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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북아신문]얼마 전 텔레비젼에서 결혼을 앞둔 젊은 남녀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가 둘이 다 빠져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었다. 그들에게 수여한 표창장과 영예증서를 보면서 문득 몇십년 전 이러한 표창장과 영예증서는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미담으로 널리 전해졌던 아버지의 영웅본색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사람 살려요”헐떡헐떡 달려온 일여덟 살 되는 한 아이가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을 때 학교에서는 교직원 대회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백 선생님은 오지 마시십시오. 우리 젊은이들이 가도 됩니다.” 교장과 체육선생들, 그리고 젊은 교원들 저마다 말렸다. 그런데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60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아픈 다리를 끌며 숨이 턱에 닿도록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왔을 때 우물에 빠진 아이는 이미 바닥에 가라앉았고 시꺼멓게 흐린 수면만이 두 눈을 부릅뜬 채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우물가에는 교원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는데 죽음의 신이 부르는 이 우물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 누구 하나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우물은 보통 우물이 아니라 야채 대에서 관개용수로 쓰는 깊이 7-8미터나 되는 깊고 큰 우물이었다. 자칫하다간 자기가 도로 물에 빠져 죽을 판이어서 어느 누가 감히 우물에 뛰어들어 남을 구할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헤치며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길을 비켜 주었다. 아버지는 나이도 신체도, 심지어 자신이 당시 ‘우파’모자를 쓰고 있다 것도 생각할 사이 없이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허리에 밧줄을 잽싸게 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짤막하게 한마디를 했다. “내가 밧줄을 흔들면 인차 잡아 당겨 주오.” 아버지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는 물속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찰칵찰칵 숨 막히는 일분일초가 흘러갔다.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우물 안을 초조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물 밑에는 사람들이 던진 별의별 잡동사니들이 다 널려 있는데다가 바닥 또한 감탕천지여서 그야말로 아무리 애써도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만져지질 않았었다. 숨이 막혀 더는 물에 있을 수가 없은 아버지는 허리에 맨 밧줄을 힘껏 흔들었다. 그러나 물이 너무 깊어서 우물 밖의 사람들은 아버지가 보내는 이 신호를 감지 못했었다. 여러 번 반복해서 흔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밑은 바닥도 보이지 않고 물렁물렁 끝없이 빠져드는 수렁창이여서 땅을 차고 솟구쳐 올라올 아무 물건도 없었다. “여기에서 내가 오늘 죽게 되는구나.” 순간 이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었다. 삶의 본능은 아버지로 하여금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살길을 찾게 하였다. “제발 무엇 하나라도 걸려다오!”  아버지는 속으로 이렇게 빌고 또 빌면서 우물 안을 더 깊게 더 깐깐히 훑으면서 필사적으로 돌고 돌았다. 찰나 손에 무엇인가 딱딱한 것이 하나 맞혀왔었다. 끝끝내 수면 밑바닥에 박힌 큰 돌의 조금 내민 웃 부분을 찾아냈던 것 이다. “살았구나, 내가 살았어!”마침내 생명의 끈을 쥔 아버지는 이렇게 외치며 그 돌을 힘껏 박차고 우물 밖으로 솟구쳐 올라 오셨다.  “백 선생님이 올라오셨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가 올라오자 사람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이었다. 7월의 여름이건만 아버지는 부들부들 떨었고 입술은 새파랗다 못해 검푸른 색이 났으며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앞 다투어 자기의 옷을 씌어 주었다. 아버지는 재빨리 사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정신을 잃은 애 엄마가 우물 옆에 쓰러져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할 사이 없이 다시 우물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우물가로 가맣게 모여 들었다. 사태의 엄중성을 느낀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다시 우물 안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를 건지지 못할까봐 또 아버지가 잘못될까봐 모두 마음을 옥죄이고 있었다. 우물 안에서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아이를 찾고 또 찾았다. 그야말로 생과 사의 판가름 싸움이었다.  이렇게 세 번째 만에야 아버지는 끝끝내 거꾸로 박힌 아이의 발 하나를 움켜잡을 수 있었다. “불쌍한 애야, 제발 살아다오.” 아버지는 축 늘어진 아이를 꼭 안고 돌을 박차고 다시 우물 밖으로 솟아올라왔다.아버지는 옷을 입을 사이도 없이 급히 인공호흡을 시켰으나 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홍문에 손을 넣어 보았는데 손가락이 인차 쑥 들어갔었다.. 사람이 죽으면 홍문이 풀린다며 아이가 이미 잘못된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또다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천천히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휘청휘청 앞으로 걸어가셨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우물에 뛰어 들어 생명을 내걸고 아이를 구했는데 죽은 아이를 건졌으니 얼마나 기막혔을까! 이미 탈진상태가 온 아버지는 몇 걸음 못가고 그만 그 자리에 쓰러졌었다.  출중한 물 재간을 가진 아버지는 젊었을 때 고향에서 물에 빠진 사람 여럿을 구해 주셨다. 죽은 사람을 건진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여보, 베개를 좀 내려다 주오.” 그날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피곤하다며 저녁도 안 드시고 코만 드렁드렁 골면서 내처 주무시기만 하셨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너희들 아버지가 오늘 참 이상하시다. 무슨 일이 있었지?”하며 어머니는 자꾸 머리를 흔드셨다. 이튿날 교사들이 너도나도 어머니와 얘기해서야 우리식구 모두는 알게 되였다.평생 말대꾸 한번 할 줄 모르고 아버지에게 순종만 하던 어머니가 그날 놀란 가슴을 붙들고 하시던 얘기가 지금도 눈앞에 선해 났다.  “너네 아버지가 글쎄 어제 하마트면 죽을 번 했다구나. 아이구, 내 심장이야! 교장이요, 지부서기요, 당원이요 그리고 숱한 젊은 선생들도 다 죽을까봐 못 뛰어들었는데 글쎄 너네 아버지가……당신 그 나이에 어디라고 그 깊은 우물에 뛰어 들어요? 그것도 세 번씩이나? 죄 없는 사람 모자 씌워 놓고 사람 취급도 안 해 주는데, 그런데는 왜 나서요?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자구요?”  그때 아버지는 사람 좋게 그저 이런 한마디를 하셨다.“나 원, 참, 그 사람들이 안 뛰어 든다구 해서 그래 내가 안 나서면 아이는 어떻게 되는데? 그게 또 모자 쓴 것과 무슨 상관이요? 그 와중에 그런 걸 생각할 사이가 어디 있는데? 그저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지.”  평범하지만 의미심장한 아버지의 그 말씀은 지금도 내 마음에 큰 감동의 메아리로 남아있다. 세월이 많이 좋아진 지금이라면 60고령의 아버지의 이 의로운 행동이 신문이나 방송에 얼마나 대서특필 되었으랴. 지금은 잊혀 졌겠지만, 오랜 세월동안 이 사람의 입에서 저 사람의 입으로 아름다운 전설처럼 전해졌던 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렇게 남들을 교육하며 비판하던 사람들이 아이가 죽어 가는데 누구나 뒷짐만 지고 서 있다니?”아이의 죽음을 내내 안타깝게 생각하던 아버지는 며칠 뒤 집에서 혼자 술을 여느 때보다 많이 드시더니 술기운에 이렇게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음 앞에서 뒷걸음치는 영도와 당원들, 그리고 젊은이들의 처사가 통 납득이 안가고 이해할 수가 없어서이다.  이 사실을 목격한 한 선생님은 30년이 지난 얼마 전에도 나를 보고 그날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눈굽을 찍었다. 이런 한마디를 남겼다. “백 선생님은 어느 모로 보나 너무나 훌륭한 분이셨어, 이 시가지에서 살 사람이 아니었지.” 아버지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엄혹한 세월도, 아무리 큰 재난을 당해도 아버지의 인간됨됨이에 티가 묻지 않았었다. 명성 높은 소설가이고 교육가이기 전에 아버지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참된 사람이었다. 스무네 살 때 벌써 1급 교사였고, 지난 50년대 전주 5명에 밖에 없는 3급 교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연변의 저명한 문학계와 교육계의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낸 중국 조선족 노일대 교육가 중의 한 분일 뿐만 아니라 해방후 중국조선족소설 문학을 개척한 원로 작가의 한분이시기도 하였다.  재난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고 교육공작에 충직하면서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시던 아버지, 만약 억울한 역사가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그 연박한 지식과 뛰어난 필력으로 얼마나 많은 훌륭한 학생들을 배양하고 또 얼마나 많은 문학작품들을 창작해 내셨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온다.신문이나 인터넷에나 여러 매체들에서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들어간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생명을 잃고 만다. 매번 이런 뉴스들을 볼 때면 나는 몇 십 년 전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손에 식은땀을 쥐게 된다. 너무나 선량했기에, 너무나 훌륭했기에, 너무나 물재간이 좋으셨기에 하느님은 아버지에게 삶의 끈을 다시 쥐여 주었으리라.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버지의 삶, 그러나 가슴에는 바다보다 더 큰 사랑을 품고 한생을 사시었다. 아버지는 진정 넓은 가슴과 높은 인격의 소유자였다.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도 잊고 뛰어 들었던 우물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버지는 이미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의 우물 하나를 남겨주고 떠나가셨다. 마를 줄도 지칠 줄도 모르고 솟아나는 이 사랑의 맑은 샘물은 그대로 감로수가 되어 사람들 마음에 흘러들어 인생의 감로수가 될 것이다.  이젠 추억으로밖에 아버지를 만날 수 없지만 나는 삶이 지쳐 힘들 때면 늘 아버지를 가슴깊이 불러본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며, 또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와 힘을 얻게 되고 참된 삶의 도리를 깨우치게 된다. 다시 아버지와 같은 그런 넓은 가슴과 큰 사랑을 가졌는지를 반성해 본다. 아버지는 비록 저 세상으로 가셨지만 내 심장이 뛰는 한 나는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이 딸은 중국조선족교육의 전신인 ‘교육통신’의 제1대 주필이시며 저명 소설가인 백호연의 자랑스러운 따님답게 세상을 의(義)로 나누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이젠 시름 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천복을 다 누리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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