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안민 장시운 변호사의 생활법률 칼럼①

▲ 장시운 변호사
[서울=동북아신문]외국인 권리 보호를 위한 법률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는 법무법인 안민에 합류한 지 며칠 후, 필자에 맡겨진 첫 임무는 강제퇴거명령을 받고 외국인 보호소에 유치되어 있는 중국인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형사 구속, 보호소 유치 등의 인신구속절차가 늘 그러하듯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속성이다.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정은 보호대상자를 만나서 듣기로 하고 무작정 인천외국인보호소로 달려갔다.

중국 국적자인 A는 허무인, 즉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명의로 위조된 여권을 가지고 한국에 입국한 불법체류자였다. 비록 불법체류자 신분이었지만 A는 한국에 계속 거주할 목적으로 창호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이를 근거로 재외동포(F-4) 사증까지 발급받았다.

허무인 명의로 한국생활을 이어오던 A는 우연한 기회에 출입국관리국의 불법체류자 자진신고 지원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허무인의 이름으로 사는 것에 대해 불안감과 회의를 떨쳐낼 수 없었던 A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족쇄와도 같았던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던지고 본인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리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A는 불법체류자임을 신고하고 자진 출국하였다가 한 달 후 다시 한국에 재입국하였고 비로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출입국관리국에서 말한 대로였고, A는 이제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A가 가지고 있던 창호 기능사 자격증은 허무인 명의로 발급된 것이었으므로 A는 귀국하여 이를 자신의 명의로 바꾸고자 하였고, 한국 정부(산업통상자원부)에 이를 문의하였다. 명의 변경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심사하겠다는 담당자 말을 믿고 기다리던 A는 얼마 후 수사기관으로부터 뜻밖의 구속을 당하게 되었다. 기술사 자격증 발급을 담당하던 담당자가 가명으로 자격증을 허위발급 받았음을 이유로 A를 경찰에 신고하였고, 수사 결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에 넘겨지게 된 것이었다. 재판 결과는 집행유예였지만, 그것만으로도 A는 출입국관리법 제46조 제1항 제13호에 의하여 강제퇴거 대상자가 되고 말았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법의 각 분야가 독자적인 판단영역을 가진다는 점에 있다. 풀어 설명하면 민법, 형법, 행정법 등의 각 분야는 다른 법 분야에서의 판단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위법성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간통죄이다. 형법의 변화로 간통죄는 더 이상 형사적으로 죄는 아니지만, 여전히 혼인생활에 대한 의무위반으로서 민사적으로는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불법행위이다.

A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자진신고 제도에 의해 불법체류자의 죄를 감면해 주겠다는 출입국관리국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행정법 영역에서의 판단일 뿐, 형법의 영역에서 A의 행위는 여전히 공문서위조죄 및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였다. 자진신고하면 불법체류자의 잘못을 없애 주겠다는 출입국관리국의 결정이 검찰·법원 등 사법부의 판단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과연 타당한가. 각 법률이 각자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이 원칙이란 해석으로, 정부의 계획을 믿고 불법체류 신분을 자진신고한 A에게 강제퇴거의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옳은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법률은 구체적인 사례에 있어 개인의 정당한 신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제도인데, 제도의 기계적 적용으로 인해 개인이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례에 있어 A는 같이 불법체류 신분을 신고하고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는 다른 동포들, 심지어 불법체류 신분을 신고하지 않고 여전히 불법체류 중인 다른 동포들과 비교하여 너무나 억울한 처우를 당하게 된 것이다.

다행이 A의 경우 법률 전문가 및 출입국관리 업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출입국관리국에 억울한 사정을 적극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보호조치 해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A가 겪은 것과 같은 억울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게끔 정부 각 기관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다른 법 적용 기관과의 충분한 상호 협의와 공조체계를 갖추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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