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산 : 재한동포문인협회 시분과장. 재한동포사회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디아스포문학의 시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인. 동포문학(4호) 시부문 대상 수상.
[서울=동북아신문]  고향

 오라는 이도 없는데
가서 무엇을 하나 말해도
가고 싶다
가서, 철없던 시절
머리채 잡아당기며 별명을 부르고
만날 때마다 울려놓았던 순이 찾아
그때는 미워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가서, 논밭 물 때문에
주먹으로 눌렀던 철이 찾아
그때는 너무 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제사상 차려놓고
마지막 숨결도 지키지 못한
어머니 혼이라도 불러보고 싶다
가서, 무너진 집터라도 둘러보고 싶다
가서, 사라지는 냄새라도 붙들고 싶다
가서, 묶어놓는 설움을 확 풀어놓고 싶다
 
반겨주는 이도 없는데
가서 무엇을 하나 말해도
가고 싶다.
가서, 풋옥수수 한 솥 삶아놓고
낯선 이들에게 나누어 드리며
그땐 우린 이렇게
소박하지만, 욕심 없이 세월을 엮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풀피리 만들어 불고 또 불다
예쁜 아가씨 지나가면
그땐 우린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 하고
그저 풀피리만 불고 또 불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진달래꽃 출렁이는 산에 올라
고사리도 꺾고 더덕도 캐며
지워지는 향기를 머리에 꽉 담고 싶다.
 
가서, 새 친구들을 사귀고
고추장 바른 건 두부에 대파를 말아
배갈 한잔 카- 하고
잊어버린 맛을 되찾고 싶다
.
아는 이도 없는데
가서 무엇을 하나 말해도
가고 싶다.
가서, 막걸리 몇 동이 빚어
낯선 이들에게 권하며
내 그림자도 여기에 묻혀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서, 만년을 보낼 수 있게
깨끗한 공기를 남겨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