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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김재연 오피니언] 까만봉지
[편집]본지 기자  |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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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7  18: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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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연 프로필: 중국 길림성 반석현 출생 길림성 영길시 조선족고등학교 졸업 교사, 자영업 종사. 현재 아모레 퍼시픽. 1989년 '도라지' 문학지에 수필(처녀작) <천국의 주인은 누구?> 발표. 그후 시 작품 다수 발표. 동북아신문 영업부장, 재한동포문인협회 총무차장
[서울=동북아신문]올해 설날은 날씨가 유난히 푸근했다. 중국에서 설날이라면 거위 털 같은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흰 눈 위에 빠작빠작 발자국 도장도 꾹꾹 찍으며 요란한 폭죽소리에 들뜬 기분으로 지새우는 밤이 추억 속 동년의 설날이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한국에서 그런 설날풍경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듯했다.

설날은 우리 민족고유의 명절이라 어른들 찾아뵙는 게 늘 관례로 되여 나는 남구로에 계시는 삼촌댁부터 찾아갔다. 삼촌이 살고 계시는 곳은 지하철 부근이라 주차가 바늘귀 들어가듯 어려워서 길이 워낙 좁고 오불꼬불하여 오르막경사도 만만치 않아 나는 아예 차를 큰 길옆에다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갔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 전봇대를 중심으로 눈앞에 까만 비닐봉지로 된 쓰레기가 큰 산더미를 이루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까만 봉지 안에는 주민들의 온갖 일상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음식물, 일반쓰레기, 재활용쓰레기를 한 봉지에 다 집어넣어서 터 진건 터져서 흉물스런 괴물의 내장을 널어놓은 듯했다. 외국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공포영화장면이 불현 듯 뇌리를 스쳐 지나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지나다니는 길마저 쓰레기가 내로라 나딩굴고 있어서 우리는 조심조심 까만 쓰레기 봉지를 폭탄마냥 피하여 넘으며 지나왔다. 헤쳐진 음식물을 훔쳐 먹던 두세 마리의 들 고양이들이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서 저만큼 달아났다. 날씨마저 확 풀려서 퀴퀴한 냄새 때문에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교포 집거 지역에 아직 이런 곳이 있다는 현실 앞에 또 한 번 충격이었다.
 
시장이나 길을 가다가 보면 수시로 까만 봉지를 든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까만 봉지에는 많은 비밀이 들어있다. 까만 봉지를 보니 십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당진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빠가 휴일이라 찾아와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오빠가 족발을 무척 좋아해서 나는 전화로 배달을 시켜 먹고 나서 뼈는 까만 봉지에 싸서 그냥 버려도 된다하기에 출입문 앞에다 그냥 두었다. 오빠가 떠나간 뒤에 아무리 까만 봉지를 찾아도 보이질 않아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다 별거 아니어서 금방 잊어 버렸다. 그 후 수개월이 지나서 오빠랑 통화하다가 불현 듯 오빠가 하는 말이 그때 문 앞에 까만 봉지가 두개나 있기에 하나는 분명히 내가 오빠더러 챙겨가라는 김치통이라 들었다가 그 옆에 또 하나의 까만 봉지도 반찬인줄 알고 당진까지 세 번 환승해서 종아리가 뻐근하게 가지고 가서 며칠 후 정작 먹으려고 펼쳐보니 뼈다귀를 담은 쓰레기봉지라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해서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환경의식은 중국보다는 한국이, 한국보다는 싱가포르가, 싱가포르보다는 일본이 가장 뛰어나다는 건 아마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삼년 전에 싱가포르에 갔을 때 이동하면서 보니 곳곳에 환경미화원이 관리하고 있어 처음부터 한국보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장소마다 금연구역이라 그때 일행인 애연가인 오빠가 가장 힘들어 했던 생각이 난다. 길거리에 담배꽁초가 한 대도 없고 구간마다 지정된 곳에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곤경을 치렀다. 날씨는 찜질방처럼 덥고 전철에 생수를 가지고 탔지만 전철 안에서는 음수금지, 흡연금지는 물론 가장 중요한건 벌금과 직접연관 된 금액을 보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시아22개국에서 첫 번째로 뽑히는 관광녹색도시라 국민환경의식도 그만큼 투철했던 것 같다.
 
작년가을에 46년 만에 46일간 개방한다는 만경대를 나는 꼭 한번 가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는 내 나이 또한 46세였으니 내가 이 세상에 태여 나서부터 폐쇄된 곳이라 더 신비스러워서였다. 우리일행은 용암폭포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정했다. 조금 늦가을이라 예쁜 단풍은 우리를 기다리다 못해 바닥에서 잠들고 있었다. 등산거리가 짧은 대신 오를수록 경사가 가팔아서 발목이 시큰거려 잘 걸을 수도 없는 완전 깔딱 고개였다. 숨이 턱에 닿고 땀이 이마에서 눈까풀까지 덮어버려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들 너무 지쳐 마침 펑퍼짐한 바위가 배짱 좋게 엎어져 있어 각자 가지고 간 음식을 나눠먹고 다시 정상을 향했다.
 
그런데 앞에 가는 아저씨 한분의 옆구리에 까만 봉지가 양옆에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었다. 여기저기 버린 과자봉지며 음료수깡통을 닥치는 대로 주어서 까만 봉지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내 몸 끌고 올라가기도 버거운데 버려진 쓰레기까지 챙기는 분을 다시 한 번 존경의 눈길로 쳐다보며 우리는 갈 길을 재촉했다. 더디어 정상까지 올라가서 보니 시원하게 탁 트인 눈앞에 펼쳐진 기암괴석들이 조물주의 신비함을 자랑하듯 펼쳐졌다.우리는 아름다운 만경대의 풍경에 도취 되어 한참을 노닐다가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에서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났을 때는 까만 쓰레기 봉지가 등 뒤에 맨 가방여기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눈길이 자꾸 그기에 꽂혔다. 호기심 많은 내가 다가가서 물었다.
아저씨, 혹시 여기 관리자이신가요?”
아니요, 등산을 왔는데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가 다시 수십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것들이라 줍는 것입니다.”
 
그 아저씨의 멀어져가는 뒤 모습을 바라보며 까만 봉지에 우리의 눈먼 양심도 함께 담아 버렸다는 생각에 저 먼발치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까만 봉지에서 눈길을 땔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지혜의 큰 눈을 뜨고 우리를 낳고 키워준 이 아름다운 땅에 고마움을 느끼고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삼라만상이 잠든 이 고요한 밤에 더욱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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