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인프로필 본명 허창렬, 시인/평론가. 기자/편집 역임. 재한동포문인협회 평론분과장
[서울=동북아신문]  '성좌 문학그룹'은 작게는 30여명 문인이 오붓이 모인 문학 동아리이고 크게는 재한동포문인협회 소속단체이다. 이렇듯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석탑"은 이미 쌓아졌다. 그것이 "첨성대"가 될지 아니면 "한무더기의 돌무지"가 될지는 오직 독자들의 검증을 거쳐야 할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을 한다.

문학은 "인간학"이며 말그대로 "인문학"이다. 이러한 휴머니즘적인 사유와 사색이 말그대로 마인드 컨트롤이 되여 석탑위의 우등불이 될 때 우리들의 존재의 가치는 의의가 있으며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임이 자랑스러울 그런 날도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우리는 아직 뾰족뾰족 새움이 막 터 오르기 시작한 한그루의 묘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감생심 감히 오직 우리들의 것이라고 일컬을수 있는 두둑한 배짱은 오직 우리들만의 경험, 그리고 우리만이  쓸 수가 있고 ㅡ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는ㅡ 디아스포라적인 아픔과 상처에서 치유를 목적으로 문학에서 활력소를 찾고 있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회남자·설림훈(淮南子·說林訓)>에 "태산지고, 배이불견, 추호지말, 시지가찰(泰山之高, 背而弗見, 秋毫之末, 視之可察)"이라는 구절이 있다. 뜻인즉 태산의 높이도 등지면 보이지 않고, 깃털끝도 살피면 눈에 들어온다는 말이다. 그럼 잔말은 이만 줄이고 본문으로 직행하려 한다.

 

지평선 1


곽미란

잃어버린 자궁일겁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았던 흔적일겁니다
눈을 뜨면 달이 번저져
해가 걸어 나오는
파종의 시간들
쪼개놓은 만고 강산
저 머얼리
땅의 끄트머리에서
우리 둘이 하나로 되는
내 목숨의
가난한 비상구

당신의 이름은
신의 속눈썹

곽미란의 경우. 아직 초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적인 의경(意境)이 새롭고 시적인 그 흐름이 매우 순탄하며 구조주의적 납함이 전률이 아닌 리듬을 타고 차츰 쩌렁쩌렁한듯하다. 잃어버린 자궁. 흔적. 파종의 시간들. 쪼개놓은 만고강산. 내 목숨의 가난한 비상구.그리고 속눈썹은 지평선을 독자들로 하여금 시인이 설치한 의도대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듯 하여 무척 좋아 보인다.

지평선 2

홍연숙


아득했다
따라가면 갈수록
지친다

물앉는것이
아니라
아예 퍼더버리고
앉는 것이다
마음의 선으로
생각에서부터
짤깍
잘리우는
점 하나ㅡ

내 인생의
지평선은
애초에
벌써 없었다...

홍연숙의 경우. 시어의 절제미가 나름대로 무척 돋보인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퍼더버리고 주저 앉아 포기할 수 조차 없는 것이 우리네 애환이고 또한 삶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추구는 과정이 항상 매우 중요하다. 짧고도 기나긴 우리들의 삶에서 옛말 한타스보다 좌우명이 때로는 촛불이 되고 등불이 되어 눈이 부시다. 그래서 홍연숙의 지평선은 독자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될것 같다.


지평선 3

변창렬


끝이나 머리나
먼 거리일거다
코 앞으로 끄당겨
나만의 끄나풀  만들자

반경으로 휘어도 좋다
직각을 접어도 좋지
어제는 저 쪽에
내일은 이 쪽에
구십도 각에 세워 둔 오늘은
내가 선 자리일거다

나만의 그림자도 늘구어
한 일 자는 못되어도
고삐 하나는 될 것이라
이 쪽 저 쪽 휘어 잡아
쫙 펼치면 탁 틔인
고속도로가 될게 아닌가

내 눈동자에 점 찍었다
시작은 여기서 부터다
발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점이라곤 없는 것이다

변창렬의 경우. 시어에서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온 연륜이 느껴지고 경험으로 주관적인 개인정서를 컨트롤 잘하여 마치 하얀 입쌀밥을 고기국물에 훌훌 말아 볼이 미여지게  먹을때의 그 담백함과 구수한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라 해야겠다. 기실 지평선에서 반경이니 직각이니는 타당한 표현이 아닌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석처럼 독자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마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평선 4

신영숙


뉘엿뉘엿 풀더미위에
노을이 눕는
지평선 저끝에서도
진달래 꽃은 필까
엄마가 계시는 그쪽
아빠가 계시는 이쪽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푸른 메아리
이산의 아픔 노릇노릇
햇 감자로 구워
눈굽이 까만 그리움
달래는 아이
아리랑 쓰리랑 노래에
지평선 끝자락에도
진달래꽃 필까
시퍼랗게 멍든 지평선 잡고
목 메여 불러본다
두번 다시 치켜 들수 없는
혈연의 깃발을

신영숙의 경우. 참으로 오래간만에 읽어보는 좋은 시 한수에 우선 먼저 응원의 박수부터 보내 드리고 싶다. /뉘엿뉘엿 풀더미위에/노을이 눕는/지평선 저끝에서도/ 진달래 꽃은 필까/는 그야말로 명구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상 싶다.
푸른 메아리. 눈굽이 까만 그리움. 혈연의 깃발 ㅡ은 이산가족의 아픈 정서를 베이스로 깔아놓아 그 울림이 둥둥 북소리가 되여 공명감이 무척 큰 것 같다.

 

지평선 5


허순금


저 멀리 지평선 너머
태양의 집이 있지
하늘과 땅이 묵묵히
입술 포개고 침묵하는걸
볼 순 없지
커다란 숲을 그려넣을꺼야
이쁜 새들도
그리고 그 아름다운 노래도
그리고 예쁜 꽃들로
화려한 드레스를 만들어주고파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인은
욕심쟁이 후후훗 바로 나야
어느날엔가 이 모든 걸
폐병으로 각혈하며 꼴딱꼴딱
넘어가는 태양이에게
선물해주고파

허순금의 경우. 시를 맛있게 요리할줄을 아는것 같다. 태양의 집. 침묵의 지평선에 숲을 그려넣고 새를 풀어 놓아 놀게 하려는 작자의 의도는 창의적이라고 보여진다. 허순금은 이름 그대로 "순금"이길 원하는듯 하다.그래서 닉네임도 24k인 것으로 짐작된다.한층 순도 높은ㅡ "순금"같은 시들을 하루빨리 써내시길 기원한다.

 

지평선 6


김다정


낮이 되면
너는 키가 자란다
끝 모를 저 멀리로
긴다리를 염치없이 뻗치며

깊어가는 황혼속에
스려지는 몸 가누며
저 언덕 빛의 길 따라
소복의 옷깃을 여며 본다

김다정의 경우. 전통시의 문턱을 기웃거리던 때가 어제같은데 요즘 제법 시적인 완성도가 높은것 같아 보인다. /낮이 되면/너는 키가 자란다/라는 서두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지평선 7

김재연


하늘과 땅 사이에 쌓아놓은
새까만 눈동자

꽃과 나비의 각혈,
아침노을의 아름다운 입술ㅡ

긴긴 눈초리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대지의 참회

그리고
그대 눈동자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나의
기다란 그림자ㅡ

김재연의 경우." 우연의 시학"을 바탕으로 한 김재연의 /하늘과 땅 사이에 쌓아놓은 /
새까만 눈동자/는 애증의 블랙홀이 되어 그 의미가 사뭇 커 보인다. 결구에서 그러한 블랙홀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작자의 모습은 비장한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르려는 성숙한 모습이 되어 영혼의 움직임 ㅡ 즉 심상의 그림이 제대로 완성된듯 하다.

 

지평선 8

박춘월


만물을 통째로 삼킨 우주가 
시침 떼고 입술을 다물면
맞물려서 생기는
신비의 그 풍경선은 
가장 멀리에서만
비로소 볼 수 있다
탱탱하게 물이 오른
아득한 무색의 경계선

허와 무와 실재가 타래여진
공중의 굵다란 바오라기가
불멸의 한가닥 선으로
저기 누워있다
느긋하다

박춘월의 경우. "예술이 인간적이기 위해 모더니즘의 상징적. 신화적. 추상적인 질서를 추구하는 미학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는 말이 있다. 박춘월의 시는 항상 테크놀이 크다. 그리고 느긋해서 좋다.


지평선 9


김기덕

지평선은
수평선이다
수평선은
고무줄이다
당기면 늘어나고
놓치면
줄어 든다
수평선 양끝을
두 손에
나누어 쥐고
줄넘기 하면
해와 달이
품속에 뛰어드네

김기덕의 경우.  노시인이 몇십년 갈고 닦은 기량은 가히 눈부실 정도다. 예술을 통해 혼돈과
광기의 역사에 형식적인 질서를 보여주려 한 의지가 돋보인다.

지 평 선 10

수라(황해암)


새가 날아가는 곳
땅과 하늘과
너와 나 사이
꿈이 둥지 튼 곳
날아가는
시간의 포물선 위로
피여나는 노을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활짝 튕겨 오르는 아침해
시위를 벗어난 희망의 화살
깊은 별바다를 향한
후회없는 질주

지평선은 선이 없다

황해암의 경우. 차곡차곡 쌓아올린 석탑은 매 층마다 그 풍경이 모두 다르다. 운률의 잔재가 즐비하고 소네트의 변형된 형식이 있으며 의식적으로 찾으려는 ' 두운'과 '각운'이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는듯 하다.


지평선 11

송연옥


사랑을 꽃피우던 시절
그대와 나
지평선 마주하고
맹세를 했다

왠지 지평선이
우리 둘을
지켜줄 것만 같았다

강산이 두번 변하여
다시 마주 한
지평선

그대는 지평선 저쪽
나는 지평선 이쪽

바라보기만 하는
하늘과 땅처럼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망부석이
되어 가고 있다

송연옥의 경우. 별다른 조미료 없이도 사물을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 사물을 들여다 보는 하나의 방법을 잘 알고 있는듯 하다. 깨달음은 갑자기 활짝 열린 미지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문이라고 생각해본다.


지평선  12

김  연


사내의
퍼어런 핏줄이
노을에까지 뻗쳐 심장이
풀떡일때
가야금소리 토옥 톡
풀잎을 튕겨주면
무수한 창들이
하늘을 꿰어 들고
빨간 댕기 하나에
웬 추억에
목이 너무 시리다

저기
저 위에서
저렇게
저렇게
하늘아래
구름아래
소쩍새 한마리
나이를 또 잊고
구슬피
운다 운다...

김연의 경우. 발견의 시학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듯 하다. 삶과 예술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해석을 거부하려는 새로운 감수성이 낯설고 익숙하게 다가들어 뼈와 살을 통하여 자연 신비주의 영혼에 잘 전달되는듯 하다.

 
지 평 선 13

박영진


새벽이
걸어 오는 아득히
먼곳에서
바다와 하늘이
뜨겁게 포옹하고
우리들의
새 희망이 즐겁게
키스하는
동쪽의 나라
신의 나라에서
얼굴이
불그스레한 햇님이
옛말 한 꾸러미
짊어지고
털썩털썩 걸어 온다
사랑도
아픔도
행복도
눈물도
나무로 심으며
땀을
이슬로 휘뿌리며

박영진의 경우. 느낌의 세계로부터 차단된 객관의 세계와 인간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는 오직 신의 존재뿐이다. 그래서 희망적인 메세지를 봉투를 열고 한 글자 두 글자 읽을 수가 있어 시와의 교감이 제대로 된듯 하다.


지평선

허창렬

옆구리가
시리다
손발이 너무 허전하다
헐벗은
저녁노을이 서산 위를
엉금엉금
기어 가는 가을 풍경이
넌 정말
보기가 좋았니?
남자도 아닌 것이
여자도 아닌 것이
풀밭에
퍼더버리고 앉아
목구멍까지 골똑 올라 찬
신음소리 내는
산들바람
옷 벗는 소리
넌 정말
듣기 좋았니

좋은 시 한수에
사내인 내가
아흐흑 ㅡ
아흐흑 ㅡ
오르가즘을 느낀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소용돌이치는
수백볼트의 전율,
혈관을 따라
수천 수만마리의
지렁이가
내 몸속 구석구석을
꿈지럭 꿈지럭
여기 저기서 기어 다닌다
酒邪의 하얀 치아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좋은 시 한 수를
읽을 때면
취기에 탁 풀린
두 다리가
쉰내 나는 소주병으로
남자의 목덜미를
덥썩 나꿔 채고서
산너머로 이사가는
다람쥐
발자취 따라 또 어디론가
떠나간다
노을이 시린
지평선은
오늘도 눈물이
없다...

허창렬의 경우. 영미의 포스트모더니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의식류가 아닌 무의식의 꽃밭을 거닐며 천천히 음미해보노라면 짜릿한 전률이 독자들에게 전달될 것 같다.

 시의 목표는 사물을 암시하는데 있다. (말라르메 전집 869쪽) 우리의 시는 남과 달라야 존재의 의미가 깊다고 생각된다. 우리들의 석탑은 이미 우뚝 서있다. 더는 물러 설 여력도 여지도 없다. 이제는 우리들이 누군가의 반딧불이 되고 등대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길은 멀고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무를 발견한 이후에야 진정 미를 알게 되었다."100년전 말라르메가 카잘리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끝으로 동인 여러분이 허심하게 타인의 긍정과 질타. 응원과 아픈 채찍일지라도 내일을 위하여 달갑게 받아드리시길 두손모아 부탁한다

2017년2월23일

경기도 화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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