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평화와 통일의 하모니인 '조각보'단체의 남북여성의 삶이야기나누기 대화모임 4기가 북한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봉도원불교청소년수련원에서 있었다. 참여자의 한사람으로 그리고 유일한 중국동포로써 나도 그들과 동행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서로 다른 정치체제에서 자란 남과 북 그리고 중국여성들이 모여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한들을 풀어내며 울고 웃었던 그날들,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인연을 만들었던 설레고 가슴 벅찼던 날들을 되새겨 본다.

남북여성 삶이야기나누기 대화모임에 발상이 된 프로그램은 동서포럼의 괴델리츠 대표가 진행하고 있는 동서독주민들이 삶이야기나누기이다. 급속한 통일을 맞은 동서독주민들이 심각한 갈등과 고통을 겪는 현실에 비추어 동서독출신의 주민들이 서로 만나서 삶이야기나누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여정이 독일에서 오래 동안 진행되고 있으며 이 모임은 독일사회의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조각보는 독일의 내적통합을 위한 위 프로그램을 한국의 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용하여 20대~70대, 보수와 진보, 다양한 계층의 남과 북의 중국동포여성들을 아우르며 진행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 한국에 온 북한과 중국동포 그리고 한국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이 만나 자신의 삶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눔으로써 서로의 삶과 경험한 역사에 대해 이해를 깊이 하게 되였고 나아가 집단적 편견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나로서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부동한 연령대에 또 국적까지 다른 여성들이 과연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 더 큰 고민은 왜 익숙하지도 않은 이들 앞에서 굳이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지? 과연 내 애기를 들은 이들은 앞으로 나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볼까? 이것이 과연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시작 종소리가 울리고 내가 첫 사람으로 입을 열었다. 11식구의 가정에서 살았던 나의 동년, 부모의 사랑은 오직 지병으로 앓는 여동생뿐, 아들을 바라는 부모님의 바램과는 달리 딸이 줄줄이 태어났고 내가 셋째 딸로 태어났을 때 엄마는 친구의 아들과 나를 일주일간 바꾸기를 했었다는 일, 부모님의 반대로 깨여진 첫사랑 때문에 오래 동안 가슴앓이를 했던 나의 청춘 시절, 월세 집으로 전전긍긍했던 결혼생활, 서른 살에 낳은 아들, 어렵게 취직한 방송국, 그리고 50대의 새로운 도전인 나의 한국생활.

중국에서는 우선 나라와 직장 그리고 가족이 우선이었고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지? 무얼 위해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국땅에서 50여년의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벅찬 감동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11명의 여성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삶에 대한 회의인지 아니면 지나온 과거에 대한 추억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쌓였던 체증이 한꺼번에 확 풀려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남북여성의 삶이야기나누기 대화모임은 서로의 마음을 열수 있는 환상의 프로였다.

 

한 여성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감동과 비애와 환의와 서글픔이 서로 교차되면서 모임은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이야기의 주인공을 포옹하고 다독여주었으며 말없이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면서 서로 위로 받고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북한여성들의 탈북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보다 더한 스릴과 분노와 아픔이 섞여 있었다. 우리 눈에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던 남한여성들한테도 나름대로의 고민과 방황이 있었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있는 한 영원히 자신의 등에 인생이란 큰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는 반시간 동안 질문하는 시간을 가진다. 제일 흥겨운 이야기가 첫사랑 이야기와 바람을 피운 결과에 대한 이야기였다. 금방 눈물을 보이다가 재미나는 사랑 이야기에 웃기도 하고 식사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음식을 만나게 먹으며 함께 즐겼다.

탈북여성과 중국동포들이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필요한 정책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이 열린 마음과 따뜻한 보살핌이다.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운 이웃이 되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서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통해 나가려는 노력들이 조금씩 쌓여나갈 때 한국 사회 역시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탈북과 중국동포여성들을 감싸 안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운 얼굴들이 마주하고 있지만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이질감과 열등감들이 남과 북 그리고 중국동포라는 문화의 칼날이 되어 몸과 마음을 사정없이 찢어놓을 때 조각보의 이 모임은 따뜻한 온돌방 효과를 가져 오리라 믿는다.

한국 사회가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 갈 때 , 남북의 진정한 통일을 꿈꿀 수 있다. 서로의 살아 온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남과 북 중국동포 여성들의 상호 이해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에 대한 오랜 선입견과 갈등을 넘고 분단을 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다.

1박 2일의 여정을 마치고 각자의 짐을 챙겨가지고 수련원을 빠져나오는데 길가에 커다란 간판하나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김소월의 ‘눈오는 저녁’이라는 시였다.

바람 자는 이 저녁

흰 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은

시를 보면서 다음해 혹은 그 다음해에 또다른 남북과 중국동포여성들이 한자리에 다시 모였을 때의 즐거운 모습을 상상하면서 여성들의 부드러운 만남이야말로 통일의 물꼬를 트는 조용하고도 강한 움직임이라는 것을 느꼈다. 삶이야기 모임의 뜻 깊은 모색이 남북의 긴장을 녹이고 마음의 통일을 먼저 경험하도록 하는 아름다운 조각보 작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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