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 이유:저는 박명화라고 부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사에서 업무를 보며 지내오던 저는 저의 인생이 쭉 이대로 평탄하게만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파 쓰러지면서 혈소판감소증이란 진단을 받게 되면서부터 두려움과 불안에 떨게 되였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저는 중국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습관을 키웠습니다. 글로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자기 위안을 얻군 하였습니다. 그후 병이 조금 호전되어 한국에 오게 되면서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필을 놓아버리게 되였습니다.그러다가 남편이 건강 때문에 중국에 먼저 돌아가게 되면서 다시 불안에 빠진 저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자기야, 나도 글써 볼까?” “써봐.” 무심코 툭 던지는 남편의 한마디에 결국 놓았던 필을 다시 들게 되였습니다. 며칠 전 봄바람에 등 떠밀려 다녀온 봄나들이에 감명을 받아 이 글을 쓰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내고 다시 완강히 움터 올라오는 작은 풀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견디고 견디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내 삶과 인생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보람차고 행복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국타향에서 시간에 쫓기며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 인생에도 봄이 올 거라 믿습니다. 중국 연길(고향 왕청)에서 한국에 온 지는 벌써 6년이 됩니다.

서울에서

[서울=동북아신문]아직 3월이라 바람이 쌀쌀하여 추운 날씨가 지속되는가 싶더니 겨울 끝자락에 찾아온 봄비에 귀맛 좋은 새들의 지저귐 소리와 돌돌 흐르는 강물의 노랫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와 고요하던 내 마음을 싱숭생숭 흔들어 놓는다. 모처럼 생긴 휴일 방콕 하려던 생각은 어느 샌가 구중천에 날려버리고 저도 몰래 나들이 준비를 하고 있은 나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버스커버스커”의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둘러 화장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서는 봄의 향기를 만끽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기에 바쁘다.
궁리끝에 집에서 멀지 않은 가산디지털단지역 벚꽃 십리 길과 안양천 제방길을 찾기로 하였다. 봄에는 그래도 꽃구경이 제일이니까.

빨간 립스틱으로 입술을 물들이고 남편이 선물해준 향수까지 쏙쏙 뿌리고 나니 거울 속에 영락없는 봄처녀가 나타났다.

화장은 마쳤으니 옷은 뭘 입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옷궤 속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잔꽃 무늬 플레이원피스를 꺼냈다. 몇 년 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가 흰 바탕에 연분홍 잔꽃들이  수놓아진 쉬폰소 재원단의 원피스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충동구매를 한 것이다. 사놓고 너무 화사하다는 이유로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는 이 원피스를 오늘은 꼭 입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았다.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봄바람이 들어와 하늘거리는 원피스의 옷깃을 흔들어 놓는다. 거울속의 처자도 빨간 립스틱사이 박씨 같은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문을 나서니 따스한 해살이 반갑게 맞아준다.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봄의 행적을 찾아 떠났다. 육교를 지나 광명쪽 징검다리를 건너니 멀리서부터 강변을 따라 쫙 늘어선 벚꽃나무들이 한눈에 안겨온다. 나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조그마한 가슴도 한껏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다.

주말이라 벚꽃나뭇길은 벌써 쌍쌍의 연인들과 산책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마다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꽃나무가지를 부여잡고, 꽃송이에 코를 대고 혹은 나무아래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모두가 탤런트가 된 듯싶다. 그러나 떠들썩한 인파는 하늘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인 벚꽃을 감상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밤새 내린 비로 이슬을 머금은 꽃송이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다치면 금방이라도 톡 터질 것만 같은 꽃봉오리들은 암팡지기 그지없다. 만발한 꽃송이들 사이 뾰족뾰족 돋아난 연두색 아기잎사귀들은 봄의 생기를 한층 더해 주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다가도 솔솔 봄바람이 불어오면 하얀 꽃잎들이 흰나비 떼 마냥 하늘하늘 춤추며 날아 내린다. 그 사이를 거닐고 있노라니 향기에 취해서인지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웬지 몸이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벚꽃향기를 탐욕스레 들이키고는 길옆 벤치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원피스자락을 정리하며 머리를 숙이다가 문득 땅에도 봄이 찾아왔음을 발견하였다. 겨울을 견디고 눈보라와 비바람을 이겨낸 작은 풀들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수줍게 나한테 인사를 하고 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식지로 야드르르한 작은 풀을 콕 누르며 악수를 하였다. 봄과의 악수였다.

다시 일어나 벚꽃가로수 길을 가로질러 안양천제방 산책로에 들어섰다. 도로 한 켠에 “버스커버스커”의 노래가사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네~”처럼 샛노란 개나리꽃들이 아주 예쁘게 피어있다. 한 송이 한 송이가 정성을 다하여 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니 빨간 장미, 분홍장미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다.  꽃망울마다에 물방울이 맺혀있어 마치 구슬을 머금은 섹시한 입술을 방불케 한다. 꽃송이를 받쳐주는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잔뜩 머리를 쳐들고 보란 듯이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이다. 이래서 녀인을 장미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다.

봄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찰칵”하는 소리가나서 머리를 돌려 보니 40대 초반의 한 여자가 18세 소녀인양 환성을 지르며 마구 셔터를 누르고 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이며 반짝이는 눈동자는 지금 이 시각만큼은 소녀임이 틀림없다. 그렇다, 봄은 모든 여자를 소녀로 만들어주는 재간이 있는 것이다. 나도 이 아름다운 순간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워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꽃도 찍고 봄도 찍고 그 봄을즐기는 사람도 찍었다. 그러다가 저도 몰래 홀린 듯 벚꽃나무가지를 잡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벚 꽃잎 이내 코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그 향이 내 페속 깊은 곳에 들어가 새로운 세포로 태어난다.

아, 봄의 향기…참, 좋다. 봄을 찾은 여자가 느끼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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