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셀러 고량주 '설원' 문학상 응모작품

[서울=동북아신문]요즘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더부룩하게 자라서 짜증이 나고 기분도 안 좋고 얼굴모양새도 말이 아니다. 이발했으면 시원할 것 같은데 꺼리기는 것이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한주일정도 더 참았다가 꼭 2월 27일(음력2월2일)에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돼지머리고기를 먹는 날인데 오리 지날 중국 사람인 한족들은 새해에 들어와서는 처음으로 이발도 하고 주터우러우(猪头肉)도 먹는다고 한다. 그래야만 올 한해 평안하고 액운을 면하며 하는 일도 잘 성사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미신에 점점 약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만 나온다. 그러나 이젠 인이 배겨서 나도 어쩔 수 없다. 마약인이나 담배인처럼, 그리고 도박 쟁이나 알콜의존증 환자처럼 나도 미신에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알라신을 신봉하는 이슬람교도들이나 불교를 신앙하는 불교신도와 전지전능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기독교인들처럼 나도 나의 나름대로 믿고 싶고 의존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연말과 연초에 그 누구를 막론하고 새해에 거는 꿈과 바람이 크고, 계획과 각오도 새롭기 마련이다. 새해 신수는 어떨까? 금년은 나의 희망과 소원이 이루어질 것인가? 행여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사람마다 타고난 복분이 다르므로 행과 불행이 교차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토정비결(토정, 이지함 저)로 자신의 한해 연운을 알아본다. 올해가 자신에게 행운이 가득한 해임을 안다면 '때'를 기다렸다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한해의 운세가 나쁘다고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한 채 그냥 주저앉고 말 것인가? 토정비결에서 평생 절호의 기회를 잡고, 흉운은 피할 수 있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다.

토정비결은 일종 점술서로서 일년 신수를 알아내고 예언하는 책이다. 사람마다 자기 나이와 생월 생일을 주역의 수리로 풀이하여 책에 나온 운수풀이를 읽는 것인데 그렇게도 잘 맞는다고 한다. 이 토정비결은 이씨조선의 선조임금 때 조선의 기인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선생이 주역팔괘와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인데 우리 민족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집들에는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모르는 중국동포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토정비결은 400여 년 동안 우리 한민족과 함께 해온 길흉화복의 대 예언서이자 희망의 철학이었고 삶의 지혜서였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연변 왕청 제2고급중학교 시절 때였다. 사춘기에 들어선 나는 이쁜 여자들을 보면 음욕이 생기고 이상야릇한 감정이 생기곤 했다. 특히는 음력설야회에서 이쁜 여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춤추고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싱숭생숭해 나서 그날 밤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앞집에 사는 박금철형님한테 운세를 잘 맞추는 신기한 점치는 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어느 날 나는 술을 사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형님, 저의 애정 결혼운세를 좀 봐 주세요. 제가 인물 체격이 좋고 섹시한 여자를 얻을 수 있을까요?” 웃을 때와 말을 할 때면 늘 입을 씨물씨물한다고 해서 씨물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씨물이형님은 씨물씨물 웃으면서 날 놀려주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으면 예쁜 여자들이 줄지어 찾아 올 거야. 넌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벌써부터 여자생각을 하면 어쩌니?” 그러면서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알려달란다. 나의 사주팔자도 봐주겠단다. 그때 형님이 펼쳐 보던 책이 아마 토정비결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로부터 나는 토정비결과 30여년을 함께 살아왔다. 매년 해가 바뀌어 새해 정초가 되면 나는 어김없이 토정비결을 펼쳐보면서 한해의 운세를 풀어본다. 모르고 가는 길은 위험하고 불안하지만 알고 가는 길은 편하고 즐거운 법이다. 운세가 좋으면 큰 걸음으로 힘차게 걸어가고 운세가 나쁘면 그해는 각별히 조심한다. 살다보면 사람들은 운명을 믿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운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천운 지운 인운 세 가지 운 가운데서 인운 만이 사람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요즘처럼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또 불신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앞날을 장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년마다 달라지는 운세를 풀이하여 건강 재물 직장 시험 애정 혼인방면에서 행운을 기대하고 액운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이다.

살아가노라면 넘어지고 실수할 때도 있다. 될수록 적게 넘어지고 적게 실수하려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다. 나쁜 사람은 만나지 말고 나쁘다는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쁜 사람은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고 써 붙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지만 나쁘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카카오 톡, 위 쳇 등 수많은 앱들이 개발 되여 공유되지 않은 정보가 거의 없을 지경이다. 정월달에 개고기를 먹으면 개판을 치게 되니 나쁘다고 하니 보신탕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번 설 연휴에 가리봉 연변거리와 건대입구 흑룡강거리, 그리고 대림동의 차이나타운 등 곳에 가서 친척친우들을 만나서 식사했었는데 거의 모든 가게들이 정상영업을 했고 호황기를 맞아 손님들이 차고 넘쳤다. 유독 개고기간판이 붙은 가게만은 문이 꽁꽁 잠겨 져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개고기를 먹고 돈을 쓰면서 재수 없게 개판을 칠 미련한 바보는 없는 것이다.

침대에 조용히 누워 살아온 세월을 떠올려 보면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든다. 묘지에 가면 귀신이 나오고 밤에 밖에 나가면 귀신이 물어간다는 소리에 무서워 밖에도 못 나갔던 일, 마르지 않은 옷을 입으면 재수 없다고 꺼리던 일, 밤에 손발톱 깎으면 귀신이 온다는 말을 곧이 들었던 유치했던 나의 동년시절, 점쟁이한테서 점을 쳐보고 액운을 피하려고 이사를 자주 했던 나의 이웃사람들, 귀인을 만날 좋은 괘라고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귀인을 찾아 한국 땅 동서남북을 누비였던 오늘날의 나의 우스운 모습, 미신이 뭐 길래 사람들이 미신에 그토록 연연하는 걸까? 산에 가면 절이 있고 동네마다 교회가 있고 신문이나 광고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보살과 무당 그리고 무소속인들…산신제를 지내고 액운을 막는다고 방토를 하고 부적을 붙이고 죽은 사람의 혼을 달랜다고 궂을 하고……이런 일은 이 세상의 이상하지도 않은 일상으로 되어 있다.

현대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많은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점점 많이 알려지고 있다. 미신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어 사람들은 더욱 미신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연인에게 신발이나 양말을 선사하면 연인이 양말 신고 신발 신고 멀리멀리 떠난다고 절대로 선물하지 않고 배(li)를 쪼개 먹으면 서로 이별한다고 먹지 않고……식탁에서 수저를 떨어뜨리면 재수 나쁘다고 나쁜 재수를 돌린다고 수저를 돌리면서 부산을 떨고 생선요리를 번지며 먹으면 바다에서 배가 번져 진다고 큰 야단을 맞는다. 자식들이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면 아빠들은 행운이 들어오라고 집안에 있는 서랍이라는 서랍을 다 열어 놓고 어머니들은 '패뜩골'을 잘 쓰라고 패끼밥(팥밥)을 해주고 지망한 학교에 찰떡처럼 착 붙으라고 찰떡이나 찰밥을 해주고……

세상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는데 미신은 왜 변하지 않고 사람들은 점점 더 미신에 빠지고 미신에 약해지는 걸까? 자기중심주의와 사회부조리, 타락된 사회윤리도덕, 국민들이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 그들을 이끌어 줄 사상이나 가치관이 실추된 기막힌 사회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예전에 엄마아빠들이 그렇게 살아 왔듯이 그들도 미신을 굳게 믿고 있으며 또 다른 새로운 미신까지도 만들어 내면서 행운과 행복을 빌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박영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지성이면 감천이라지만 미신만 믿고 미신에 푹 빠져 일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사람과 무위도식이나 기회만 엿보는 우를 범하는 미련한 인간에게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지 않는다. 개미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 특히는 꿀벌처럼 이 세상에 꿀처럼 달콤한 행복과 사랑을 선사하는 향긋한 향기가 넘쳐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행운의 여신은 웃으며 찾아온다. 착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가증스러운 모기나 거미줄을 늘여 사냥감을 기다리는 음흉한 거미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의 인생을 짓밟고 파괴하는 가증스러운 자들은 제 아무리 미신을 믿어 보아도 무서운 액운은 피할 수 없고 지옥의 대문은 활짝 열려있는 것이다. 

  2017 02 22   전북 김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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