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화순 프로필

중국 심양 소가툰 출생. kbs방송국에 수필 다수 발표, 우수상과 장려상 여러 번 수상, 특집에도 당선.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서울=동북아신문]전날 종일 눈이 내렸는데도 찌쁘둥한 하늘은 아직도 한이 안 찼는지 그칠줄 모르고 눈보라까지 치면서 내리고 있다.

눈보라속을 헤치며 나와 언니는 아들애를 데리고 왕년과 마찬가지로 심양에서 영구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정월초이튿날, 영흥농장에 계시는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였다. 눈이 너무 많이 내린데다가 눈보라까지 치니 그 추위는 몸서리가 날 정도였다. 그러나 열차안의 온도는 훈훈하여서인지 추위를 느끼지 못한채 어느새 열차는 영구종점까지 와서 섰다.

우리는 여러여객들과 같이 차에서 내려서 1번 버스를 타고 료화강변에서 내려서 2000미터나 되는 강을 건넜다.

강 건너편에 가서는 하루에 한번 통하는 버스를 꼭 잡아타야만 했다. 너무 추운 날이여서 다섯살 난 아들애 한테는 입마개며 모자 목도리를 잘 둘서서 외투까지 입혀서인지 춥다는 표정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버스정류소에 도착하니 문은 꽁꽁 걸려있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길이 막혀서 버스가 안 통하는것이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였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아는 사람도 없고 여기서 걸어갈려도 50리가량 거리가 되였고 어린 아들애는 또 어떻게 데리고 간담…… 안타까운 마음을 초잡을수가 없었다.

눈보라가 더 세차게 불어 의지할데가 없어 그옆의 작은 반점에 발을 디디였다. 그 곳에도 우리와 같은 여객 10명이나 있었다. 그 들 역시 방법이 없어 어쩔바를 몰라 하든중. 어떤 한분이 동정어린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조금만 기다려봅시다. 저의 친척집에서 손잡이 뜨락또르를 몰고 오니 우리 함께 타고 갑시다.”라고 하셨다. 이 뜻밖의 말씀이 저의 온몸의 추위와 큰 걱정을 다 녹여 준것 같았다. 오리지 않아서 “통통통..”소리와 함께 뜨락또르는 이곳에서 멈추었다. 뜨락또르의 모양은 어디로 가고 마치 흰 눈덩어리가 서있는것 같았다.  운전수가 하시는 말이 올때 안간힘을 다 내서 왔다고 하면서 갈길이 막막하다는것이였다. 우리는 무슨 체면도 없이 한분한분 비좁은 뜨락또르바구니에 몸을 실었다.

 “통통통..”뜨락또르는 앞으로 달렸다. 겨우 마을을 지나니 길은 하나도 안보이고 크고 작은 눈더미가 군대군대 다 막아놓았다. 숨박곡질이 아닌 눈더미속으로 요리조리 길을 헤아리며 겨우 달렸다. 그러다가는 너무 깊은 눈속은 뚫고 가지 못하고 길을 멈추여야 했다. 사람들이 내려서 눈을 치우고 차를 밀어야 조금씩 달리군 했다. 매얀 들판이라 윙윙 북풍이 울부짖는 그 소리는 마치 흉악한 승냥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인제는 “0”호 기름도 얼어서 통안에서 서벅거리는 얼음을 건져 내고는 좀 달렸는데 처음에는 5분가량 달렸으나 인제는 2분도 못가고 발동을 멈추었다. 아직은 종점까지 갈려면 25리나 남아있다고 하였다. “텅텅텅..”하는 소리와 함께 발동은 아주 멈추게 됐다.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차바구니에서 내려야만 했다. 사람들은 눈보라를 헤치며 뚜벅뚜벅 간신히 길을 헤매며 앞으로 걸어갔다. 나와 언니도 아들애를 번갈아 업고 그들의 밟은 박자국을 따라 걸었는데 아들애는 추위를 참지 못해 손이야 발이야 하며 울어댔다. 나는 아들애의 손도 만져주고 발도 주물어 주었으나 울음소리는 더 컸다. 어른이 된 저도 방법이 없어 같이 큰소리로 울어댔다.

이때 우리 앞에서 걷던 웬 청년이 나의 옆에 오더니 아들애를 몇번 운동시키고는 “제가 업고 걸어봅시다.”하며 아들애를 덥석 앗아 업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머리을 들어 먼곳을 바라보니 집 한채가 어렴풋이 보였다. 우리는 걸음을 재촉하여 그 집으로 들어갔다. 사람 한분 살지 않은 벽을 굽는 집이라서 출입문도 없는 어슬픈 빈집이였다. 그 빈집에 들어간 우리는 마치 화독옆에 선것처럼 훈훈하였다. 그 두터운 바람벽이 그 억센 광풍을 막은 까닭이였다. 우리는 10분가량 휴식을 취했더니 몸이 거뜬해서 살거 같았다.

그 청년은 또 다시 아들애를 업고 걸었다.목적지가 가까워오니 마음은 더 훈훈해졌다. 걸어오면서 이야기 나눈 결과 청녀은 연변어느 과수원에서 일한다는것만 기억하였다. 

 소매점에 들려 물건도 살겸 그 청년의 주소도 물어보고 그이한테 감사의 뜻을 표시하리라 생각했다. 소매점까지 도착하자 그이는 아들애를 내려놓고 “좀 나갔다 오겠어요.”하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물건을 다사고 한참이나 그이를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후 눈이 오면 항상 그 천사를 못 잊는다. 아니 잊을수가 없다. “보통키에 후리한 몸매, 호리 길숙한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그이”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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