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룡 : 중국동문사회문제연구소 소장, 중국동포신문 주간. 칼럼집/장편소설 다수 출간
[서울=동북아신문]인간이 동물과의 구분이 바로 문화이다. 즉 동물은 문화가 없는 데 비해 인간은 문화를 소유하고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문화를 창조해냈을까?
인류의 초창기 문화의 모습을 원형(原形)이라 말하는데, 이 인류 문화원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론이 있다.

첫째, ‘산식문화이론(産食文化理論)’
‘산식문화이론’의 대표적인 주자는 영국문화인류학자 플래처 선생이며 대표저작으로서『금가지』가 있다. 그는 “원시인류의 생활핵심이 ‘식’이며 ‘식’으로부터 원시무술(巫術), 종교, 신화 등 정신문명현상들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둘째, ‘생식문화이론(生殖文化理論)’
‘생식문화이론’의 대표적인 인물은 중국문화인류학자 조국화(趙國華) 선생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생식숭배문화이론』에서 “원시인류의 가장 큰 과제는 종족의 번식이므로 초민(初民) 문화의 형성 핵심 포인트는 바로 ‘색(色)’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식색이론(食色理論)’
‘식색이론’의 창시자는 중국춘추시대 학자 고자이다. 고자는 “식과 색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하였다. 2천 년 지난 현재까지도 이 이론이 널리 먹히고 있는 실정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였던 엥겔스는 저서『가족, 사유제와 국가의 기원』서문에서 “```생산 자체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의식주 생산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자신의 종족번식 생산이다.”

위 세 가지 이론 가운데 앞 두 가지 이론은 편협적인 관점이 다분한 데 비해 세 번째 이론이 인류역사 흐름의 실제에 맞는 비교적 합리적인 이론이다.

한편 원시인류에게 있어서 후대번식이 큰 과제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원시인류에게 있어 ‘색’은 단순히 성적 즐거움을 넘어 후대번식에 무게가 더 실려 있었다는 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시인류에게 왜 후대번식이 그토록 중요했을까?

원시시대에는 자연재해, 전염병, 전쟁 등 불가항력적인 요인들 때문에 평균수명이 15세 미만이었고 생존율은 30%정도였다고 한다. 인간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곧 종족의 멸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방백계로 후대번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후대번식이란 간절한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 것이 곧 ‘생식숭배문화’이다.
후대번식의 주요 과제는 다산이다. 아이는 여자가 낳는다. 일차적으로 여자의 아이를 낳는 부위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여자의 그 주요 부위의 숭배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자연에 눈길을 돌려 그 자연의 신력을 빌려 인간의 다산을 추구하고자 했다.
중국문화를 돌이켜 보면 그 자연의 숭배대상이 바로 물고기였다.

두 마리 물고기(잉어)를 포개놓으면 외형적으로 여자의 음부를 닮았다. 한편 물고기는 일차적으로 수백, 수천의 알을 낳는다. 다산의 상징이다. 지금도 중국에서 가정집 벽에 오동통한 어린이가 풍만한 잉어를 안고 활짝 웃는 사진을 걸어놓는 것이 바로 물고기에 대한 생식숭배문화의 잔재현상이다. 그리고 음력설이 되면 ‘年年有餘’란 주련을 붙이는데 여기서 餘는 본래 물고기 ‘漁’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어로 餘와 漁는 같은 발음(yu)이다. 중국에서 연애편지를 ‘漁書’, 귀부인이 타던 가마를 ‘漁駕’라 불렀던 유래가 바로 물고기에 대한 생식숭배문화에서 유래되었던 것이다.

중국인류창조신화의 주인공은 ‘女娃’인데 여와는 곧 개구리 화신이다. 왜 개구리인가? 개구리는 하루아침 봄빛에 수천수만 개의 알을 생산한다. 다산의 상징이다. 달 속 여신 상아의 원음은 蟾蜍와 비슷한데 蟾蜍는 곧 개구리를 뜻하므로 상아는 곧 개구리 화신이었다.

원고료와 강연료로 중국갑부 47위에 오른 이중텐(易中天) 교수는 그의 저서  『이중텐의 중화사』제1권 조상(祖先)편에서 여와의 인류역사진화과정에 기여한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류의 조상인 이브가 ‘혁명’을 일으켰는데 그 성과는 인간이 벌거벗은 몸으로 직립하게 된 것이고, 여와의 문화적 공로는 생식숭배였다. 생식숭배는 ‘성 숭배’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목적이지 남녀 간의 사랑이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이브 이전으로의 후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생식숭배는 인류 고유의 성을 순전히 자연적인 삶에서 통제 가능한 문화로 변화시켰다. 그 덕분에 복희(伏羲)는 여와에게서 깃발을 건네받아 자신의 낙인을 찍을 수 있었다.

복희의 낙인은 바로 남성의 권력 장악이었다.
일단 남성이 권력을 장악하기만 하면 생식숭배는 토템숭배로, 모성사회는 남권사회로, 잠복해 있던 뱀은 하늘을 나는 용으로 변했다. 그것은 부락시대의 전야였다.
그전의 기나긴 세월 속에서 신화의 전설을 장식했던 세 대표자를 떠올려보면 원시공동체를 대표하는 이브는 원숭이에서 인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벌거벗은 원숭이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모계씨족을 대표하는 여와는 자연에서 문화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물고기, 개구리, 달의 이미지로 표현되었고, 부계씨족을 대표하는 복희는 모성에서 남성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새, 별, 태양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물고기와 개구리는 다산의 숭배대상이 되었고 이 두 생물의 특징은 알을 낳고 알에서 새끼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물고기와 개구리 외의 많은 생물이 알을 낳고 알에서 새끼가 생겨나는데 알을 거치지 않고 직접 새끼를 낳는 동물에 비해 생산량이 훨씬 높다. 그래서 알이 다산의 숭배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 은나라 조상 계(契)가 어미 간적이 현조의 알을 삼키고 잉태하여 낳았던 것이다.

계의 탄생을 역사에서는 ‘난생설화’라고 부르는데 중국역사에서 계를 빼고는 난생설화가 기본상 없다. 왜일까? 은나라 조상 계는 중원민족인 것이 아니라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즉 중원문화에는 난생설화가 발달하지 못했던 데 비해 동이족사회에서는 난생설화가 매우 발달했다.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가장 재미있게 강의하고 있는 설민석 선생은 “배달민족 건국시조들은 모두 양계장 출신이다”고 말했다. 이 말을 다시 뒤집어 표현하면 배달민족 건국시조들은 모두 알에서 탄생했다. 그 근거는『삼국유사』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혁거세왕, 김수로왕, 동명왕, 탈해왕이 모두 알에서 탄생되었다.
네 명의 건국시조가 모두 알에서 탄생했지만 앞 두 분과 뒤 두 분의 모티브가 조금 다르다. 즉 앞 두 분의 경우 자연 천생란적인 난생 모티프에 속하고 뒤 두 분의 경우는 인위 인생란적인 난생 모티프에 속한다.
이 두 모티브의 차이는 무엇인가?

박혁거세신화와 김수로왕신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알 속에서 영아로 태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생산력을 가지고 아이를 탄생시키는 알이 성스러운 빛과 더불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곧 이들이 보통 아이가 아니고 천신(天神)의 아들이거나 또는 태양의 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화에서는 인간 생명의 근원을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처음부터 신성시되고 있다. 천생(天生), 그 자체가 신이로운 징후인 것이며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된다.
인위 인생란적인 난생 모티프에 속하는 신화는 시조신들이 인간을 거쳐 알로 탄생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박혁거세나 김수로는 하늘에서 직접 땅으로 내려온 알에서 탄생되지만, 인위 인생적인 난생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동명왕이나 탈해왕은 인간의 몸에서 알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 남녀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 다음 그들의 몸에서 나온 알은 일단 버려진다. 그러나 신이한 징후들에 의하여 그 알은 신성시되고 재수용된다.
자연 천생란적인 난생 모티브든 인위 인생란적인 난생 모티브든 모두 다산의 상징인 알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관건 포인트는 역시 생식숭배문화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에 “사나이는 알에서 나왔는데 그 알은 박과 같았다. 향인들이 박을 朴이라 하므로 인하여 그 성을 朴이라 하였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대목도 역시 생식숭배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중국에도 朴氏夫婦의 천지창조신화도 있고 박에서 나왔다는 孟姜女 전설도 있듯이 박을 생식숭배대상으로 삼았다는 증거들이다.
『생식숭배문화이론』의 저자 조국화(趙國華) 선생은 중국역사에서 박에 대한 신화전설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 혹은 과류의 인간탄생신화가 실제로는 여성의 자궁이 인간을 탄생시킨다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또 “여자가 생산 시에 양막이 파열되어 양수가 흐르고 태판이 벗겨지고 또 양수가 혈액과 혼합되어 흘러나온다. 자궁의 오물 특히 분만 시의 양수는 일단 분만 시에 신생아가 흡수하면 곧 질식하여 죽는다. 옛사람들은 양수와 혈액이 태아의 생존에 일종 위협이 된다고 착각했다. 이러한 원시적인 연상사유가 여성이 분만 시에 흐르는 양수와 혈액을 과장하여 홍수로 상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영아의 무사강생은 곧 그들을 박 혹은 과류로 상징되는 자궁이 보호한 결과라 생각했다.”고 논증했다.
조국화 선생의 주장에 비춰 말하자면 박혁거세가 박에서 나왔다는 전설은 괜히 재미를 더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니라 고대 한반도 인류가 박을 생식숭배대상으로 받들었다는 유력한 증거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따라서 한반도 인류는 역사적으로 생식숭배문화가 강력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인류학자들은 이 방면에 대해 연구가 전무한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서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삼국유사』지철노왕편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제22대 지철노왕 음장이 一尺五寸이나 되어 배우자를 얻기 어려워 사자를 삼도에 보내어 구하였다. 사자가 모량부 동로수 아래에 이르러 본즉 개 두 마리가 큰 북만한 똥 덩어리 두 끝을 물고 다투는지라 촌인에게 물으니 한 소녀가 말하기를 이곳 상공의 딸이 여기서 빨래 하다가 수풀 속에 숨어서 눈 것이라 하였다. 그 집을 찾아가 보니 그 여자의 신장이 七尺五寸이었다. 사실을 고하니 왕이 수레를 보내어 그 여자를 궁중에 맞아들여 황후를 삼으니 여러 신하가 모두 하례하였다.
여자의 신장이 七尺五寸이면 거녀이고 큰 북만한 똥을 누었다는 것은 음력이 강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핵심 포인트는 생식숭배문화사상이다. 

중국고전『예기』에 의하면 천자의 '물건(陰莖)'을 진규(鎭圭)라 하는데 길이가 一尺二寸이었다고 한다. 지철노왕의 음장이 一尺五寸이니 중국 천자보다 3촌이나 더 큰 셈이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의 생식숭배사상이 중국보다 못하지  않았던 것이다.

『삼국유사』문호왕법민 편에 거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왕이 처음 즉위한 때는 龍朔辛酉年(661년)이었다. 사비 남쪽 해중에 여자의 시체가 있었는데 신장이 73척, 足長이 6척, 음장이 3척이었다.” 이 이야기는 백제가 망하는 징조를 알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거녀의 음장이 3척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 하나의 생식숭배문화사상의 유력한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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