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미란 재한동포문인협회 수필분과장, 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요즘은 책을 통 읽지를 않는다.이래저래 읽을 새도 없고 읽을 책도 없다.그러다가 문득 책장에서 꺼내들게 된 것이 신경숙의 "외딴방"이다.신경숙 작가의 모든 작품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다.책을 통채로 필사하고 싶을만큼.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그날은 출장 가는 날이었다. 비행기가 두 시간 넘게 딜레이된 덕분에 나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에서 완벽하게 나 혼자가 되어 책읽기에 몰두할수 있었다.픽션과 소설 그 중간쯤 어디에 있을 것 같다는 이 글을 읽으며 작가의 내면을 엿본다.많은 부분이 공감이 간다.저도모르게 작가가 쓴 책과 내가 쓴 책을 비교도 하게 된다. 사실 내게도 외딴방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의 외딴방이 있었다.나도 어쩌면 신경숙작가처럼 오랫동안 그 외딴방을 마음속에만 품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나의 처녀작"서른아홉 다시 봄"에세이집에서 상해생활을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그것은 그냥 수박 겉핥기식의 표현이 되고 말았다.내 맘속에는 외딴방에 대한 추억이, 아니 기억이 그토록 세밀하게 자리를 틀고 앉아있다.그 외딴방에서 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비 온뒤에 하늘에 영롱하게 떴다가 곧 사라지는 희미한 무지개처럼 흐릿하게나마 영롱한 꿈을 꾸고 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 훙메이루쪽에 있던 그 방,일년 내내 햇볕이라곤 비쳐들지 않던 그 어둡고 침침하고 좁은 방.그곳에 20대의 내가 있다.처절한 비바람속에서 흔들렸지만 꺾어지지 않은 나의 푸르름과 고단함이 숨쉬고 있다.몇년전 차를 타고 지나면서 보니 어느새 그곳은 사라지고 없었다.이제는 내 마음속에만 존재할 그 곳,나의 외딴방.그 외딴방에서 나온지 십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세상물정 전혀 모르는 처녀애로부터 이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애를 가진 엄마가 되었고 처녀작 수필집을 한 권 출간하여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의 부재

책을 쓰고 나서 그 열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꾸준히 더 열심히 글을 쓸줄로 알았던 나는 엄마의 병이 위중해지면서 글쓰기와 책읽는 일을 거의 놓다시피 했다. 엄마는 그래도 나의 곁을 떠났고 엄마의 부재는 늘 사소한 일상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설거지를 하다가, 빨래를 널다가, 책을 읽다가 문득 이 세상에 안 계시는 엄마가 떠올라 눈물이 제멋대로 떨어진다.그때 알았다.한 사람의 부재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고통이 한꺼번에 다가오는게 아니라 늘 이렇게 일상에서 시도때도 없이 몰려온다는 것을.이 느낌을 신경숙작가는 "외딴방"에서 똑같이 쓰고 있다.그래서 나는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공항에서 바보처럼 울고 말았다.외딴방과 엄마가 떠올라 한없이 슬펐다.

"이젠 제발 마음 다 잡고 글 좀 써봐"하는 주위 지인들의 각별한 충고에도 내 마음은 줄 끊어진 풍선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며 종내 내려앉을 곳을 못 찾고 여기저기 떠돌고만 있다. 도저히 글이 씌어지지 않는다. 작가들 모두가 자신만의 글쓰는 환경과 타입이 있듯이 나에게 글쓰기 적합한 환경이란 이런 것이다.밤늦게,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들었을 때,스탠드가 아늑하게 비춰지는 책상앞에 마주앉았을 때, 혹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손님이 적은 커피숍 혹은 도서관, 또 혹은 낯선 사람들로 가득찬 공항에서.그런데 나는 올해 내내 이런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그러다보니 요즘은 그냥 모멘트에 가벼운 문자기록만 하는 정도다.그 정도는 할수 있는데 에버노트를 열고 글을 쓰려면 왠지 진지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 땜에 아예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

이번에 출장길에서 잠깐 얼굴을 본, 20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저녁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그들은 이런 얘기를 했다.

"미란이 넌 우리랑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아."
좀전까지도 즐겁게 저녁식사를 하고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딸내미들의 학교문제로 열심히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친구들이 아닌가.그 친구들이 나를 보며 자기네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나는 갑자기 머리가 뗑해난다. 갑자기 나와 그들사이에 커다란 강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신경숙의"외딴방"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신경숙이 첫 책을 내고나자 여고에 같이 다녔던 친구 하계숙이 전화가 와서 했던 말, "넌 우리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더구나."공항에서 읽은 책에서 본 구절을,그 말을 내가 이튿날 나의 친구한테서 들을 때의 그 감정은 참으로 뭐라고 형용하기 묘하다.좀전까지도"학창시절에 넌 순대도 못 먹었니? 학교밖 가게에서 팔았잖아" 했던 친구들이 아닌가.나는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순대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그냥 저녁자습 끝나고 학교식당에서 사먹은,대파를 숭숭 썰어서 끓인 라면이 최고로 맛있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그 친구들이 갑자기 180도로 바뀌어 나보고 자기네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고 하다니.나는 갑자기 그들이 낯설어졌다.
 
이런 낯설음,이런 거리감을 작년에도 만났다.동창모임에서 만난 서울에 있는 친구, 소학교와 중학교를 나랑 같이 다녔던 친구다.국내 B시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어느날 사직서를 내고 한국에 가서 노가다판에 뛰어든 친구다.꼬박꼬박 돈 모아서 결혼하고 국내의 대도시에 아파트를 두 채나 산 똑 부러지는 친구다.내가 서울에 갈때마다 꼭꼭 밥을 사주던 친구다.그 친구가 미안해하며 말한다.

"미란아, 니 출판기념회때 못 가서 미안해.가려고 했는데 그런 장소에는 왠지 나같은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닌 것 같아서.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못 가서 미안하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못 와서 미안한 건지,자신이 그런 곳엔 못 오는 처지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미안해하는 건지 그의 얼굴엔 정말로 미안함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이번엔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책 한권 냈을 뿐인데 뭐가 달라진거지?

스무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 뿔뿔이 헤어진 내 친구들,그뒤로 각자는 연해도시로, 해외로 나가 자신만의"외딴방"을 가졌을 것이다.모두들 외딴방에 대한 추억을 한보따리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들의 외딴방도 나의 외딴방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그들이 살았던 외딴방으로 걸어들어가고 싶다. 말해주고 싶다. 그 외딴방이 있었길래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너희도 마찬가지라고.

외딴방은 외롭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