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프로필

연변작가협회회원, ​청도작가협회회원, ​길림시작가협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집: 천 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 (한국천우출판사) ​ 두번째 시집:미소 200g ​

연변작가협회 가야하문학공모 시 최우수상.다수 수상

고향 
 
그리운 싸리 꽃 분홍 빛 향기를
편지봉투에 넣어 멀리 보내주면
시골의 맑은 물소리 벗겨내던
고향의 정 맨발 벗고 달려 나온다
 
고향 추억이란 무엇이기에
많이 먹을수록 배는 더 고프고
밤이 깊어 갈수록
꿈 밖으로만 흠뻑 젖어 오를까
 
시간은 한발자국도
뒤로 물러설 줄 모르게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가고
고향을 그리는 추억은
일사천리 뒤로 뒤로만 달려간다
 
이제 고향을 두고 바다가로 떠나 온지
오불꼬불 아득히 먼 30년
찾아 가고픈 심정은 밤마다
눈가에 맺힌 이슬처럼 유난히 반짝거린다

 
추엽 秋葉 
 
가을이 오니 가로수의 나무 잎이
전부 이 세상의 얇은 혀가 되어 날름거렸다
 나 한마디 너 한 마디
사활을 걸고 단 한 마디도 물러 서지 않는
가을의 이색적인 떫은 언어 표현들
단풍 든 저녁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생로병사 대서특필로
잇몸 멍들게 찡긴 추억 속의 노을을 피나게 파내 보군하였다 
 
삼복에 뜨겁게 주고 받았던 의미심장한 문장은
한 그루 또 한 그루 성경聲境처럼 서있는 저 나무들이었다
호호 잎 바람으로 시대의 감칠 맛을 불어내던 풍운은
파란만장 어느 세월 가지에 앉아서 무슨 꿈을 꾸었는지
돈지갑 속에 여름의 땀내가 잔뜩 부풀었던 에피소드는? 
 
가까운 곳에 낡은 담벽을 허무는 비 소리만 모셔놓고
한 솥 가득 천둥 번개를 지지고 볶아대던
지혜의 아이큐는 어디에서 목을 쭉 빼고 있는지
저 많은 혀들이 다 말문을 열고 시국을 운운하니
구구절절 오랫동안 머리가 띵해져 한동안 어리둥절했었다
돌아보니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중구난방 힘들게 목이 쉰 잎
오랜 사거리에 세상 모르게 빠져나가는 가을의 날 숨
그 뒤 잔가지 열변에 촉촉히 젖어있는 한숨
아, 아직 못 다 읽은 지난해 가을의 성결聖潔인가 
 
2017.2.9​


그때의 밤이 옵니다
 
그대는 나의 행복한 밤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나에게로 조용히 날아 들었고
낮이 되면 그대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날아가는 가을의 새들처럼 갔습니다
 
밤이 되면 그대가 꼭 오실 줄로 압니다
입은 옷 그대로 쪽 잠을 자다 깨어나면
그대는 나의 창가에 샛별이 되어 있습니다
그대 뒤에는 출렁이는 머-언 바다가 보입니다 
 
갈매기들은 왜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지
제비들은 왜서 겨울을 피해 가는지
그대가 떠난 뒤에 알았습니다
저 새들이 우는 소리 들으면 난 너무 괴롭습니다 
 
바다 가에 서서 먼 섬을 바라 보면
초점을 잃은 시선이 밤이 되어 옵니다
언젠가 섬 마을 고추 밭을 지나 가면서
똑 내 남편 거시기 같다고 웃기던 밤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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