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련 프로필: 흑룡강성 상지시 조선족중학교, 2002년 흑룡강성 문과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02학번, 학부 졸업.

업무경력 : 2006년 9월 ~ 2010년 9월 우리에프앤아이(우리금융그룹 자회사, 현재 대신에프앤아이), 투자팀

2010년 10월 ~ 2014년 6월 동양증권(현재 유안타증권) IB부문 기업금융업무

2014년 6월 ~ 현재 유안타증권 기획팀, 비서팀 팀장

[서울=동북아신문]간신과 폭군의 공통점이 그 어떤 콤플렉스라면 다른 점은 살인을 하는 자와 살인을 하도록 끊임 없는 유혹을 주는 자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곡성”이라는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첫인상으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본 원작의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직접적인 악행보다는 본능속의 두려움을 불질러놓는 악마의 유혹이 주축이어서일 것 같다.

시골초등학교 시절에 난로에 불을 지피는 용도로 솔깡(마른 솔나무를 잘게 잘라서 장작에 불을 지필때 사용)을 집에서 가져오라고 선생님이 그러셨다. 친구들은 다 예쁘게 잘 다듬어진 약간 핑크빛도는 베이지색의 고운 마른 솔깡을 갖고 올 텐데 우리 엄마는 시커먼 기름종이같은 것을 넣어주셨다. 같은 거니까 똑같이 쓸수 있다고. 6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학교를 들어가 세상물정을 모를법도 하지만 6살인 나는 그 검정색 기름종이에 대한 부끄러움을 순간 느꼈다. 엄마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가는 길에 그 검정색 기름종이를 몰래 버렸다. 선생님께는 엄마가 바빠서 못챙겨주셨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혼나고 벌도 섰다. 그래도 친구들의 고운 솔깡을 보면서 차라리 “혼난게잘한거야”라고 6살난 내가 생각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뭐가 뭔지 잘 모르는 6살난 나에게 있던 가장 직관적인 허영이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보다 못생긴 것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고 혼나고 엄마의 정성을 못본체 할 만큼.

시간이 한 움큼 지나서, 어린 나이에 엄마와 헤어지게 되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엄마에 대한 한톨한톨의 기억을 끌어모으다가 검정색 기름종이를 버리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때 다시 떠오르는 건 오롯이 엄마의 정성을 살폿이 밟아버린 못난 6살 허영심덩어리였다.

그 후부터 생각이 좀 많아졌던 것 같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흘러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나의 선택은 무엇일까.

사람이란 순간순간 선택을 하고 있고 순간순간 이런 저런 유혹에 노출되는 것 같다. 허영심은 그 가장 훌륭한 타켓인 것 같다. “곡성”처럼, 두려움 또한 더 무서운 짓을 저지르도록 하는 허점이다. 선악에 대한 다툼이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것처럼 좋고 나쁜 것에 대한 판단 또한 어렵겠지만 “유혹”은 나를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유혹하는 자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는 자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가도록 나의 허점을 끊임없이 공략한다.

  “도깨비”라는 영화가 대한민국여심을 흔들어놓고 있을 때 “파국”을 몰아온 간신의 유혹은 전체 스토리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꼬챙이처럼 꽂힌채 내눈에 들어왔다. 박중헌(김병철 역, 과거의 간신)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나는 또 한번 너를 죽였다”. 그는 그 천년전부터 김신(공유 역, 과거의 충신, 승전 장군)을 죽인 것은 왕여(이동욱 역, 당시의 왕)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이야기한다. 박중헌은왕여의 결여된 자존감을 허점으로 자존심을 박박 긁어가면서 김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와 마음을 만들었고 결국 왕여는김신을 죽였다.

  “간신은 어떻게 정치를 농락하였는가”는 역사속의 “박중헌”모음 같은 책이다. 많은 사람이 이 나라를 잘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간신이 나라를 말아먹는 것이 참 수월하구나 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
“보아라, 또다시 파국이다”

  “곡성”에 대한 의논이 분분한 와중에, 나는 “곡성”을 일본식의 악마의 유혹으로 읽었다.
동내에 살인사건이 생겼다. 곽도원역의 종구(효진이 아빠, 형사)가 수사를 하다가 수상한 사람의 집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종구의 딸 초등학생 효진이가 중독이 된건지 진짜 귀신에씌인건지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난폭한 행동을 하고 욕도 하면서 효진이가 점점 이상해진다.

사건을 수사하다 보니 마을에서 괴물을 봤다는 사람, 악마를 봤다는 사람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예전에 별거 아니라고 듣고 흘렸던 이야기도 생각이 막 나면서, 점점 우리 마을에 진짜 이상한 뭔가가 있는가 라는 생각으로 흘러간다. 

그러면서 효진이의 이상 행동은 점점 늘어간다. 진짜 귀신에 씌인건가. 장모님이 용한 무당 얘기를 한다. 효진이아빠는 효진이가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에 뭐든지 하려고 한다. 무당을 들린다. 하지만 효진이가 고통을 호소하면서 그만두라고 하자, 효진이의 모습이 안스러워  중간에 굿을 멈추고 무당을 쫓아낸다. 

수사에 진척을 보이며 종구는 동료 형사와 함께 외지인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그 외지인의 집에서 그동안 죽은 사람들의 사진들이 나왔고 분위기를 무섭게 잡아 갔는데, 종구의 동료가 거기에서 효진이의 이름이 쓰여진 학교 실내화를 찾게 된다. 종구의 두려움이 점점 커지면서종구도 드디어 이성을 잃어간다. 종구는 외지인의 악마이고 외지인의 모든 사건의 이유이기에 외지인을 죽여야 효진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결국 죽이는 액션을 한다. 두려움에 휘둘려 종구는 살인자가 된다. 여기도 파국이다.

종구에 대한 악마의 유혹은 그럴듯 아닌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면서 효진이는 귀신이 씌인 것이고 그 귀신은 수상한 외지인이 날린 살이고 그 외지인을 죽여야만 해결된다는 식으로 두려움에 두려움을 몰고 간다. 하지만, 사실이 어떻든, 결국 병원에 찾아간 것도, 굿을 하려고 황정민역의 무당 일광을 불러들인 것도, 악마라고 생각하는 쿠니무라 준 역의 외지인을 찾아가서 죽이려고 시도했던 것도 결국 모두 종구 자신이었다. 영화에서는 무당과 외지인이 한편인듯 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영화의 선의 흐름을 귀신에 씌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쪽으로 이끌기 위한 그 동내의 수호신 무명도 출연시킨다.

만약 진짜 효진이는 중독된 것이었다면, 병원을 믿고 찾았어야 할 것이고 만약 귀신이 씌인것이라면 무당이 굿을 하여 영혼을 꺼내려고 할 때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이었을 태다. 영화에서 의도한 사실이 뭐든지 아니면 의도한 사실 자체가 없었든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어느쪽이었든, 종구는 단 하나도 끝까지 믿었던 것은 없었고, 종구가 받았던 하나하나의 산재된 정보는 종구에게“두려움”이라는 살을 날리며 서슴 없이 악마가 되어 가도록 한 유혹이었다. 두려움을 증폭시킨, 그 두려움때문에 살인을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살인행동까지 하게 되는 그런 악마의 유혹이었다.

  "간신은 어떻게 정치를 농락하였는가"에 등장하는 왕 중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나라며 권리며 그 어느 하나라도 망가트리고 싶어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도깨비”의 왕 왕여는 허영심을 살살 긁어주는 간신의 “악마의 유혹”을 받았고, 결국 자신의 허영심에 흔들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인다.

나에게 쉽게 먹힐 수 있는 악마의 유혹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나에게는 하나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악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허영심에 가득찬 사람에게 당신보다 더 사랑받는 사람 스토리 하나로 악마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달콤한 소리로 귀를 틀어막고, 자존심을 부추기면서 지금의 상황 하나하나에 갇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마저 전혀 알 수 없는 망각속으로 밀어넣는다. 굳이 정치를 농간한 간신이나 나라를 말아먹은 폭군같은 커다란 파급력을 가진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소소하게 흔한 것이 악마같은 하나하나의 영향력과그런 것들에게 빈틈을 내어주며 스스럼 없이 나날이 멍청해지는 폭군들이다.

악마의 유혹을 우리는 이런저런 식으로 매일매일 받고 있고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악마같은 살을 매일매일 날리면서 사는 것 같다.“파국”에 이르지 않으면 대부분은 내가 악마였는지 내가 유혹받는 이 인지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사기를 당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욕심”이 그 원인이라면, 유혹을 당하는 근간에는 “믿음의 결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스스로를 믿을 줄 알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믿을 줄 알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똑똑하다고 이야기 많이 해준다고 내가 똑똑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성격좋다고 많이 이야기 해준다고 내가 성격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다 알고 칭송해줘야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란 솔직함에서 오지만 사람이 가장 솔직해지기 어려운 상대가 자신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악마의 유혹을 받을 빈틈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을 “솔직함”이라고 스스로 포장하고 스스럼 없이 행동하는 그런 사람, 다른 사람의 광기를 확인하고 선하고 착한 이미지로 반사익을 얻으려는 그런 사람, 빈틈을 노려보고 있는 상황 상황은 수 없이 많다.

참 진화란 더디고 더디어서 공격받기 두려워하고 공격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스스럼없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는, 우리는 아직 그냥 더딘 진화의 과정에서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아주 초기단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 또한 그냥 그런 더딘 진화를 조금 겪어온 인간으로서 부족함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라 덮어감추지 말고 부정하지 말고 포장하지 말고, 스스로 인정하고 스스로 솔직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악마의 유혹이란 누군가가 나의 어떤 행동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어떤 모습의 나로 남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일 것 같다.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
사람이, 특히 여러 사람이 무언가를 소중하게 지켜가는 것은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쉬운 루머 하나, 쉬운 나쁜 행동 하나로 파국을 만들어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약점을 노려 유혹의 살을 던지는 것이, 약한, 덜 진화한 우리 인간에게는 아직은 너무나 열려있는 일이니까.

스스로 판단력이 있고 스스로 자존심이 있고 스스로 결정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록, 그 무리는 “파국”이 더 쉬울수밖에 없다.

단 한학기라도 정신줄을 놓고 놀아버리면 마냥 내 인생에서의 “공부”가 모래성마냥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믿음과 그런 두려움이 점점 더 지배적인 오늘날, 결국 무언가를 지켜가는 사람은 한학기 한수업도 허투루 안하려고 힘든길을 외롭게 꾸역꾸역 걸어갈수 밖에 없어진다, 지쳐서 단 하루라도 정신줄을 놓고 살고 싶더라도, 아니면 그런 것들로 의미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안되더라도 심지어 그러다가 너무너무 쉽게 파국이 찾아오더라도 그냥 나는 꾸역꾸역 뭔가를 지켜가는 것에 길들여져있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정답이야”,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야”같은 말도 안되는 빈틈을 보이면서 나 스스로를 악마로 만드는 또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나 스스로를 포기하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고 또 애써갈 것이다. 가장 근래에 나에게 던져진 가장 악마 같은 상황은, “이렇게 내버려두면 큰일 납니다”였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그 빈틈이 되어 한 없이 공격의 “살”을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진짜 한때 그 두려움을 크게 크게 느꼈었다. 수두룩한 “악마의 유혹”앞에서 선택을 하는 건 결국 “나”라는 것을 자꾸자꾸 생각하게 된다.

  "악마의 유혹"은 우리의 일상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사느냐에 "악마" 또는 그 유혹이 핑계가 되지 않도록, 그냥 솔직하고 싶을 뿐이다. 덜 진화된 내 입장에서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잘 안되는, 가위에 눌려 달려가고 싶어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모습일지라도, 그냥 매일매일 그렇게 가고 싶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