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고량주 '설원' 문학상 응모작품

▲ 고송숙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안성문인협회 회원. 수필 "봄과 가을" 연변TV공모 금상. 수기 "시어머님의 유산 "평강컵공모 1등상. 소설 "백송이의 노란 장미꽃", 수필 "푸른 달래", 시 "13월의 사랑" 등 50여 편 발표

[서울=동북아신문]낙엽이 툭툭 떨어져 내린다.
 
낙엽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쳐다보니 엄마 생각, 앙상한 나뭇가지가 엄마의 강마른 손이 되어 엄마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지 5년 세월이 흘렀건만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돌아오면 엄마생각에 누구라도 붙잡고 긴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나의 엄마는 크지 않은 체구에, 특별히 기억력이 비상했고, 너그럽고 누구와 성내는 일이 없다보니 동네에서는 엄마의 이름보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더 많이 불러주셨다
 
9남매를 키웠지만 약도 의원도 없는 시골에서 병으로 다섯 자식을 요절시키고 겨우 4남매가 남았는데 제일 약골인 나에 대한 사랑이 특별히 강하셨다
 
생활이 어려웠던 그 시절에 풋옥수수며 채소들을 머리위에 이고 고개 몇 개를 넘어 시장가서 팔아서는 나의 옷들과 학용품들을 사다 주셨다
 
언 땅이 녹기 전부터 달래와 민들레를 캐시고 가을걷이가 끝난 허허벌판에서 한알 한알의 콩알을 줍고 옥수수 이삭줍기 감자알 캐기를 하여 살림에 보태셨는데 빨갛게 언 손은 숟가락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어있었다
 
겨울이면 퉁퉁 부은 손으로 우물가의 얼어붙은 얼음을 끄시고 동네 분들이 넘어질세라 마른 흙을 가져다 우물가 주위에 펴고 홀로 사는 할머니 집에는 늘 물을 길어다 주셨다
 
내 기억속의 엄마 손은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는 부지런한 손, 빨갛게 얼어서 부어있고 이곳저곳 상처가 많은 손, 음식을 맛나게 하는 요술 같은 손, 가끔씩 속앓이 할 때에 어루 쓸어주시면 금방이라도 아픔이 멎는 약 손이였다.
 
엄마는 그 손으로 대학시험에 낙방해서 슬프게 우는 나의 등을 다독여주셨고 내가 고열로 앓고 있을 때 몇 리 길을 걸어 보온병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와서 녹기 전에 어서 먹으라던 사랑의 손이였으며 시골에서 힘든 일 한번 시키지 않고 공부만하라면서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주던 든든하고 억센 손이였다
 
시집갈 때에는 그 손으로 이불 3채를 손수 다듬이 하시고 한뜸 한뜸 지어서 주시면서 하얀 이불안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법 없이 살아가는 정직한 사람으로 되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시집간 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1년에 한두 번밖에 찾아뵙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부지런한 두 손으로 돼지 길러 팔아서 모은 돈, 산나물 뜯어서 모은 돈들을 목돈으로 주시고 고춧가루며 고추장 강낭콩들을 아름아름 챙겨주셨다
 
엄마의 사랑을 받기만하고 효도를 못한 채 한국에 나오면서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3년만 돈 벌고 오겠으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한국에 나온 후 매일매일 힘들다고 외치며 살고 오직 돈에 대한 욕심과 또 불법체류자로 살다보니 3년이란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힘든 식당일에 지쳐서 잠시 엄마라는 존재를 잊고 전화도 자주 못하는 불효녀로 되어버렸다.
 
4년이 지난 가을 엄마가 위독하니 속히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연길 직행이 없어 장춘으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엄마에게 드릴 고급 원단의 옷을 샀다.
 
장춘 공항에 도착하니 엄마가 더 위독하다는 전화가 오자 나는 급급히 장춘에서 용정까지 택시를 타고 제발 이 막내딸이 갈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엄마에게 수십 번 빌고 또 빌면서 믿지도 않던 하느님 부처님에게 두 손을 맞잡고 소원을 들어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애간장이 타고 피가 마르고 속이 바질바질 타서 연기가 난다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절감하였다
 
장춘공항에서 용정시골까지 8시간을 달려온 택시기사에게 비행기 요금과 비슷한 거금을 드리고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눈도 뜨지 못하고 가는 날 숨만 내쉬고 있었다.
 
왜 인제야 왔느냐고 묻는 듯한 엄마의 얼굴 표정, 눈확이 우묵하게 꺼져 들어 간 엄마의 수척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니 허무함으로 목구멍은 솜으로 틀어막은 듯이 말문이 막히고 두 다리는 물먹은 햇솜처럼 나른해지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과 한 많은 아쉬운 일들, 엄마의 사랑을 받던 많은 일들이 영화 속의 한 장면 한 장면처럼 밀려오고 다가오고 또 지나가고, 평생을 자식위해 가정위해 산전수전 다 겪으시며 허이 허이 달려오며 모든 것을 바쳤지만 그 돈 때문에 자식들 모두 한국으로 나와서 마지막 임종에도 빈 껍데기인 몸으로 홀로 누워있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엄마의 두 손을 맞잡고 오열을 터뜨렸다
 
"엄마 늦게 와서 미안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3년이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하며 울음보를 터뜨리는 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셨는지 엄마의 눈귀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눈물을 씻어드리고 말하지도 못하고 눈도 못 뜨는 싸늘한 몸으로 점점 굳어져가는 엄마에게 급급히 한국에서 사온 새 옷을 속옷부터 양말까지 바꾸어 입혔다
 
"엄마,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하얀색 옷인데 금빛의 꽃무늬가 비껴 있어요, 한국에서 번 돈으로 고급 옷을 샀는데 빨리 눈 뜨시고 일어나서 몸에 맞는가 봐요!" 하면서 엄마 손을 붙잡고 애원했지만 엄마 손은 힘없이 아래로 처지고, 자식을 보듬어 사랑을 주실 때의 지칠 줄 모르던 손이 건강해서 "쇠로 만든 사람"이라고 불려 지던 엄마가 가는 호흡으로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고……
 
그렇게 엄마의 손을 잡은 지 두 시간 후에 엄마는 한국에서 베행기 타고 떠났다는 두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용히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
 
엉엉 흐느끼며 두 시간밖에 입어보지 못한 새 옷을 벗길 수가 없어서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가위로 잘라냈는데 썩뚝썩뚝 가위 소리가 나의 심장을 잘라내듯이 아프게 느껴오면서 자신의 불효에 후회의 눈물이 샘솟듯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에게 돈 넣을 주머니도 없는 수의를 입히면서 굽힐 수도 펼 수도 없는 나무 막대기 같은 두 손에 100원짜리 인민폐 한 장씩 간신히 잡아드리고 저 멀리 하늘나라에 가서 이 막내딸이 마지막으로 드리는 용돈으로 하루만이라도 즐겁게 호강해 보시라면서 넋두리를 하였다
 
한평생 자식 사랑만하고 주기만하면서 살아오신 엄마, 간염으로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병시중으로 여행한번 못하시고 몇 푼 안 되는 휴지 돈을 아끼려고 신문종이를 쓰시고, 오랜 고질병인 두통을 싸구려 '정통편'으로 달래시며 몰래 견디신 엄마, 나의 사진 뒤에 투박하고 굵은 손으로 "내 딸 숙이"라고 쓰시고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며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시고, 세상 뜨기 며칠 전에도 큰길 어귀에 나가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잠결에도 내 이름 숙이를 불렀다는 동네 분들의 말을 들으며 그런 엄마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하고 엄마의 아픈 손가락으로 살고 엄마가 걱정으로 가슴앓이 하는 딸로 살기만 했으니 엄마에게 평생 갚아도 갚아도 갚을수 없는 큰 죄를 진 것만 같다.
 
단 하루라도 빨리 찾아왔다면, 아니 몇 시간이라도 빨리 달려왔더라면 엄마의 눈을 보고 엄마를 사랑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고 엄마의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련만, 부르고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를 보면서 목 놓아 통곡해도 뼈저리는 후회와 자책감만 밀려왔다
 
장례식 날 엄마를 엄마 고향인 양지바른 언덕에 모시고 엄마의 산소 앞에서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내가 엄마 산소의 풀도 다듬고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도 섬기면서 엄마 산소를 지키는 보배 손으로 되여 지금까지 못했던 효도를 인제부터라도 하려고 1년에 한번 씩 꼭 찾아오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여 그 약속을 지키려고 엄마가 떠나간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엄마 산소를 찾아 고향으로 달려간다.
 
고향의 가을에는 엄마가 있고 엄마만의 특유한 끈적한 냄새가 풍겨오고 엄마가 버섯 따던 솔밭이 두 팔 벌리고 반겨준다.

고향의 바람은 엄마 손처럼 나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타향에서 힘들고 지쳐있던 몸을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엄마가 들려주던 옛날 옛적의 이야기들과 엄마가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 도란도란 들려온다.
 
고향의 가을에서 엄마가 해주시던 손 두부 맛 달래냄새를 음미하며 세상에서 제일 이쁜, 거쿨지고 검버섯 가득 돋은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옛날 오솔길을 산책하며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살아계시는 엄마, 엄마 산소 앞에서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이쁜 효녀 숙이로 돌아와서 엄마라는 그 이름을 높이 부르며 엄마가 혹시라도 들어줄까 허공에 대고 목 터지게 불러본다.
 
"엄마 미안합니다, 엄마 보고파요, 엄마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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