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뉴욕의 아침
시차는 금방 적응될리 만무했다. 어디서든지 엉덩이만 붙이면 혼곤히 잠에 빠져드는 딸애와 달리 나는 잠 자리가 바뀌면 첫날밤은 무조건 잠을 설치는 예민한 성격이라 온밤 뒤척거리다 새벽 4시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에 눈을 뜨니 커튼을 통과해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막무가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뉴욕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다.

전날 슈퍼에서 산 과일과 한국에서 들고 온 햇반, 김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우리는 문을 나섰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바우처에 가서 티켓을 구매하는 일이었다. 전날 저녁에 대충 바우처의 위치를 파악해 놓았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관광지의 입장권이나 뮤지컬의 티켓을 패키지로 묶어서 살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열심히 만들어온 스케쥴에 근거하여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유여신상 크루즈여행,록펠러센터 전망대, 앰파이어 전망대, 뮤지컬 “레미제라블” 이렇게 7개가 행운스럽게 우리의 여행코스로 선정되었다. 이제부터 진정한 뉴욕여행이 시작되었다.

▲ 앙리 미스트의 춤
우리의 첫 행선지는 MoMA, 뉴욕현대미술관이다.  길치인 내가 구글맵을 잘못 사용해 반대방향으로 꽤 걷는 바람에 우리는 목적지와는 점점 멀어졌으나 덕분에 허드슨 강쪽으로 난 다양한 건축양식의 뉴욕주택을 구경할 수 있었다.우리는 다시 타임스퀘어를 지나 모마로 향했다. 타임스퀘어는 밤이고 낮이고 전광등이 환하게 켜진 커다란 간판들로 번쩍였고 사람들로 붐비였으며 거리에는 뉴욕의 노란 택시들이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뉴욕 예술 생활의 중심-MOMA
전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가로 알려진 5번가와 세계적인 비즈니스 타운으로 손꼽히는 6번가 사이에 당당히 자리잡은 뉴욕 현대미술관! 수많은 관광객과 뉴요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캐주얼과 세련된 정장 패션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 형형색색의 다채로움을 변주해내고 있다.(“뉴욕의 특별한 미술관” -권이선, 이수형 지음) 1929에 개관을 한 뉴욕 현대미술관은 세계 최초의 현대미술관으로 (MUSEUM OF MODERN ART의 줄임말 MOMA모마라고 한다) 근현대 미술품을 방대하게 소장하고 있다. 2005년 11월에 재건하였는데 6개 층으로 되어있고 전시공간의 총 면적은 1만 1천 250평방미터나 되어 쾌적하고 여유로운 관람 공간을 제공했다.

이 곳에선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폴 고갱, 모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아메디오 모달리아니, 피에트 몬드리안 등 거장들의 오리지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뉴욕에 오기 전 나는 이곳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왔다. 작년에 친구들과 함께한 프랑스 여행에서 루브르 박물관이며 베르사유궁을 관람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오고나서야 많은 유명한 그림이나 조각품을 전혀 구경도 못한 채 왔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전에 그곳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보니 그냥 눈에 들어오는 것만 말타고 꽃구경 하는 식으로 스켜지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뉴욕의 미술관에 대한 책을 몇 권 사서 공부를 했다.

1층 로비에서 핸드백을 보관소에 맡기고, 신분증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나는 한국어로 된 오디오를, 딸애는 중국어로 된 걸 빌렸다. 우리는 6층의 특별 전시관부터 4, 5층의 상설 전시관으로 한 층 한 층 내려가며 관람하기로 했다.

6층의 특별 전시관에서는 한창 미국 작가 브루스 코너의 작품이 전시중이었는데 실험영화의 선구자인 그의 작품은 오브제, 영상,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 퍼포먼스 ,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여러 쟝르를 넘나드는 전위적인 그의 작품세계는 너무나 난해해 나의 이해체계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불가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력, 불가해하고 알쏭달쏭한 느낌, 어쩌면 이것이 현대미술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5층의 상설 전시관에 와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거기에는 책에서 수없이 많이 보아왔던 대가들의 익숙한 작품들이 당신을 반겨주고 있었다. 6층이 일류 명품만 전시하는 문턱 높은 곳이라면 상설 전시관의 작품은 그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친화력이 강했다. 관광객들도 6층보다 현저하게 많았다.

▲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 유명한 명화들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인상파에서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어 어느 것을 먼저 봐야 할지 몰랐다.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 그림앞에는 관람자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반 고흐가 즐겨쓰는 블루칼라와 노랑이 연출하는 밤하늘의 소용돌이속으로 나는 주체할길없이 빨려들어갔다. 거친 붓질 하나하나는 그처럼 섬세하고 생동했고 노란색의 따스한 별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사이퍼러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있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원의 창문에서 바라본 주변 경치를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그의 눈에는 정말로 별이 주먹만큼 크게 보였을까? 아니면 심적 고통을 겪고있던 그는 마음속에서 별이 빛나기를 소망했을까? 이 작품은 성경이나 심리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하니, 관객의 입장에서 나 또한 내 나름대로 느끼고 해석하는 건 나의 몫이다.

다양한 복제품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오리지널 작품앞에 서니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찐하게 올라와 한참을 울먹였다. 반 고흐의 작품에는 늘 그의 비참한 삶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이것은 내가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감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딸애는 한 작품앞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짧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 많은 명화들이 전부 오리지널이란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계속 중얼거렸다. “난 이게 다 복제품인 줄 알았지요.”하긴 딸애가 상하이나 서울에서 그동안 관람했던 미술전시회의 작품들은 복제품이 많았으니 그럴법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들도 상당수가 있었다. 제일 인기를 끈 것은 5층의 2번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아비뇽의 처녀들”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입체파의 시초로 평가 받는다. 피카소는 전통적인 원근법을 청산해 시공간의 통일성을 완전히 해체시켜버렸다. 기형적이며 추악하게 보이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피카소는 예비 스케치를 수도 없이 그렸다고 한다. 지금이야 이 그림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그림 중 하나로 추앙받지만, 1907년 당시 피카소가 이 그림을 처음 공개했을 때 함께 있었던 평론가 앙드레 살몽은 “흉측한 얼굴은 반쯤 변화된 사람들을 공포로 얼어붙게 했다”고 평가했다. 가슴을 드러내고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그림의 다섯 명의 여자는 선택받기 위해 자신을 내보이는 매춘부이다.

내가 피카소의 오리지널 작품들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여름 남부프랑스 여행중에서였다.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은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를 마주한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수없이 많은 그의 작품들을 접했다. 뒤틀리고 변형된, 가끔은 어린아이의 낙서같기도 한 그의 작품은 내게는 늘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내 인상속에 오래동안 남아있는 건 피카소의 예리하고 깊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미술계의 거장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다작으로 유명하고 그가 죽은 후에 공개된 조각 작품은 현대 조각의 흐름을 바꿀만큼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랬다. 어쩌면 우리는 늘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일한, 전통적인 것에만 습관되어 있다. 모든 억압과 굴레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이 그림은 오랜세월 전해내려온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뛰어넘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어쩌면 나에게 부족한 혁신정신을 깨우쳐주는 가장 좋은 모본이 되지 않을 까 싶다.

폴 고갱과 폴 세잔,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앤디 워홀의 작품도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커다란 벽 한면을 거의 다 차지하다싶이 한 앙리 마티스의 “춤”은 활기찬 원색으로 5명의 벌거벗은 여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그렸는데 역동적인 춤 동작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그대로 전달했다. 작품 하나 하나가 기쁨과 설렘과 상상과 감동을 선사하는 이 곳은 정녕 거대한 예술의 축제장이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모네다. 빛에 굉장히 민감한 그는 같은 풍경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했는데 다소 거친 듯한 필치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내가 느끼기엔 다분히 푸근하고 차분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이상하게 가슴에 평온이 깃든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대작“수련”이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온 터라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모네의 “수련”은 결국 보지 못했다. 다른 작품들에 발목 잡히고 눈길 끌려 구경하다가 끝내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에어컨바람이 너무 강해서 팔에 닭살이 돋았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빨까지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이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팁을 하나 드린다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실 때는 꼭 긴 바지에 긴 팔 윗옷을 챙겨가시길) 그래서 나와 딸애는 결국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 실외 조각정원에서(딸애)  
만족스러운 점심식사
2층의 레스토랑엔 이미 손님들로 빈틈없없다. 우리는 어렵사리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이 역시 딸애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딸애는 자발적으로 내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참고로 설명 드리자면 이날 딸애가 찍어준, 내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찍은 사진은 여행 통털어 최고의 작품이었다. 이 사진은 훗날 나의 많은 문장의 프로필사진으로 씌였다. 나는 절실히 느꼈다.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딸애의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워주어 그가 최상의 기분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점심식사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썩 훌륭했으나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실외 조각정원
실내관람을 마치고 배까지 불린 우리는 드디어 따스한 실외 조각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원에는 헨리 무어, 막스 에른스트, 아리스티드 마욜 등이 제작한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현대미술의 톡톡 튀는 개성을 남김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얼핏 봐도 십미터는 될 것 같은 장미조각품이었다. 휘늘어진 나무그늘과 내울의 분수는 맨하탄의 마천루 속에서 의외의 아늑함을 느끼게 했다. 사람들은 철제의자에 앉아 한가하게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나와 딸애도 곧 이 분위기속에 젖어들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