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2013년6월 8일 길림 신문 한국지사에서 주최한  강원도 국제무역투자박람회 투어에 참가하여 강릉에서의 즐거운 여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서 장엄한 해돋이로 유명한 정동진은 마을과 항구, 바위, 해수욕장, 산이 잘 어울려져 경관이 아름다운곳 이였다. 그 중에서도 절벽 위에 위치한 정동진의 해돋이 조각공원은 풍경이 아름답고 다양한 조각들과 열대성 나무들이 어울려 묘한느낌을 주었다.

썬쿠르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욱 황홀했다. 썬쿠르즈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일호작가의 조각품이였는데 나르시즘이란 제목이였는데 나체의 여인이 자신의 육체를 흠상하는 모습이였다.

나르시즘이란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자기애(自己愛)라고 번역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연관 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말이다.

자기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 "나르시즘에 빠졌다"고 말한다. 물론 자기만 사랑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늘 잘난 체 하는 나르시즘은 심리적 장애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은 것 같다. 중국이라는 특정적인 사회체제 속에서 겸손만 미덕이라고 믿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죄를 짓듯 늘 피해왔던 우리다.

처음으로 한국교회에 나갔다가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여 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듣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나도 이 세상에 태여 난 것이 진정 사랑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에 감정이 울컥해졌다. 아들이 태여 나기만을 바라는 박씨 가문에서 주렁주렁 딸 중의 셋째 딸로 태여 난 것이 죄였는지도 모른다. 부모들이 다른 집의 남자애와 나를 바꾸었다가 사흘 만에 되돌려왔다는 사실에 늘 소외감을 느꼈던 나의 어린 시절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있는 70여만명의 중국조선족들 그들은 한푼 이라도 더 벌어 가족들에게 보내려고 아글 타글 십 여년 지어 20여년을 한국땅에서 서러운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정작 나 자신을 위한 것은 념두에도 없다.

다행인 것은 이번 강릉 국제무역박람회 투어에 참석하신 120여명의 동포들은 자기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감이 생기기도 했다.

 
한밤중에 바다를 옆에 끼고 앉아 지인들과 막걸리를 안주 삼아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낮에 평온했던 바다와 달리 밤에 바라보는 바다는 검푸름 하기는 했지만 물결은 더 부드러운 듯 싶었다. 인간들이 바다를 찾아 헤매는 것은 바다가 마치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 양수와 같은 감각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 멀리에서 열애 중에 있는 두 쌍의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한족여성과 조선족 남성이 한 쌍, 한국남성과 조선족여성이 또 다른 한 쌍이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 그것은 우선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져 있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고 타인으로부터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없다. 남을 사랑하기에 앞서 내 자신을 마음껏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던 여행 이였다.

자기 안의 아픔, 불안, 또는 욕구는 남이 아닌 자신이 먼저 알아주어야 한다. 여행자들이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 되여 감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내가 바다에 발을 담그고 싶었던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일상에서 해탈되고 싶었지만 미처 내 마음속의 웨침을 듣지 못했던 탓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의 마음을 못 본체 하고 지나가면 사람이 미워지고 결국 나아가서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완전할 수 없으니 마음 안에 갈등은 끊이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알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만큼 자기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진다. 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는 만큼 사람들에 대하 미움이 줄어들게 되고 타인을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사회생활에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제인 경포대의 넓고 깨끗한 호수를 여러 명이 함께 타는 자전거로 한 바퀴 돌다가 <박신과 홍장>의 사랑을 상징하는 조각상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르시즘-- 자기애가 있는 사람이 오늘의 가장 매력적인 인간이 아닐까. 쉰 세살의 끝자락에서 나르시즘으로 나를 되찾아 본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