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영춘 프로필

중국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 졸업. 1989년 길림도라지잡지 문학강습반 수료. 길림신문, 도라지 잡지에 수필,시 통신보도 10수(편) 발표. 현재 한국 안양시 거주.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서울=동북아신문]친구란 참 좋다. 편안하게 소통하고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그러나 진정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며칠 전 나는 한 친구를 만났다. 그것도 30년이나 훌쩍 지나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금년 1월 중순, 재한동포문인협회의 모임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만남이 더 길어질 수도, 영영 못 만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문인협회 위쳇의 문학 채팅방을 통해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작품을 교류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통의 채팅 쪽지를 받았다. "영춘이도 한국에 있구먼. 반갑소, 친구"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누구지? 누가 그냥 문학 애호가인 나를 알고 있단 말이지?! 도무지 누구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내가 아는 그 친구?……나는 지금도 계속 연락하며 지내는 문학 지인에게 물어봤지만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단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친구의 위쳇의 프로필을 눈여겨보았다. 설마? 설마?……그랬다. 옳았다. 그 친구는 이미 자신의 꿈을 이루고 성공가도를 달리며 문학의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이다. 허나 나는??……창피함과 부끄러움에 머리를 들 수가 없었고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온 나 자신이 친구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며칠간의 고민이 가슴을 옥죄였다. 머릿속에서는 친구의 옛날 모습이 계속 얼른 거렸고 진지하게 같이 누워 밤새도록 문학을 담론 해오던 모습들이 얼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늦었지만은 친구의 성공을 축하하고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는지 알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의에 참가하러 온단다. 만나야지, 만사를 제쳐 놓고 라도 당연히 만나야지! 기뻐해주면 좋고 미워해도 원망해도 어쩔 수 없다. 인연의 끈을 놓아버린 나였기에 모든 책임이 나한테 있지 아니한가!  내가 다니는 직장은 주말엔 엄청 바쁘다. 나 한사람이 빠지면 몇 사람이 배로 힘든 직업이다. 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하더라도 나 자신이 요직이다 보니 대체할 인력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허나 오직 그 친구를 만나 보려는 일념에 직장에서 눈총을 받아 가면서도 오후 청가를 맡고 무작정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대림으로 향했다.  나는 차가 밀려 약속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했다. 회의를 끝낸 친구는 문학 지인들과 함께 커피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 변하지 않았단다. 나도 그 친구를 훑어보았다. 살짝 메마른 체구에 살짝 흰 머리는, 성격과도 같이 언제나 정결하게 되어 있었다. 이마에도 잔주름이 생겼지만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는 강인한 모습도 그대로이다. 항상 총기 있어 보이던 두 눈에 이제는 안경을 걸었고, 50대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 옛날 그 모습이 조금이 나마 어렴풋이 어려 있었다. 뜨거운 포옹이 온몸의 전율을 짜릿하게 만들었고 흥분의 연속으로 목이 메어 왔다.  우리의 인연이 이미 지나간 줄 알았는데, 이미 놓여 버린 줄 알았는데, 이미 끊어 버려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내 앞에 서있다니!?……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머릿속을 주마등마냥 스쳐 지나갔다. 한두 잔의 술로 회포를 풀기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그 친구도 바쁜 스케줄로 우리는 문안과 근래의 대화밖에 나눌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훗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우리의 만남은 이미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때 우리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장대한 포부를 품고 문학을 논하던 10대 후반이었다. 그 친구는 흑룡강성에 살았고 나는 길림지구에 살았었다. 지리적으로도 이틀정도 걸려야 만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열정,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때 우리는 도라지 잡지사에서 주최한 문학 강습반에 참가한 동기들과, 또 뜻을 같이 하는 문학도들로 똘똘 뭉쳐 성좌문학사를 차렸고 문학 활동도 아주 활발히 진행했다. 등사기로 글을 찍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성좌문학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젊음의 피는 아무것도 두려워할게 없었던, 오직 문학이면 모든 게 필요가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 그때는 유일한 소통창구는 편지였다. 어느 날 흑룡강성에 있는 친구에게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자신도 문학을 즐기는 열혈청년이란다. 그때 까지만 해도 우린 친구가 아닌 꿈을 함께 공유하고 난상토론을 즐기는 사이였다. 그해 겨울 농촌에는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한 농한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문학 창작 활동을 더욱 활발히 하고 있던 중 흑룡강성에 있는 친구가 성좌문학사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성좌 문학사라고 해야 가정집에서 이름만 걸어놓고 활동하는 깡통 문학사였다. 우리는 흔쾌히 대답을 주었고 여러 문학도들도 각자 작품을 한편씩 갖고 오기로 했다. 우리의 열정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내친김에 항상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서란시 문화관을 방문하였다. 또 문화관의 관계자로부터 작품 평가와 찬조금까지 받았다. 돈이 그리운 우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뿔은 단김에 뽑으라고 했다. 우리는 길림시 도라지잡지사 까지 방문하면서 이미 작고한, 언제나 존경하고 동경해온 문창남, 고신일 선생님의 조언과 강의를 들었다. 그이들은 우리들의 차비까지 책임져 주셨다. 우린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길림시에 살고 있는, 같이 문학하는 친구네 집에서 웃고 떠들며 천진난만하게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우리는 차츰 우정을 쌓아갔고 추억을 만들어 나갔다. 그로부터 우린 정말 문학도 친구가 되었고 사흘이 멀다하게 편지로 연락을 하며 문학과 안부를 전하였고, 다시 만나 좋은 작품을 선보이자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그 이듬해 겨울, 나는 그 친구 만나러 흑룡강성으로 떠났다. 우리가 사는 서란시 보다 훨씬 더 추웠지만 친구라는 이름 때문에 친구의 열정적인 초대 때문에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같은 꿈, 같은 정열. 우리는 하나가 되어 친구네 집에서 밤을 지새우며 문학에 대해, 또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이미 하나로 되었고 모든 세상을 다가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 만남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나는 사업을 한답시고 할빈으로, 대경으로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친구와의 소통도 소원해지면서 연결이 완전 끊어졌었다. 지금처럼 전화나 있고 통신이 발달 되었더라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나는 먹고 살기 위해 잠시 필을 놓았고 돈 벌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나는 문학에 대해 서서히 모든 걸 잊고 살아 왔다.  지금은 생활이 좀 나아지고 맘의 여유도 생겼다. 당시 같이 성좌문학사를 운영했던 친구들과도 하나 둘씩 연락이 되기 시작하였고, 흑룡강성에 살고 있던 그 친구도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났었다. 여전히 내 가슴 한곳엔 그 친구가 묻혀 져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온 초기에도 그 친구를 찾으려고 백방 노력을 해봤다. 무지 오랜 세월이 흘러가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친구도 고향을 떠났으니 이젠 영영 못 만나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도 우연히, 우연히 만날 줄이야!? 새삼 느껴지는 인연의 소중함이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행복을 느꼈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았으며 전혀 느끼지 못한 곳에서 답을 찾았다.   꿈을 이룬 자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자와 인생을 논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는 것을 느껴지는 나였지만은 마음한 곳은 서글픔이 꽉 차있다. 친구여, 자랑스럽다!  친구야, 이제야 찾아온 소중한 인연, 언제나 흐르는 강물처럼 변함없는 모습으로 순수한 인연으로 마음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찌든 삶의 여정에 지치고 힘이 들 때 서로 배려하는 마음과 서로 언제나 좋은 생각 아픈 삶을 함께 하고, 글로서 또는 댓글로 배려하고 위로하고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의 인연으로 영원히 남겨지길 희망한다. 이렇게 찬바람 불고 해가 일찍 지는 겨울날 옷깃 여미고 혹시나 추위에 고생하지 않나 걱정이 된다.  친구야, 문학으로 맺어진 귀한 인연이다. 찬바람 맞지 말고 항상 감기 조심하고…커피 한잔 마시며, 너의 따뜻하고 좋은 글 많이 읽어 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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