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한 지 벌써 3주째인데 딸애의 입에선 아직도 한국말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매일 신나서 서둘러 학교에 가는 딸애를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한 만큼 딸애의 한국어실력이 늘지 않아서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익숙한 언어인 중국어가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딸애에게 가끔씩은 참지를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중국말 하지마!” 하고. 딸애는 나의 기세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쳐뜬다. 그러고는 곧 입을 다물어버린다. 말새단지라고 불릴만큼 말이 많은 딸애가 갑자기 벙어리가 되는 순간이다. 딸애의 맑은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걸 보면 그제서야 아차하지만 이미 늦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딸애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요즘 우리 집의 기온은 한겨울처럼 냉기가 감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거늘, 사람은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딸애가 학교에 가있는 낮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오늘 읽은 책인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날 아침, 저자는 나뭇등걸에 붙어있는 나비의 번데기를 보았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저자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김으로 열심히 데워주었다. 그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저자의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비는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고 있었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고 저자는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저자의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결국은 몇 초 뒤에 저자의 손바닥위에서 죽어갔다. 저자는 썩 나중에야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고 했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拔苗助长”이란 성구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춘추시대 송나라에 살던 어떤 농부가 모가 늦게 자라는 것을 싫어해서 매일매일 논에 가서 모들이 얼마나 자랐나 확인하다가 하루는 드디어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모를 하나하나 조금씩 뽑아내는 것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들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 말라죽었다. 자연의 이치를 거르슨 대가다. 예로부터 벼농사는 북방에서는 1모작을, 남방에서는 2모작, 3모작을 해왔다. 처음 상해에 와서 살 때 상해의 밥이 왜 이렇게 푸실푸실하고 끈기가 없어 불면 훅 날아갈 것 같은지 이상했는데 나중에야2모작이라서 그렇다는 걸 알았다. 지금도 쌀은 동북의 고향쌀이 맛있다. 봄, 여름, 가을의 다양한 계절을 겪으며 벼의 성장에 필요한 햇살을 넉넉하게 품고 탱글탱글 영글은 벼이삭으로 찧은 쌀이기때문이다.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기름기 찰찰 도는 하얀 밥은 얼마나 맛있었던가!
작년에 친구와 함께 사천여행에서 봤던 도강언의 물살이 떠오른다. 2천여 년전의 수력공정으로 만들어진 도강언은 인류가 치수사업에서 거둔 가장 위대한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리밑으로 흘러가는 급류의 시허연 물살은 간담이 서늘케 했다. 그런데 다리의 저쪽끝에 가면 물살은 여러갈래로 흩어져 눈부시게 빛나며 처녀의 눈길처럼 고요하다. 자연을 이렇듯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하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지만 알고보면 사람이 물의 속성과 이치를 깨닫고 물에 순응한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서는 안된다.
곧 딸애가 돌아올 시간이다. 오늘은 닦달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딸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딸애와 함께 사과를 썰어서 옥상에 널어 가을철 햇볕에 말리우고, 무말랭이도 만들어야겠다. 제철음식, 제철과일로 풍성한 밥상을 차려주어 딸애의 민감한 입맛을 돋구어줘야겠다. 맛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짧은 동화책이라도 같이 읽으면서 한국어 발음을 교정해주고, 동요나 아이돌의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 한국어에 대한 흥취도 키워주고, 서서히 낱말과 문장을 가르쳐야겠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또 다시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 듯이 딸애 또한 하루, 이틀, 한 주일, 한 달을 지나다보면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익히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나와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한국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어쩜 내 생일날에 한국어로 편지를 써줄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시간문제다. 그냥 순리에 맡기자.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나서 가을햇살에 제대로 익은 빨간 사과를 꺼내 천천히 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