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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 수필 58>고학과 아르바이트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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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1  14: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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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길 우 (본명 신경철) 문학박사, 수필가, 시인, 국어학자 계간 <문학의강>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서울=동북아신문]1960년대에는 고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비를 제 손으로 고생하여 벌어서 배운다고 해서 고학(苦學)이라고 하였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1~2백 달라 시절이었으니, 부모님 돈만으로 공부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학교를 포기하고 직업을 구해 나간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고학에는 고학정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고 꼿꼿하게 일하는 삶의 정신이다. 그래서, 고학생들은 비록 돈을 벌기 위해 고학을 할망정 빌어먹지는 않는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가정형편이 좀 어렵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나서면 고학은 실패하고 만다. 고학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학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그가 진짜 고학생인지,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돈을 벌려는 학생인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 그들의 정신이 그대로 담겨져 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다방에 들어와서 손님의 탁자 위에 껌 한 통을 놓고 인사를 했다고 하자. 생각이 있는 손님은 말없이 사 주거나 돈을 얹어 준다. 거절하고 싶으면 껌을 옆으로 살짝 밀어놓는다. 그러면 여학생은 집어들고 인사를 하고는 다음 자리로 간다. 여기까지는 공개적인 고학생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밀어놓은 껌을 다시 앞으로 갖다 놓는다면? 그것은 고학생의 자세가 아니다. 다시 한번 더 사달라고 한 것뿐이니 적극적인 고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니다. 분명히 거절한 것을 재차 사 달라고 조른 것이니 구걸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고학생이 아니라, 생활고로 돈을 벌러 나온 학생이다.
 
버스에 올라가서 고학생이라며 물건을 사달라고 외치는 것도 참된 고학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처량한 목소리로 구슬프게 사연을 늘어놓는 것은 애걸이지 고학이 될 수 없다. 진짜 고학생은 그런 경우 정상적인 목소리로 신분을 밝히고 당당하게 사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지나가며 물건을 든 손을 한 번씩만 내민다. 결코 두 번 청하지 않는다. 그러면 구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학생은 돈과 관련해서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고학 현장에서도 한 번 청해 보고 안 들어주면 그만둔다. 설명하고 설득은 하지만, 비굴하게 사정하거나 자존심을 죽여 가며 애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학을 핑계로 돈을 벌려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두 번 세 번 청하기도 하고, 안 사면 사도록 몰아치기도 한다. 얕잡아 보이면 때로는 위협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고학생이면 외면을 하고 물건도 안 사 주며, 때로는 무서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진짜 고학생은 고학하는 현장이 아니면 고학하는 태를 내지 않는다. 고학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옷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빠지지 않게 입고, 머리와 신도 항상 단정하게 하고 다닌다. 비싼 음식을 사먹거나 술집 출입 같은 것은 여간해서는 하지 않지만, 교재 같은 것은 비싸도 꼭 사 가지고 다닌다. 결코 고학생이라는 표가 나지 않게 한다. 학생들끼리의 모임이나 놀이에도 참석할 때에는 고학생은 남보다 먼저 회비를 내고, 식사도 남들에게 먼저 권한다. “나 고학하는 줄 알잖아? 젓가락만 가지고 갈게” 하며 회비도 내지 않고 참석하면, 오히려 비판당하고 업신여김을 받는다.
 
가난하다, 형편이 어렵다 하고 애걸하면 동정해주기보다는 오히려 깔보고 무시하기가 일쑤인 것이 세상인심이다. 그래서인지, “고학한다고 말하면 고학을 하기가 어렵고, 고학생이라고 밝히면 이미 고학생일 수 없다”는 말이 당시에 있었다. 고학이 말뜻 그대로 힘든 일이지만, 고학한다, 고학생이다는 말을 하지 않고 진짜 고학생 노릇을 하기는 얼마나 어려웠을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고학생은 주변 사람들도 고학생인 줄을 모르고 지낸다. 그래서 함께 지내는 좋은 친구요 괜찮은 학생으로 기억된다. 따라서, 졸업한 뒤에 그가 고학생이었음을 알게 되어도 고학생으로서의 인상이 전혀 떠오르지 않으며, 대단하다, 보통이 아니다 하며 오히려 존경과 기대의 마음을 갖게도 된다.
 
고학은 결코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고학은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신을 갖추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는 훌륭한 학습이요 훈련이다. “젊어서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처럼, 고학은 고생스럽지만 젊은 시절에 한번 해볼 만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고학이라는 말이 없어졌다. 대신 쓰는 아르바이트(arbeit)란 말은 ‘삯일, 노동, 부업(副業)’을 뜻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돈을 버는 일을 하면서도 요새 학생들은 고학이라고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학비 조달이 목표가 아니고, 놀고 구경하며 즐기려고 버는 일이니 차마 고학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인가?

고학이나 아르바이트나 둘 다 학생들이 고생하며 돈을 버는 일이건만 그 생각과 정신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요즘의 학생들이 비록 고학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고학정신만은 좀 이해하고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은 욕심일까?

인생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돈만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늦은 밤 휘황찬란한 불빛을 받으며 유흥가를 누비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서글프기만 하다. 고학은 그만두고라도 아르바이트란 말의 의미나마 그들이 알기나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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