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楷書體는 한자서법의 5대 글자체 즉 전서체,예서체,초서체,해서체,행서체 중의 하나이다.반듯한 이미지로 광범위하게 서법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많은 사랑과 중시를 받고 있다.역대 많은 서법가들이 해서체로 그 유명세를 떨쳤는바 해서체에 고유한 미적 가치는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것 같다.우리들이 현재 실생활에서 접하고 있는 문자의 많은 부분이 낯익은 해서체로서 서사생활의 필수체로 되였으며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 더없이 친근감을 준다.

 1.해서체의 출현. 해서체는 한나라 후기에 古隸로부터 만들어진 글자체이다.위진시대를 거치면서 鐘繇,王羲之 두 대가의 주도로  발전,성숙하여 당나라에 이르러 하나의 글자체로 확립되여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초기의 해서체에는 극히 적으나마 예서체의 필획흔적이 잔존하였다.초기의 해서체를 보면 예서에서의 파책이 그대로 남아 있고 가로금획이 길고 내리금획이 짧은 형태를 그대로 나타내였다.글자의 結體를 보더라도 예서에서처럼 눕혀 놓은 장방형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위진시기의 초기 法帖들 중에서 이런 흔적들을 찾아 볼수 있다.

2.해서의 특점. 해서의 글자모양은 예서의 가로 장방형모양에서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변화하였고 예서의 곡선적인 획에서 해서에서는 곧은 필획으로 변화하였다.해서는 단아하고 반듯하여 글씨체의 표준으로 인정되였는바 그로하여 모범적인 글씨체를 뜻하는 의미에서 해서라 불려지게 되였다.해서를 正書 또는 眞書라고 부르기도 한다.역대 많은 서법가들이 해서체로 그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였다.

                      鍾姚의 宣示表

3.해서의 대표적 서법가들.1)鍾繇(기원151년-230년)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며 서법가이다.팔분,해서,행서에 뛰여났고 특히 해서체의 명수로서 한자 해서체의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가이다.그를 지칭하여"正書之祖"라고 한다.그는 또한 小字해서의 창시자이기도 하다.그의 필적으로는"宣示表","薦季直表","賀捷表"등이 법첩으로 전해지고 있다.2)王羲之(기원151년-기원230년)자는 逸少이고 우장군의 벼슬을 하여 王右軍이라고도 불리였다.東晉시기의 서법가이고 書聖이다.그는 당시 미성숙단계에 있던 해서,행서,초서를 예술적인 글자체로 완성시킨 공적이 있다.그는 예서체에도 능하였다고 한다.그의 주요 작품들로는 해서체로 쓴"黃庭經","행서체로 쓴 '蘭亭序" 초서체로 쓴 "十七帖"이 있다.아들 왕헌지와 함께 "二王"또는 "羲獻"으로 불리였고 종요와는 "鍾王"이라 세간사람들로부터 불리게 되였다.3)王獻之.왕희지의 일곱째 아들이다.부친 왕희지와 함께 "이왕"으로 불리였다.대표작으로는 "洛神賦","中秋帖"등이 있다.4)智永.육조시대 陳나라의 승려이다.작품으로는 '眞草千字文'이 있다.해서와 초서 천자문을 800번 썼다고 한다.그가 글씨를 쓰면 닳아 못 쓰게 된 붓이 너무 많아서 그 禿筆을 땅에 묻었는데 그것을 "頹筆塚"이라 불렀다.5)毆陽詢.해서체의 최고 경지를 이루어 "楷法極則"이라 불리웠다.그의 대표작으로는 해서 石刻으로 된"皇甫誕碑","九成宮禮泉銘" 등이 꼽히고 있고 행서작품으로는 "張翰帖","卜商帖"이 있다.그의 해서는 당대뿐만 아니라 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어 일본까지 영향을 끼쳤다.6)顔진卿.당나라 관리이고 서법가이다.그의 대표작으로는 해서인"東方朔畵贊","馬姑仙檀記","祭姪文稿"와 행서체인 "爭坐位帖"이 있다.7)虞世南. 당나라 越州餘姚 사람이며 자 伯施이다.초당의 3대 서법가(구양순,저수량,우세남)의  한사람이다. 당태종의 신임을 얻어 홍문관학사가 되어 문한을 관장했다.그의 글씨로는 "孔子廟堂碑"가 유명하다.시에서도 재능을 보였는데 시문집"虞秘監集"이 있다.8)저수량.당나라 초기의 3대 서법가 중의 한사람이다.절강사람으로서 자는 登善이다.필적으로는 "伊闕佛龕碑","孟法師碑","雁塔聖敎序碑"가 있다.9)柳公勸.자는 정평이며 시문에 능하며 초서와 예서에도 능하였다.그의 필적으로는 "金剛般若經이 있다.

               王羲之의 작품

당나라는 해서의 절정기라고 할수 있을만큼 해서가 융성한 발전의 양상을 띄였고 많은 우수한 서법대가들이 출현하였다. 초당의 대표서법가로는 구양순,우세남,저수량이 있고 중당에는 안진경, 말기에는 유공권이 있다.

               毆陽詢의 작품

옛사람들이 서법을 습득하는데 있어서 전해니려오는 일설이 있다.서법은 먼저 해서로부터 시작하고 글씨는 대자해서를 먼저 쓰되 안진경의 글씨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며 중자해서는 구양순의 글씨를 본받아야 한다.중자해서가 숙련된 다음에 소자해서를 배우는데 종요의 글씨를 본받아야 한다는것이다.하지만 실천적으로 검증된바에는 초기 단계의 서법공부는 대자해서를 배우기 보다는 중자해서를 먼저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우리의  실생활과 가까이 있는 그리고 접할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은 글씨체가 당연 반듯한 해서체 글씨일것이다.서예를 배우고저 하는 초학자들은 먼저 해서체를 익히고 그 다음 다른 체를 익히는것이 순서이다.꼭 그렇다고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저한 해서체의 필획만이라도 먼저 익히고  난다음 다른 글자체를 공부하는것도 좋을 것이다.서법공부의 특성상 순리를 지켜나가는것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될것이기 때문이다.서법공부는 부지런하고 지속적이고 인내심을 갖는것이 지름길이다."소년명창은 있어도 소년서법가는 없다"는 말처럼 서법공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기에 오랜 시간의 연마를 통해서만이 성숙의 정도에 도달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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