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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련의 오피니언]늙어가는 엄마와 나, 그리고 자라는 아이들
정련  |  9420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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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4  11: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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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련 프로필: 흑룡강성 상지시 조선족중학교, 2002년 흑룡강성 문과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02학번, 학부 졸업.업무경력 : 2006년 9월 ~ 2010년 9월 우리에프앤아이(우리금융그룹 자회사, 현재 대신에프앤아이), 투자팀2010년 10월 ~ 2014년 6월 동양증권(현재 유안타증권) IB부문 기업금융업무2014년 6월 ~ 현재 유안타증권 기획팀, 비서팀 팀장, 중국변호사
[서울=동북아신문] 싱가포르에 매년 온다. 엄마를 보러.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면서 나도 매년 사진을 찍는다. 유난히 올해는 조명빨 각도빨을 받아도 예쁜 사진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순간, 내가 나이 먹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입버릇처럼, 고운 할머니로 늙어갈 거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지만, 정작 나는 교만하게도 단 한번도 내가 늙어가는 모습, 피부가 처지고 체력이 빠지고 주름이 지는 그런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나 보다.

 팔순 되가는 할머니가 나와 아빠에게 엄마라는 이야기를 듣고 두돌짜리 사윤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늙는 거 싫어!” 하면서. 막상, 나는 이런 감정을 이제서야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 같다.

 성숙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여전히 소꿉놀이처럼 순진하게 내 인생만 바라보고 있지만, 그 사이 나는 알아서 늙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두려워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엄마도 늙어가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 처럼. 

우리 엄마를 이야기하면, 많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엄마의 교육철학이다. 나는 그것이 늘 자랑스럽고 늘 나 스스로의 자존감의 기본으로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모든 나의 인생사를 아주 아주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셨다.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하면 전자 키보드를 사주셨고, 3일 뒤 하기 싫어 라고 하면 그래, 그만해, 라고 하셨다. 이런 일들이 서너번 반복되고 난 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이 이야기를 엄마한데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때가 다섯살이었다. 우리 집은 딸만 둘이라, 그 중 공부 잘하는 내가 공대 또는 의대를 가기를 부모님은 많이 바라왔었고 청화대학이라는 문턱을 넘기를 너무나 원했었지만, 내가 스스로 '문과'를 선택하였을 때 단 한명도 이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결혼도 마찬가지 였다. 부모님에게 결혼할 것이라고 이야기 할 때, 부모님의 학교, 전공 등 질문에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들은 그냥 묵묵히 받아들였을 뿐이다. 다행히도 지금 행복하게 사는 딸의 모습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듯 하다.

  엄마가 내가 사윤이를 낳을 무렵 그러셨다. 내 새끼 인생에 삿대질 하는 것보다 숨어서 조용히 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너는 알게 될 것이라고. 이것이 내 자존감의 모든 바탕이다. 우리 엄마는 늘 나를 믿어 주었고, 그건 본인의 나에 대한 기대와 상상과 그 무엇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엄마라는 이름을 여태 나는 그냥 같이 사는 룸메이트로서 내가 해야 할 책임과 나의 자세와 나의 모습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서야 문뜩, 엄마라는 이름은 나의 느낌이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아이의 마음의 상태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냥, 엄마, 라는 이름 하나로 곁에 있지 않아도 믿음이 넘쳐나고 그 사랑을 느끼고 믿는 그런 사람이든지, 마음에 들기 위하여 아둥 바둥 해야 하는 나의 기준이든지,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자랑스럽고 편안하고 따라하고 싶은 그런 존재이든지. 이런 건 그냥 “엄마”를 부르는 “아이” 기준의 이름인 것 같다. 

  사윤이를 낳고서 그 당시는 인지하지 못하였으나, 나 스스로의 인생 실현과 나 스스로의 이기심과 “엄마”라는 이름 사이에서 참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마구 엄마 마음을 따르지 않는 다고 야단치고 후회하는 전형 적인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변덕스럽다고 비난하던 누구 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사율이를 낳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아이들이 이상한 행동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느껴지면서, 그래, 그럴 수 있지, 라고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떤 분이, 좋은 뜻으로, 이제는 진짜 애기 엄마 티가 난다고 하셨다. 내가 내 기준에서 인정하고 성장하였던 것일 꺼다. 요즘은 더 많은 성장의 계기가 생긴게 아닌지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우문에는 현답이 없다고 하였다. 내가 어떤 엄마일까 라는 것이 우문 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편안하지, 이런 것이 엄마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매년 엄마를 보러 싱가포르에 온다. 그리고 매년 떠나갈 때마다 공항에서 조용히 한참 운다.

  엄마는 나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혼자 컸다고 늘 미안해 하시지만, 엄마는 잠자기 전에 생각하고 일어나서 생각하고 나도 저런 사람으로 살아야지 또 생각하는 나에게 그 무엇보다 더 든든한 바탕이 되 주셨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라는 말이 내 입버릇 처럼 해 왔던 것이 그 증거다. 나는 충분히 자랑스러워 했고, 성인이 되기까지 10년을 떠나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거지만, 엄마랑 떨어질 때 울고 불고 적응을 못하는 아이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아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확신을 쭉 갖고 있었고 그래서 불안하지도 옹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엄마”가 어떤 엄마였는지는 본인이 생각한 “해준 것이 없어”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든든한 나의 삶의 바탕과 기본이었던 것이다. 

  오늘 문득 세수를 하고 미간에 주름이 깊어 지려고 하는 흔적을 보았다. 누워서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나는 “곱게” 늙어야 하니까.

  세상 만사에, 일이든 공부든 나와 관계된 모든 것에 나는 최선을 하고자 했고 그 최선이 내가 당당한 가장 기본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뒤집혔다. 나의 최선은 내 마음인 것이고, 나의 미간 주름을 본 사람 사람들에게 나는 미간을 찡그리는 사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얼굴과 지금 이 몸과 이 나이에 어떤 스타일이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질 것인지에 대하여 오늘 첨으로 고민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나의 나이에 교만하고 있었고 나의 “늙음”에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으면서 “곱게” 늙겠다는 빈말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엄마한데 랑콤 엣센스를 사드렸다.

  엄마는 워낙 몸매도 곱고 피부도 고운 그런 여자다.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다녀도 숨길 수 없는 비율과 몸매를 자랑한다. 그 랑콤은 그냥, 엄마가 늙는 것이 싫어, 라는 말을 울지도 않고 울리 지도 않고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우리 엄마는 “곱게” 늙고 있고 더 “곱게” 늙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점이 우리 엄마가 나의 엄마로서의 영향력이고 나의 엄마로서의 모든 역할이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사람이 한살 한살 나이가 차면서 한번 또 한번 “발전”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이렇 도록 자기 부정과 함께 해야 할까 반성도 해본다. 

  길게 길게 글을 써도, 구체적인 스토리가 하나도 없는 것이 나의 글인가.

마이클 가자니아의 “뇌, 인간의 지도”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의 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또한 번 생각을 해보았다. “늙어가는” 나의 사진 속 모습을 확인하면서 더이상 늦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내 글이 왜 재미가 없는 지도 확인 했다. 쓸데 없이 생각이 많은 아이들의 특징 같은 것인가, 작가 개입이 너무 많고 작가의 개똥 철학이 너무 많다. 그래도 좋다. 마이클 가자니아의 “뇌, 인간의 지도”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점에 공감을 했으니까. 나는 누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런 작은 포인트에서 포착하고 있고 그런 것을 보여주려고 개똥 철학을 계속 쓰고 있으며 “뇌, 인간의 지도”에서의 지루할 법한 작가 개입에 나는 너무나 만족스럽게 그 사람의 본판과 그 사람의 생각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다. 모든 것이 자기만족이다. “나”라는 이름 하에서는. 그리고 나는 “엄마”라는 이름의 정련의 또 다른 하나의 직책이자 별명처럼 그냥 “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 이름을 부르는 아이의 느낌이자 삶의 본판이고 그 어떤 직책과 직급 또한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느낌이자 일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나”는 “나”니까 라고 했던 점 자체가 너무 심한 교만이고 잘난척이었다는 생각이 무척 많이 든다. 

  여전히 오지랍이 넓고 여전히 단호하고 여전히 올곧은, 그리고 여전히 나를 믿고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우리 “엄마”는 늙어가고 있다. 나는 그 “곱게” 늙어가는 모습을 슬픔이 아닌 따뜻한, 뿌듯한, 따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늙어가는 나는 자라는 나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떤 바탕을 주는 여자인지에 대하여 새로이 고민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럭무럭 자란다. 6개월 전에 키가 5센치나 모자라 못 탔던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됬다. “애기”들이 합리적인 자기들의 가치관과 논리를 주장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뿌듯하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또 고민한다. 그들에게 안정감과 믿음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엄마”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나”로서의 인생과 “엄마”로서의 모습은 진짜 너무 딴 판이니까. 

  뒤늦게 늙어가면서 철든 엄마의 초라한 자백 같지만, 밑도 끝도 없는 인정과 반성을 함께 하며, 더 나아지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더 많아지는 우리의 소소한 행복을 희망하고 또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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