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련 프로필: 흑룡강성 상지시 조선족중학교, 2002년 흑룡강성 문과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02학번, 학부 졸업.업무경력 : 2006년 9월 ~ 2010년 9월 우리에프앤아이(우리금융그룹 자회사, 현재 대신에프앤아이), 투자팀2010년 10월 ~ 2014년 6월 동양증권(현재 유안타증권) IB부문 기업금융업무2014년 6월 ~ 현재 유안타증권 기획팀, 비서팀 팀장, 중국변호사.
[서울=동북아신문]주식은 희망산업이다. 주식의 가치는 성장성이고 주식의 가격은 유동성이다. 다 희망이다.

한국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 아이가 자라게 될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외국인인데 넌 촛불집회는 왜 가니,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최근에 어떤 분이 내가 하고 있는 세월호뺏지를 보고, 이제는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 왜 아직도 하고 다니냐 라고 물어보신다. 그냥, 이 나라에서 사는 한 어른으로서 그 아이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다.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 위에 짚은 것 처럼, 정치를 이야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주식을 이야기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정신사납게 하루하루 꾸역꾸역 고민하는 나에게 저 멀리 빛이란 어떤 의미인 것이고 터널이 닥치든 겨울이 닥치든 나를 풍선처럼 둥둥 띄워주는 사람들이 몰려오든, 정신줄을 놓치 않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가 문뜩 궁금해졌다.

열두 살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참 우아 하시다. 우리 앞에서 다툰 적도 없으시다. 그러다가 두 분이 웃으면서 거실에서 이혼을 합의하셨고,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정신적인 강박증의 출발이 그때였는지 그 훨씬 전이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터널같은 나의 첫번째 긴 시간은 그때였던 것 같다. 할머니와 단둘이 큰 집에 두 방에서 각자 살고 지내던 시기였고, 낯선 새 학교로 가서 새 친구를 만나서 신났지만 그것보다는 혼자 불을 끄지 못하고 이불 덮고 울던 긴긴 밤이 대부분 추억이다. 그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눈물도 1년이 지나면서 차차 줄었지만, 앞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은 잔인해보일 수도 있고 당연해보일 수도 있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직후, 13살, 중학교 2학년, 객지에서 기숙사생활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참 많은 생각을 시작했다.
나는 저 친구랑 친하고 싶은데 저 친구는 왜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나는 놀고 싶은데 공부를 내려놓으면 안될 것 같은 이 불안감의 모순은 무엇일까.
한끼한끼 먹고사는 것으로 너무 어렵게 숫자를 세면서 살아가는 것이 13살인 나의 일이지만, 내가 살게 될 스무살이란 서른살이란 나의 미래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
부모와 나의 관계는 어떤 것이고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이렇게 배고프기도 하고 나는 이렇게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렇게 순간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고통스럽고 슬프기도 하는데,, 이렇게 순간순간이 절실하고 순간순간이 세상의 모든 것처럼 느껴지는데 나의 이런 느낌이 없어지면 내 눈으로 보여지는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이런 질문의 답을 혼자 생각하면서 논리적인 결벽증과 강박적 성향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냥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고.

그러면서 나에게 미세하게나마 희망이 생겨났다.
긴 터널 저편에 초불 한 자루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저 생존을 위한 기숙사비와 부족한 밥값과 알아서 쪼개서 써야 하는 생활비로 계획을 해야 하는 13살이였지만, 내가 해주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인정해주고 아껴주고 긍정해주는 이 세상의 힘을 보았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나는 놀기도 잘하는 아이였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잡다한 책도 좋아하고 잡담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에게 친구를 줬고, 선생님의 애정을 줬고 같이 문학 소녀를 꿈꾸는 소울메이트도 만들어주었다.
누가 나에게 뭘 해주지, 라는 고민은 해본적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지금의 가난과 어려움이 나의 가난과 어려움이 아니고,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것은 “가난”이나 감정적인 배신감, 이별 이런것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기 어려웠던 내 마음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내가 느끼는 희망을 공유하면서 “친구”라는 것을 마음속에 두고 키워갔고 “믿음”이라는 것을 다시 주는 법을 배웠다.
나의 믿음의 절대다수였던 엄마와 헤어지면서 “믿음”이란 함부로 주면 안될 것 같은 심리적 장벽이 생겼었던 것 같다.
  이렇게 이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 희망의 줄은 나를 행복하고 잘나가는 아이로 만들어줬다. 어두운 기억이 별로 없다.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도 여전히 나를 좋아하고 찾아주고 내가 함부로 던진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면서 오해하지 않는다. 아직도 나를 믿어주고 좋아해준다.

희망이란, 멀고먼 촛불처럼 막연하고 미약해보이겠지만, 인생자체가 희망산업이 아닌가 싶을만큼, 내 마음속 한줄기의 희망은 어마어마한 힘으로 나의 현재를 바꾼다.

13살때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나는 지금 놀고 싶다. 하지만 공부도 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어떤 미래를 위하여 오늘 내가 하고싶은 것을 댓가로 치르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가.
13살 때의 나는 이렇게 결론을 지어버렸다. 나의 오늘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이런 오늘로 쌓아 쌓아 만들어진 내일도 행복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나마 공부를 내려놓지 않았던 것은, 이런 말 하면 욕먹겠지만, 공부는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적당히 해줘도 나의 허영심의 만족을 주는 너무 훌륭한 일이었다.

지금 또한 그러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지금의 개똥 철학에 의하여 바른 일이 아니고 나의 오늘을 뿌듯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고 그 어떤 미래를 댓가로 나 스스로를 억압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희망.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박근혜를 내쫓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로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 손으로 지금보다 더 낳은 세상을 선택한 적이 있는지, 어떻게 선택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선거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는데, 선거라는 D-day가 있는 프로그램은 온전한 언론플레이이자 온전한 마이너 한싸움인 것 같다. 문제는, 유권자들은 아마 다들 각자의 입장을, 지금 돌고 있는 이야기를, 지금의 시국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앞날을 잘 알고 있다고, 본인의 자주적인 판단으로 더 나은 선택을, 최소한 그 중에서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 선택을 보아라. 결국은 알량하게 편협하게 가공되어 제공된 진실여부도 알 수 없는 정보들을 근거로 나름 “똑똑한” 내가 나를 위해 유리한 판단을 했다고 자부하면서 표를 던진다. 그렇게 표를 던진 결과 이명박이었고 그렇게 표를 던진 결과 박근혜였으며 다음도 그렇게 표를 던질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은 촛불집회가 아니라, 선거가 어떤 의미인 것인지, 나의 선택이 어떤 앞날 어떤 촛불을 맞아 올것인지에 대한 보편적 다수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희망.
갓 8살이 된 딸아이가 엄마 아빠가 다 집을 비운 동안, 물론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라고 잠깐 나갔다고 온다고 하고 집을 비운 동안, 저금통에 동전을 털어 동생 손을 잡고 첫 승인 받지 못한 외출을 시도했다. 그 아이들은 편의점에 가서 과자를 샀고 놀이터에 가서 놀다가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집에 들어왔다.
내 아이는 항상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현명하고 똑똑하고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성장해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다 컸구나.
이 아이는 이렇게 나에게 항상 선입견따위는 버려야 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었고 엄마 몸에서 분리된 만큼 하나의 존중받아야 하는 독립된 인간임을 수시로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고민에 빠졌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 배짱 좋은 아이들을 어떡하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서글픈 현실이다.
단지 한국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요즘의 대다수 사회가, 좋은 일에 박수 치고나쁜 일에 열광한다.
소박하게,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들이라도 온건한 정신세계와 따뜻한 마음과 배려와 소통, 이런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잘 장착시켜서 사회로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는 유일한 교육의 목표로 생각하고 지켜나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남편도 나도 더 따뜻하고 더 도덕적이고 더 온건한 정신상태를 가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 광고 이야기를 하다가 잘 만들어진 컨텐츠 하나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현대차 제네시스의 미국 광고였다.
https://youtu.be/NXPte3YlVFs
우주비행사아빠에게 보내는 스테파니라는 여자아이의 메시지를 방대한 프로젝트를 통하여 전달하는 것이 맥락이다. 수백명의 전문가와 수십 대의 차량으로 그들은 우주에서도 볼 수 있는 사이즈의“Steph love’s You!”라는 메시지를 만들었고 아빠는 우주에서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서 스테파니에게 보낸다.
4차 산업 형명을모르면 간첩인 시기이지만 과학이든 기술이든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때에는 여전이 사랑, 사랑이다.

희망.
누구나 긴 희망을 갖고 살더라도 살고 있는 순간순간 희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긴 계획을 세우든, 오늘 하루만 살고 가려는 결심을 하든 그 어떤 결론에는 다 희망이 필요하다.
우리는 진화의 그 어느 단계에 머물어 어설프게 살고 있더라고, 자신이 진화의 정점에 와 있는 것처럼 철학을 펼치고 있지 않을까.
산에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천만년 뒤에,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의 유적을 발견한 듯한 우리의 유적을 발견했을 때, 이런 얘기를 할 것 같다.
“물가 상승을 고민하면서 먹고살기가 힘들었던, 어설픈 생산기구로 서로 빼앗고 서로 싸우던 시기에, 어머나,, 철학이라는 서적도 있었던 것 같아. 세상에…”
내가 중학교때 생각했던 개똥 철학이 나중에 생각해보면 참 귀여운 앙탈이었던 것처럼, 성장이라는 힘이 꾸준히 꾸준히 지켜나갈 것을 지켜갈 수 있다면 우리 지금보다 나은 시간을 나의 후배와 나의 자녀와 나의 후손이 살아갈 수있을까.

진화란, 우리가 만년 시 계열로 보았을 때에는 원숭이계열에서 유인원으로 그 후에 인간으로 엄청난 발전을 가져온 것이라고 보아진다면, 삼국지부터 조선역사부터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박정희 노태우… 이렇게 이어진 지금의 민주화까지. 과연 얼마만한 발전이 있었고 과연 얼마만한 서민들의 삶의 개선이 있었고 과연 얼마만한 서민들의 권력의식의 변화가 있었을까.
중국엄마들이 아이가 쉬가 마려우면 어디든지 길옆에서 쉬를 하게 한다고 논란과 비난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진화란 이루어지기 어렵고 똑같은 악습의 대물림이 90% 이상은 된다고. 그래서 진화란 “유전”받은 생물학적 신체보다 “유전”받은 “의식”의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더 더디고 더딜 수 밖에 없고 또 진화란 과거보다 좋아진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만년 시계열이 종족에서 제국에서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보편인권이라도 발전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백년, 백년으로 쪼개어서 보면 지나쳐서 돌아오고 다시 나아가는 수 없는 반복 이었을 수 있고 수 없는 퇴보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이 어떤 의미에서의 발전일까.
우리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이 느껴지는 자유보다, 더 값진 것이 무엇이 있을까도 엄마로서 반성해야 할 바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란, 삼성전자에 입사하는 것이 영광이 아니라, 아이가 꿈꾸고 있던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영광이여야 하고 그 동내가 대한민국이든 다른 어디든 찾아 갈 수 있는 희망과 미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것이 멀고 먼 욕심처럼 느껴지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는 진화를 희망한다.
우리는 희망을 희망한다.
그 진화의 기준은 무엇일까.
종의 개체수의 증가를 진화의 성공으로 본다면, 지구상 진화의 승자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라는 증거가 다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화는 이런 것이 아니다.
철학, 종교, 정당의 강령이라고 해야 하나.. 많은 단체들이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러는 진화에 대한 근거와 희망인 것이다.

나는 세월로뺏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는 정치적이지 않다. 그런 것과 아무 상관 없이, 나는 세월호 사건을 생중계로 바라본 이후, 알 수 없는 분노와 수치를 느꼈고 우리 아이에게 니가 살고 있는 나라, 세상의 모습을 알려줘야겠다는 책임도 느꼈다.
연차를 내고, 다섯살 사윤이를 데리고 안산으로 갔다.
졸업식도 아니고, 파릇파릇 예쁜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쭉 둘러보면서 사윤이가 물어본다.
언니오빠 예쁘다, 왜 여기 있는거야?
언니오빠는 배가 바다에 빠지면서 죽었어…
왜 죽지? 왜 안 구해 준거야?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 밖에 없었다.
나는 선거권도 없고 그 어떤 법령 통과를 위한 권력도 단 한개도 없는 외국인이다.
나라가 나에게 많은 세금을 걷어 효율적이지 못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경영자라도 정답은 모르니까.
다만, 내가 나의 인권, 나의 자유, 나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국가”라는 이름을 받아들일 때에는, 최소한 나의 아이가 위험할 때에는 구해줄 수 있다는 기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일에 대한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희망이니까.
예전에 모 임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임기로 있는 이 기간동안 해야 할 일은, 다음 임기를 맞게 될 사람에게 어떤 회사를 물려주느냐 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희망.
밤을 새어가면서 고민하는 사람의 종류는 다양하다. 다양한 이익 집단을 위한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나는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냥, 그 누구의 희망을 위하여 나와 함께 한 많은 사람의 희망을 댓가로 치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힘들때마다 스스로에게 희망 고문을 한다.
희망, 나의 20년 이상의 시간을 같이 살게 될 동료나 후배들과 나라는 공동 집단에게 오늘보다 나아진다는 것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의미 있는 것이야.
오늘 보다 나아질 것이야.
판이 뒤집히지 않더라도 오늘보다 조금 나아질 방법은 많이 있을 것이야.
나의 희망 고문이고 나의 에너지이고 나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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