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서울의 한 부자 집 가정부로 취직을 한지도 반년이 지났다. 100평의 주택에 화장실 3개 거실 4개에 객실과 주방은 거실의 두 배나 된다. 50대의 부부와 자녀 셋에 시부모와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인집은 하루 빨래만 세탁기에 3,4차 돌려야 하고 빨래를 정리하고 다림질 하는 시간도 거의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

결벽증이 있는 주인마누라는 베개커버는 일주일에 한번, 이불커버는 두주에 한번, 이불은 날씨만 좋으면 옥상에 널어놓고 문지 털기를 반복해라 했고 지어 침대커버는 매일같이 테이프로 먼지를 묻혀내기를 원했다. 퇴근시간 5분을 앞두고 옷 한 벌을 내밀면서 다림질 해달라, 슬리퍼를 씻어라, 고구마를 쪄달라, 옷 정리를 해달라, 여하튼 제시간에 퇴근 시키려 하지 않고 퇴근시간이 돼도 퇴근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 수요에 따라 퇴근시간이 30분이나 연장이 돼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한 듯 일을 시켰다. 

 
과일주스 내리는 기계, 빵 굽는 기계, 커피 내리는 기계 등이 내가 처음 접해보는 일이라 서툴고 벅찼다. 애들의 과외선생들은 줄을 쳐서 들어오는데 그들한테 각자의 요구에 따라 커피, 음료수, 생수를 가져다 주었고 선생 한 분이 나가면 청소를 하고 그 다음선생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수업시간이 오랜 과외선생한테는 간식까지 챙겨주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식당 일보다 몸을 아낄 수 있고 힘이 덜 든다고 가정부를 선택했는데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건 나의 식사였다. 약속대로 하루에 한번 식사를 해결해 주긴 하는데 아주 거지 취급이었다. 애들이나 어른들이 먹다 남긴 빵 조각, 전날에 먹다 남은 반찬 혹은 짜거나 맛없게 만들어졌거나 자기네들이 먹기 싫어하는 음식들을 나한테 준다. 한심한 것은 그런 음식들을 주면 당연 거절해야 하는데 배고픈 놈 언 똥 가리지 않듯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버리는 나였다. 원래부터 식탐인 나에게 이는 큰 곤혹이었다.
 
내가 도시락을 사가지고 다니겠다고 하면 돈이라도 보태줄 가 싶었는데 주인마누라는 아주 담담한 태도로 편한 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자 주인집마누라는 밝은 얼굴로 나를 대했다. 한달 전기비용만 해도 50만, 가스요금은 거의 100만인데 가정부 한끼 음식을 남겼다고 저렇게 까지 좋아할 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열불이 나기도 했다.
 
우유가 떨어져도, 계란이 없어져도, 빵이 적어져도 주인집마누라는 내가 먹었다고 의심하면서 나한테 대놓고 묻지를 못하고 대신 애들한테 누가 먹었는지를 추궁하기도 했다. 우유는 장이 나빠서 생으로 먹으면 설사한다고. 계란은 너무 먹어서 질려서 먹지 않는다고, 빵은 식빵이 아니고 바리바게트 빵만 먹는다고 구구절절 설명해주고 때로는 어쩌다 비싼 빵이 생기면 먹지 않고 두었다가 이튿날 주인집에 가서 보라는 듯이 먹으면서 쇼를 해서야 겨우 도둑년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정부 일이 나한테 이득이 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모임이 있을 때 사전에 주인한테 이야기 하면 휴무를 그날로 정할 수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부자 집 떡고물을 주어 먹는 재미였다. 명절 때는 물론 평소에도 선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미처 처리할 시간이 모자랐다. 주인집에 늘 오시는 택배아저씨까지 내 얼굴을 익힐 정도였으니 말이다. 명품 지갑도 한 박스 거의 50개가 배달됐고 스카프도 20,30개, 음식과 과일은 하루 건너 배달이 왔다. 미처 먹지를 못해서 여러 개의 냉장고에 나누어 넣을 때면 원래 있던 음식들을 처리한다. 그러면 내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린다. 그것은 냉장고에 있던 것을 버리라고 하면 내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어보지도, 보지도 못했던 생선과 과일을 한아름씩 집에 가지고 와서 쥐 소금 녹이든 하나씩 꺼내 먹을 때 마다 주인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조금씩 줄여 가기도 한다. 그 외에도 브랜드 옷이나 신 기타 생활용품들을 버리는 것을 가져다 써도 나는 충분히 입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것 이여서 나한테는 이득이 아닐 수 없다.
 
선물로 들어온 과일상자를 뜯으면 주인집마누라는 이미 맛이 가기 시작했거나 못생긴 과일을 골라서 나한테 선심 쓰듯 준다. 그 속의 알맹이만 골라 먹어도 내 돈을 남길 수 있기에 속으로는 욕하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자신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특히 생선을 좋아하는 나의 룸메이트는 내가 먹을걸 들고 집에 들고 갈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네가 나를 위해서라도 그 부자 집에서 쭉 일해야겠다. 이거 꿩 먹고 알 먹기 아니니?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
두 달이 지나니 주인집 남자가 식사를 했는지를 묻기도 하고 시아버지는 고향이 어디냐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증조할머니가 남몰래 호주머니에 만원자리를 넣어줄 때면 얼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똥을 묻힌 팬티를 내놓기도 하고 너무 많이 먹어서 화장실을 초토화 시킬 때도 있고 쉴새 없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집을 헤집고 다녀 정신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5분에 한번씩 물컵을 내놓아 밉상이기도 했지만 고향에 두고 온 비슷한 처지의 친정엄마 생각에 증조할머니한테 정성스레 음식상을 차려주기도 한다.
 
하루는 7살나는 여자애가 나한테 물었다. '청소하는 할머니는 왜 우리와 같이 밥을 안 먹어요?' 예상치 않았던 물음에 당황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줄 수 밖에 없었다.
"너는 공부가 위주이고 나는 청소가 위주니깐 설거지 끝나고 먹어야지."
우연하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가 같은 빌딩에 있는 가정부와 마주쳤다. 서로 주인집 흉을 봤는데 그 집에서도 그녀한테 반찬은 꼭 전날에 먹다 남은걸 준다고 했고 그 집은 온종일 식구 넷이 집에 틀고 있어 하루 종일 허리를 펼 시간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낫다고 나를 부러워하는 그 언니를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이 맥주를 찾느라 냉장고를 이 잡듯 하는 증조할머니가 어느 날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이런 애기를 했다. 원래 이 집에서 몇 년간 일했던 가정부가 있었는데 물건을 집으로 자주 가져가는 바람에 쫓겨났다는 것 이였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그 동안 의심 받은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가정부 일을 하면서부터 점점 변하는 나를 발견했다. 빨래를 묵혀 두지 않고 제때에 세탁하고 설거지를 할 것이 한 개만 있어도 안절부절 못하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컵 받침대를 찾고 과일을 먹어도 포크가 있어야 하고 반찬도 그릇에 예쁘게 담아 먹으려 하고 주방에 두 번씩 나갔다 오더라도 밥을 작은 공기에 담아 먹으려 한다. 거기에다가 집에서 까지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는 나를 보고 룸메이트가 이런 표현을 했다. 

"부자도 아닌 것이 우아한 척 하기는. 내사 눈이 시려서 못 봐주겠다. "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다. 소 뒷걸음 치듯이 싫은 발길을 돌려 주인집으로 갈 때 마다 나 자신을 위안한다. 이 집이 아니면 네가 어디에 가서 하루에 7만원이란 돈을 벌 수 있겠니? 식당에서 12시간 힘들게 일하기 보다 이 집에서 하루 8시간 일하면서 쉬고 싶을 때 쉴 수도 있고 때로는 부자 집 떡고물도 주어 먹을 수 있는데 이 일을 포기하면 내가 바보지. 부자 집 종 노릇도 이만하면 할만 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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