. 산도 없고 바다도 없는 상하이와 가장 대조되는 점이었다.

홍콩사람들은 비둘기 집에서 산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홍콩의 아파트였다. 레고를 맞물려 쌓은 것처럼 하늘에 닿을 듯이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는 꼭대기를 바라보려면 목이 부러질 정도로 몸을 뒤로 젖혀야 했다. 홍콩의 주거환경이 아주 비좁다고 남편이 사전에 귀띔을 해주었겄만 나는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을 마주하고 입이 벌어졌다. 한 마디로 말해서 홍콩의 아파트는 “참새는 작아도 오장육부를 다 갖추었듯”이 부부가 쓰는 침실, 자식들의 침실, 거실, 주방과 화장실 등 구조는 두루 갖추고 있었으나 크기는 한국의 원룸을 몇 개로 나뉘어 벽으로 막아놓은 듯이 작았다. 일인용 침대 하나가 들어가고 캐비닛 하나 들어갈 정도면 그게 곧 하나의 침실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집값이 비싸기로 평정이 나 있는 일본의 아파트는 토끼장에, 홍콩의 아파트는 비둘기집에 비유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홍콩의 아파트가격은 아파트높이만큼 하늘을 치솟는다. (홍콩의 개인주택은 대부분 50층 이상이다) 십여년전에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 홍콩을 바싹 따라오는 상해의 집세도 아직 홍콩에는 못 미친다. 홍콩의 집세는 2015년 기준 상해의 3배에 상당한다. 잘 나가는 골드미스인 K가 몇 년전에 홍콩의 도심을 벗어난, 새로 개발한 지역의 아파트를 샀는데 80평 남짓한 아파트 한 채가 1200만원이다. 주차장 하나에 80만원이라니 홍콩의 집값은 그야말로 금값이다.

홍콩은 사람 천지다
거리에는 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상해의 남경로 보행가처럼 관광명소도 아닌 곳에 이렇게 새카맣게 인파가 몰려있다니, 나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남편은 내게 홍콩의 인구밀도는 상해의 5배라고 알려주었다. 요즘에는 상해 인구밀도의 3배 정도 된다. 인도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 미국 사람, 영국 사람, 필리핀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거리에서 걸어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치마를 입은 남자들도 꽤나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문화를 별로 접하지 못했던 나에게 홍콩의 다문화와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유일하게 내게 위로가 되었던 점은 홍콩 사람들은 대부분 키가 작아 보통키의 내가 홍콩에 가면 꽤나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에서 보내는 설날-훙뽀우 준비하기
시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거의 해마다 설이면 홍콩에 가서 시댁식구들과 함께 보냈다. 홍콩의 설은 중국대륙보다 명절의 분위기가 훨씬 짙다. 거리와 상점엔 복숭아꽃으로 장식된 나무와 훙뽀우(紅包信封)로 장식된 나무, 귤나무들이 울긋불긋하고 다양한 사자와 용의 장식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설날의 홍콩은 빨간색과 노란색만 존재하는 것 같다. 집집마다의 유리창과 벽장, 대문에도 춘련(春聯)으로 빨갛게 도배를 한다. 집에는 귤이 주렁주렁 달린 귤나무, 혹은 노란색 망고가 대롱대롱한 나무, 진보라색의 호접난(蝴蝶蘭)화분이 테이블이나 창가를 장식한다.

설날엔 서로 친인척들을 방문하는데 집문에 들서기전부터 두손을 모아 읍하는 자세로 설날의 축복을 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부자 되세요”가 가장 흔한 축복이다. 동생들은 형이나 누나네 집에 설날 선물을 사서 가는데 대개는 쵸콜렛이나 겨울에 딴 표고버섯, 전복면 등을 빨간 포장지로 포장해서 선물하고, 선물을 받은 쪽에선 꼭 20원이나 50원을 回禮로 선물을 사온 사람에게 드린다.

나는 막내며느리였으므로 설이면 모든 형제들 몫의 선물을 다 준비해야 했다. 세뱃돈을 받을 때면 우리 민족처럼 절을 올리는 게 아니고 그냥 두 손을 읍한 자세로 덕담을 해야 하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세요”, “부자 되세요”, “만사가 형통하시길”, “새해 새로운 기상” 과 같은 듣기 좋은 말을 줄줄이 늘어놓아야 한다.  세뱃돈을 주는 방식도 부부가 한 몫을 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각자 돈을 줘야 하는데 50원, 100원씩 넣어도 그 숫자가 워낙 많아서 몇천원은 쉬이 나간다. 또한 나이에 상관없이 서른이고 마흔이고 시집 장가를 안 갔으면 언제라도 세뱃돈을 받을 수가 있었다. 예외없다.

친척들뿐아니라 설 기간에 만난 안면 있는 사람들의 자식에겐 모두 훙뽀우를 주고, 아파트단지의 경비원이나 식당의 서빙아줌마들에게도 이때는 모두 훙뽀우를 준다. 그래서 매번 설이면 훙뽀우를 백여개도 넘개 준비해야 한다.

시댁 친척들은 초이튿날에 모두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에  모여서 年夜飯을 먹고 세배를 한다. 탕이 먼저 올라오고 무침채, 볶음채, 디저트의 순서로 올라오는 명절 메뉴에 빠질 수 없는 것들로는 전복, 구운 아기돼지, 삭스핀, 年年有余의 의미가 깃들어있는 잉어모양의 투명한 찰떡, 동파육(东坡肉), 새우, 게 그리고  재부를 상징하는 발채(发菜)에 여러가지 육류와 생선을 넣고 자작하게 끓인 모듬찌개가 있다.   

오가는 인사와 덕담, 웃음속에서 훙뽀우와 선물을 주고받고 식사를 마치고나서는 불꽃쇼를 구경하기 위해 맏동서네 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홍콩정부에서 해마다 공식적으로 하는 설날 행사인 대형 불꽃쇼는 빅토리아항에서 초이튿날 저녁 8시에 시작된다. 20여분 정도 소요되는 불꽃쇼는 21888개 혹은 31888 등 길한 수자의 불꽃을 쏘아올려 홍콩의 밤하늘을 휘황찬란하게 수놓는다. 맏동서네 집은 전망좋은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빅토리아항을 마주한 조카애의 방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제격이다. 일부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불꽃쇼 생중계를 구경한다.

처음 맛보는 홍콩요리
처음 시댁에 갔을 때의 일이다.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니는 이 막내며느리를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셨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홍콩의 가정식 요리를 맛보았다. 시어머니가 내오시는 반찬그릇들은 유난히도 컸다. 브로콜리를 데쳐서굴소스와 간장을 넣은 반찬, 말린 조개살과 전복 그리고 冬菇와 发菜 (색상은 김과 비슷하나 엉켜진 실오라기처럼 한테 뒤엉켜져있는 나물, 중국어 발음이 發財와 같아 설날에는 빼놓지 않고 먹는 음식이다 )를 넣고 국물이 흥건하게 끓인 찌개류 그리고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이름모를 수십가지 약재들을 넣고 끓인 탕인데 늘 듣기만 하던 광동의 대표적인 음식인 煲湯이다. 이렇게 탕을 한 번 끓이려면 식재료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력과 돈이 적지 않다. 탕을 끓이게 되면 부모 형제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할 정도로 탕은 귀한 음식이다.

탕을 먹는 방법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탕의 건더기,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모두 건져서 접시에 담아, 수육을 먹듯이 간장에 찍어서 먹는데 식사 전에 먼저 탕을 한 그릇 마신다. 그리고나서 반찬과 함께 밥을 먹은 후 각자 밥그릇을 들고 가서 먹고 싶은 만큼 탕을 퍼와서 마신다. 남편은 오랜만에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음식을 먹게 되어 놀랄만한 식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비록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글로벌한 식성이라고 자부하지만, 밥을 먹기 전에 탕을 한 그릇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시어머니의 성의를 봐서 나는 기어이 내게 차례진 양의 탕을 다 마셨다. 간신히 내 임무를 완성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시어머니가 어느새 내게 탕을 한그릇 가득, 그것도 건더기까지 듬뿍 담아주셨다. 악 소리가 나올 뻔 했다. 나는 시어머니가 주방에 가신 틈을 타서 내 밥그릇에 있는 반찬들과 탕그릇에 있는 건더기들을 골라서 남편의 밥그릇에 옮겨놓고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았다.

얌차(喝茶)와 조식
“얌차하러 갈 래, 조식 먹으러 갈 래? “ 처음 홍콩에 갔을 때 남편이 이렇게 묻자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벙벙했다. 아침식사를 밖에서 한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겠는데 조식과 얌차가 어떻게 다르지? 남편은 이어서 시간이 넉넉하면 얌차하러 가고 시간이 빠듯하면 조식을 먹으러 가자고 덧붙였다. 그 말은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내가 얼마나 빨리 문을 나설 준비를 할 수 있냐는 물음이고 또 하나는 얌차는 시간이 걸리는 식사이고 조식은 빠른 식사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조식은 한 마디로 분식집과 비슷한 식당인데 라면이나 스파게티, 계란 후라이, 소세지, 토스트, 샌드위치 등과 커피, 레몬차, 코코아 등 음료를 세트로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곳이고 얌차는 정통홍콩의 음식문화이다. 얌차 레스토랑은 대부분 규모가 100명이상 용납할 수 있는 큰 곳이고 이름 또한 모모대주점이라고 되어있다. 레스토랑에 와서 얌차하는 사람들은 신문을 사들고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여유있게 차를 마시면서 딤섬을 시키는 사람들이다. 나는 홍콩의 딤섬을 먹어보자마자 그 맛에 깊이 빠져버렸다. 결론적으로 나는 홍콩에 가서 며칠만 있으면 날씬한 몸매가 글로머로 변한다.

 

홍콩에서 훠꿔(打邊爐)를 먹다
홍콩에 오면 내가 빼놓지 않고 먹는 음식중에 한 가지가 홍콩식 샤브샤브이다. 홍콩식 샤브샤브는 담백하고 식재료의 종류가 많다. 특히 해산물의 종류와 오뎅, 푸른잎 야채 종류가 많다.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매일마다 뭘 먹고싶냐고 묻는 시댁식구들의 질문에 샤브샤브를 먹고싶 다고 했더니 막내시누이가 집에서 해 먹자고 했다. 오후가 되니 막내시누이가 슈퍼에서 갖가지 재료를 사서 카트에 담고 집에 들어섰다. (여기서 잠깐 홍콩의 아파트단지에 대해 설명을 드린다면, 대형 쇼핑물 부근의 아파트는 편의상 쇼핑몰,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어 아침에 문을 나서면 온종일 실외에 나가지 않고도 슈퍼에 가서 장을 보고,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갈 수 있다.  슈퍼의 카트는 돈 100위안을 보증금으로 내면 슈퍼에서 자기의 집에까지 밀고 올 수 있다)

저녁 8시, 모든 식재료가 밥상에 오르고 탕이 끓기 시작하자 나도 조카가 하는대로 생계란에 마늘 튀긴 것과 생마늘, 기름고추, 고추, 간장 등을 넣어 난생처음 먹어보는 소스를 만들었다. 시누이가 오뎅속에 치즈가 들어있다며 하나 건져주었다. 그런데 안에는 치즈가 아니고 연어알만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하여 식구들은 앞다투어 내게 치즈오뎅을 골라준다며 계속 여러가지 오뎅을 건져주었고그리하여 나는 갖가지 오뎅만 계속 먹어대고 있었고 드디어 조카가 또 내게 오뎅을 건져주며 이건 100% 확실히 안에 치즈가 들어있다고 했을 때 나는 긴가민가했다. 두 시누이는 이러다가 미란이는 다른 걸 못 먹고 오뎅으로 배를 불리겠다며 극구 반대했으나 오뎅은 이미 내 그릇속에 들어왔고, 내가 한 입 베어무니 아, 드디어 달큰한 치즈가 베어나왔다. 그리하여 나는 끝끝내 치즈오뎅을 맛보았고, 달큰한 치즈에 톡 쏘는 맛이 나는  와사비치즈 오뎅이었다. 매 번 시댁식구들은 내게 색다른 음식을 맛보이기 위해 신경을 썼다. 공용 젓가락으로 서로 반찬을 집어주며 “고마맙습니다”라는 인사가 끊이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식사는 계속되었다. 샤브샤브를 먹을 때면 나는 생선이나 치즈오뎅 외에도 튀긴 물고기껍질과두부피, 타조고기, 생굴, 키조개를 즐겨 먹는다.

홍콩 여행의 필수코스-태평산정
홍콩투어의 명소를 손꼽으라면 첫 번째로는 태평산정을 추천한다. 홍콩의 숨막히는 듯한 아파트와 상점들,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파에 진저리가 난다면 훌쩍 그곳을 벗어나 산위로 올라가보자. 태평산정은 홍콩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곳으로 그곳에선 빅토리아항과 구룡반도의 전경을 구경할 수 있다. 빨간 색의 산악기차를 타고 올라가면 금세 도착하는데 아래를 굽어다보면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산의 품에서 우뚝 솟아있는 홍콩의 상징적인 건물들은 홍콩이 아시아금융중심지라는 것을 깨우쳐준다.

이곳에선 마담 투소의 밀랍인형 박물관에서 이소룡과 한 판 겨뤄볼 수도 있고, 피크 타워에서 식사를 하며 360도로 홍콩을 굽어볼 수 있고, 기념품관에서 아기자기한 홍콩의 여행기념품을 살 수도 있다.  일몰시간을 미리 체크해서 느지막한 오후시간에 간다면 홍콩의 낮 풍경과 야명주같은 밤의 홍콩을 모두 구경할 수 있다.
가까이서 홍콩의 야경을 구경하고 싶다면 빅토리아항의 “홍콩 스타의 거리”를 가보는 것도 좋다.

南丫島-도심속의 오아시스
한국에 남이섬이 있다면 홍콩에는 유명한 배우인 주윤발의 고향 남아도가 있다. 매일 시끌벅적한 설날 분위기에 살짝 지친 어느해 설날, 셋째동서네는 우리 식구 셋을 데리고 남아도로 일일관광을 떠났다. 남아도는 홍콩섬중심(中環)에서 여객선을 타고 35분쯤 가면 된다. 배에서 내리자 나를 반긴 것은 고요한 어촌의 풍경이었다. 이곳이 홍콩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곳엔 하늘을 찌를듯한 마천루도 없었고 오로지 우거진 나무와 무성한 풀, 들꽃 그리고 아기자기한 식당, 까페, 수공예품 가게들만 있었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그 곳은 무공해지역으로 유일한 교통수단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거였다.

조용한 오솔길을 따라 마을 중심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바나나나무와 용수나무가 우거지고 개구리 울음소리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구성져 고향에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2월이지만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유명한 먹거리인 썩두부(臭豆腐) 장수앞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얼른 줄을 서서 썩두부를 사 먹었다.

그곳에서 잠깐 쉬고 더 내려가자 바다와 모래사장이 나타났다. 딸애와 조카애는 지치는 줄도 모르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성을 쌓으며 한나절을 보냈다.

해양공원
디즈니랜드와 해양공원 또한 관광객들이 빼놓을 수 없는 필경코스다. 2005년 9월에 오픈한 디즈니랜드가 2006년 처음으로 춘절을 맞았을 때 관광객수는 예상을 초월했고 급기야 디즈니랜드측에서는 일일 관광객수를 공제하기에 나섰다. 이미 입장권을 산 많은 관광객들은 입장을 할 수 없어서 아우성을 쳤고 텔레비젼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 그 뉴스를 보도했다. 그때 딸애가 너무 어렸으므로 나는 몇 년후에야 딸애를 데리고 갔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실망했다. 대신에 나는 해양공원은 해마다 간다.

놀이공원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찍 1977년에 지어진 해양공원은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놀이공원으로 산과 바다가 있는 곳에 지어져 공간적, 시각적 느낌부터 다르다.  산 정상의 “고봉낙원”과 해안의 “해빈낙원” 두 개의 큰 관광코스가 있는데 각 구격은 케이블카로 이동한다. 설에 그곳을 찾으면 놀이시설 외에도 덤으로 설날 주제의 여러가지 공연을 볼 수 있고 입구부터 노란 국화며 귤나무, 핑크빛 복숭아나무로 예쁘게 장식되어 명절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상해에 디즈니랜드가 지어지고, 많은 중국 국내의 관광객들이 한국이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딸애의 어린 시절에 많은 추억을 남겼던 해양공원도 근래에는 관광객이 현저히 줄어 적자가 났다. 디즈니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뉴스에서는 그 대안책으로 해양공원의 입장료를 13%나 올린다는 슬픈 기사를 보도했다.

그래도 홍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나는 모양이다. 2년 사이에 새로운 아파트는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 오늘도 홍콩사람들은 쉬임없이 하늘을 향해 레고쌓기를 한다. 에스켈레이터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고 얌차를 하는 레스토랑의 테이블엔 사람들로 물샐틈 없다. 주강은 여전히 흐르고 수많은 화물선이 항구를 떠나고 돌아온다. 이 도시는 변함없이 빠른 절주로 오늘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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