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 서울시 구로구청장
 [서울=동북아신문]내 개똥철학에 의하면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을 표현하거나 이해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절제’고 다른 하나는 ‘자유를 발산하는 것’이다. 전자는 대체로 순수예술과 고전예술이고, 후자는 대중예술이나 또는 전위예술이다.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 발레에서는 춤추는 사람에게 자유가 용납되지 않는다. 군무 속 일원으로서 손끝과 발끝까지 극도로 절제해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반면에 현대무용은 대단히 역동적인 동작을 통해 자유를 발산하려 한다. 

미술도 마찬가지여서 추상이든 구상이든 사생이든 정물이든 형식과 관계없이 전위미술은 자유를 발산하려 하고 순수미술은 주어진 형식에 숨어들어가려 한다. 음악에서는 이것이 더욱 극명하게 대비된다. 아무리 위대한 연주자라 하더라도, 정경화든 백건우든 장영주든,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엄격히 규정된 악보 속에서 아주 미세한 일부분일 뿐이다. 그들은 가장 적당한 소리 크기와 정확한,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 빛깔을 내기 위해 긴장 속에서 절제된 손놀림으로 건반을 누르고 활을 긋는다.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연주자를 보라. 그들은 절대로 북을 마음껏 치지 못한다. 조심스레 북을 한번 퉁 치고는 황급하게 손으로 덮어서 소리가 통제 범위 내에서만 울리도록 절제한다. 소위 클래식으로 불리는 음악의 미는 바로 ‘절제’에 있다.  대중음악은 이와 정반대다. 드럼 연주자를 보면 무아지경에서 마음껏 북을 때린다. 록 음악을 하는 기타 연주자 역시 마찬가지로, 그들은 마음껏 자유를 발산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 우리의 국악도 마찬가지여서 국악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궁중음악이나 시조같은 것은 절제된 소리를 내고, 대중국악이라 할 수 있는 농악이나 판소리는 자유를 넘어서 방종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있다. 절제와 발산의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대중가수가 있다. 패티김과 김현식이다. 나는 두 가수를 모두 좋아하는데 특히 김현식의 <내사랑 내 곁에>는 나의 십팔 번 애창곡이다. 김현식의 노래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내지르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는 목청이 갈라지도록 소리를 내지른다. 굳이 소리를 가다듬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라진 그대로 내지르며 가슴 속에 있는 것을 함께 토해내려 한다. 그의 노래는 갈라진 목소리의 포르티시모(fortissimo, 아주 세게)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소리를 내지를 때 그는 자신의 폐활량을 모두 소비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또 다른 부분, 즉 ‘자유’를 개척한 가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대중음악은 가곡과 달라서 적당히 박자를 늦추거나 당기는 멋이 있고, 그런 멋은 어느 가수나 당연하게 누려왔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소리를 내지르는 자유를 맘껏 누린 가수는 김현식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신중현이라는 천재 대중음악 작곡가가 ‘꾸밈없이 멋대로 부르기’라는 유형에서 일종의 자아도취형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바 있지만 ‘내지르기’는 김현식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패티김의 노래는‘속으로 감추기’라고 할 수 있다. 패티김은 소리를 내질러야 할 노래의 절정 부분, 고음부분에서 오히려 가장 여린 소리를 낸다. <사랑이여 안녕히>를 보자.“봄날에는 꽃 안개 아름다운 꿈 속에서 처음 그대를 만났네……낙엽이 흩날리던 눈물어린 그 바람 속에 나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 노래의 절정인‘사랑이여 내 사랑이여’부분을 패티김은 목소리를 삼키듯이 안으로 감춘다. 그는 노래의 마지막 박자까지 숨을 멈추지 않고 충실하게 표현하며, 아무리 여린 목소리로도 소리를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한 음을 구사한다(많은 대중가수 들이 낮은 음 혹은 여린 음에서 속삭임이나 한숨소리 같은 것으로 적당히 음을 뭉개버리는 경향이 있다. 패티김은 절대로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누려도 좋을 자유조차 누리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절제하며 노래하는 것이 패티김이다. 이 점에서 아주 많이 닮은 가수를 하나 더 들라면 이미자가 있다. 이미자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대중가요의 멋이라고 할 수 있는 박자의 변화, 즉 박자를 당기고 늦추는 수도 부리지 않는다. 자신의 악보를 가곡처럼 해석하고 절제하는 데 익숙한 가수다. 아마도 이 두 가수는 산에 올라가서 “야호!”를 외칠 때도 폐활량을 모두 쓰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야오”하고 예쁘게 소리 내려 할 것이다. 이들은 대중가수이되, 창법은 클래식에 가깝다.대중음악의 창법을 대표할 만한 이들 중에서 김현식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요절했으되 자신이 누리고 싶은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갔으리라. 패티김과 이미자가 나란히 노래인생 오십 년이 지나도록 매년 콘서트를 열고 있는데, 이들이 이만큼 사랑을 받고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이 일생동안 쓸 수 있는 자유를 절제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성(수필가) 약력 경북문경출생, 99년 월간 ‘문학세계’ 수필등단, 구로문인협회회원, 고려대행정학과졸업, 제24회행정고등고시합격, 청와대비서실행정관, 서울시시정개혁단장, 서울시경쟁력강화본부장, 서울시감사관, 現)서울시 구로구청장。 저서 : 이성 단장의 온가족 세계 배낭여행기(全3권), 돈바위산의 선물, 구로날씨 맑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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