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세만/칼럼니스트/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본지 편집위원
[서울=동북아신문]표 나게 꼼꼼히 따지고 원칙과 법에 충실한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들어가는 데도 닫혀있던 문은 반드시 닫고 들어간다. 금방 다시 나오니까 열어놓은 채로 들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대로 조금 비뚤어진 집안의 거울을 보고도 얼굴만 보면 되지 하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식이 몸에 밴 우리와는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다.

한국인은 사소한 문제에서도 음성을 높여 가며 논쟁을 벌인다. 불거져 나온 사회 이슈에서는 가차 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1인 시위’, 집단데모를 벌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인권수호이고 애국이라고 이들은 자랑스럽게, 용기 있게, 목청 높여 말한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시위, 결사, 출판언론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을 잘 활용 해 나가고 있다. 이들은 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오인하지 않는다. 국가와 정권 구분이 잘 되어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젖은 우리는 정권을 반대하면 바로 그 나라를 부정하고, 조국을 ‘배반’하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지난 촛불집회 때다. 나도 서울 촛불데모에 나가려고 했는데 와이프의 반대로 단념했다. 대통령이나 정부비리 시위에 나섰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자칫 추방될 수 있다는 아내의 수다이다. 외국인으로서 그런 시위행렬에 끼어들지 않는 것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12차례의 애국평화문명 촛불데모를 TV생중계로 시청했는데, 정말 세계의 열광적인 칭송을 받을 만도 했다.

이처럼 한국국민들은 잘하고 있다. 하지만 큰 ‘사변’이 있을 때면 ‘언론방송’, SNS에서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옴니암니 따질 때 불쾌한 생각이 든다. 애국과 국가 안보는 보수, 보수는 저들이 한국의 원조(原祖), 한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통 한국인이 아닌 ‘이국 사람’, ‘타민족’으로 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국가와 정권 구분은 잘 하는데 국가와 민족을 잘 구분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닐까 내 나름대로 생각 할 때도 있다.

실지 노란 머리, 파란 눈, 검은 머리와 곱슬머리도 한국의 국민이 될 수 있다. 황차 피치 못한 사정으로 다른 나라에 갔다가 모국에 돌아 온 한인 동포들이야 더 말 해 뭘 하랴. 한국 원주민이나 한국국적 받은 모든 한(韩)민족, 타 민족은 모두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 제가 살고 있는 나라가 안 되기를 바라고, 교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은 56개 민족이 있는 거대한 나라이다. 그래도 중국인은 국가와 민족을 잘 구분한다. 정부도 소수민족에 대해 우대정책을 많이 쓰고 있다. 국가에서는 민족사업 단위에 재정을 한족(汉族)에 비해 가급적으로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이 규례로 되었다. 이런 우수한 민족정책이 세계 많은 나라의 인정을 받고 있다.

중국의 여러 형제 민족이 혜택을 누비며, 포옹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 한민족(韩民族)이 그럴 수 있으랴. 특히 우리 한겨레 민족은 조선시대에는 원래 한 나라 사람이었던 것이다.

보수는 ‘친북’, ‘종북’을 가장 미워한다. 6.25동족상잔의 아픈 역사를 잘 알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또 북한은 체제, 이념차이로 극심한 가난의 고비를 넘기고 있다. 국가가 빈부격차가 심하면 외면되고, 왕따를 당하기 쉽다. 형제간, 친인척간도 잘 살아야 따르고 ‘귀여움’을 받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그런데 요즘 북한도 시장문을 빠금히 열어가고, ‘이념’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한다.

1984년, 5월 중순부터 약 5개월, 김일성이 소련(러시아)과 동구(동유럽)를 둘러보았다고 한다. 돌아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동구의 인민생활은 뒤떨어진 것으로 듣고 있었는데,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경제적, 기술은 외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그러면서 인민들의 생활이 유복하지 않은 데도 부지런히 일하고 불평불만 없이 잘 한다고 보고를 올린 당 간부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당시 수령으로서 가슴 아픈 고충이다. 그렇다고 그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장기간 이념사상, 체제개혁의 변화를 가져 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자본주의가 무르익으면서 노동자들은 궁핍화에 내몰리게 된다는 ‘극좌적’ 이론이 빗나갔다. 실지로 공산주의를 ‘표방’한 나라들이 거의 사라졌다. 그나마 중국이 특색 있는 사회주의를 확립하고 개혁개방을 시도해 부유의 길로 나가고 있으니 천만 다행인지 모른다.

헌법에 따른 국민의 정부에 향한 갈구, 이념전변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행복시대를 열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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