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법문자의 발전과정을 보면 갑골문-금문/대전체-예서체-章草(今草,狂草)-해서-행서의 순서로 이어졌다고 볼수 있다.

1.隸書의 기원

예서는 古隸 또는 八分이라고도 한다.戰國時期(기원전475-기원전221)에 출현하여 발전,성숙단계를 거쳐 동한시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이 시기 예서체의 출현으로 한자문자역사상 한 획을 긋는 전환점이 되였다.번잡한 전서체의 일상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간략한 예서체를 사용하게 되였다.한나라에서는 예서체를 당시 표준문자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한나라 한무제 시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예서를 고예 또는 팔분이라 하고 그 이후의 예서를 今隸라고 부른다.章草와 楷書는 그 기초를 예서에 두고 발전하여 왔다.章草(今草,狂草)한나라 때에 해서는 한나라 말,晋나라 초에 기원하였다.예서는 篆書를 이어받아 초서와 해서를 산생시킨 매개체 역할을 한 글자체로서 현대 한자의 모양새를 거의 갖추고 있어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글자체는 아닐것이다.

      古隸作品

2.예서의 특점

1)예서체의 글자형태는 가로 놓은 장방형 모양을 취하였다.전서체가 세워놓은 장방형에 반하여 횡적으로 즉 좌우 양측으로 획을 뻗쳐가는 특점이 있다.2)가로금획의 첫 시작이 누에머리 같고 마무리 부분이 기러기 꽁지 같다하여 "蠶頭雁尾"라고 한다.3)왼쪽으로 향하는 별획과 오른쪽으로 향하는 파책이 있는것이 뚜렷한 특징이다.4)한 글자안에서 가로획이 둘 이상 있을 때는 그 중 하나의 가로획에만 파책을 사용한다."雁不二飛"란 말이 곧 그 뜻이다.5)전서체의 획이 원필이라면 예서체의 획은 방필로 되여 있으며 전서체의 단순획에서 발전하여 예서체에서는 보다 많은 종류의 획모양을 갖는다.6)운필에 있어서 전서체는 일정한 두께의 고르로운 획으로 되였지만 예서체는 提按의 작용으로 강약이 뚜렷하여 전서체의 단일한 획과는 다른획의 굵기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3.예서발전의 2차 고봉기

전국시기에 기원하여 동한시기에 1차 고봉에 올랐던 예서에서는 兩漢 초기에 秦隸 즉 진나라의 전서체 형태를 많이 띈 서체의 풍격을 나타내다가 후에 점획과 파책의 사용으로 동한시기에 많은 풍격있는 서체가 출현하였다.(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서체는 개개인의 글씨에서 나타내는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풍격을 말하고 글자체는 획의 특징에 따라 분류한 예하면 전서체.예서체,초서체,해서체,행서체 등을 일컫는다.많은 사람들이 이를 혼동시하여 말하는데 사실상 엄격한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그 당시 적지 않은 石刻을 남겼는데 대표작으로는" 張遷碑, "曺全碑"가 있다.魏晉南北朝 이후에는 초서,해서,행서가 빠르게 발전하였는데 그에 반하여 예서는 별다른 변화없이 답보상태로 침묵기에 접어들었다.그러다가 청나라 말기에 碑文學이 부훙하는 사조가 일어났다.대표적인 서법가들로는 鄭燮,金農이 있다.그들은 한예의 기초상에서 새로운 풍격을 창출하게 되였다.

 

예서는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먼 옛날의 글자체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글자체와 거의 같은 모양임을 알수 있다.중국 서법문자사상 일대 혁신을 일으킨 글자체라고 할수 있을만큼 예서체의 출현은 그가 갖는 의미가 자못 크다.예서의 기초상에서 초서,해서,행서와 같은 오늘 날 우리가 그 혜택을 다분이 받고 있는 글자체들이 세상에 나올수 있었던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자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나 서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예서체 공부를 하는것이 위로는 전서체 아래로는 초서,해서,행서 등 여러 글자체를 익히는데 여러 모로 도움이 되리라 믿어 마지 않는다.

자고로"漢隸唐楷"란 말이 있다.한나라의 예서요 당나라의 해서란 뜻이다.그 시기의 찬란한 서법예술의 전성기를 함축있게 표현한 의미심잗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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