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나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 중한수교가 된지도 어언간 20년이 넘었다. 지금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만 해도 70만 명에 치닫고 있는데 이는 전체 외국인수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조선족들이 아직도 고민하고 딜레마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다. 한민족의 문화적인 동질감과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곳이며 아울러 언어가 통하고 문화의 근저인 한국은 많은 중국동포들이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는 노다지의 땅이자 고마움과 섭섭함이 교차되어 있는 곳이다.  

중국 연변에서 살면서 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나라에서 주는 소수민족의 혜택을 받아 조선말과 조선 글을 마음대로 구사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쉰 고개에 한국생활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3년 전 한국에 나올 때만 해도 나는 여느 조선족들과 마찬 가지로 한국인들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우리와 무엇이나 다 같은 줄 알았고 한국에서 환대 받으면서 폼 나게 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취직하려고 신문을 펼치니 구직광고란에 <교포절대사절>이란 문구가 가슴에 못을 쾅쾅 박았다. 어서 오라고 대문을 열어 놓을 때는 언제고 왜 절대 사절로 난리 브루스를 출까?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절대사절의 의미를 알게 되였다.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문화와 교육이 다르고 따라서 의식도 달랐다. 중국공산당의 교육을 줄곧 받았고 중국의 문화적 환경에서 자란 중국 조선족과 한국인들은 먹는 음식도 입는 스타일도 지어 생각에도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조선족들은 중국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는 음식이 주로 기름에 볶은 음식이지만 한국인은 무엇이나 무쳐서 먹은 것이 위주이고 입는 것도 조선족들은 주로 같은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고 색상도 단일한 걸 좋아하지만 한국인들은 남들과 같은 옷을 입지 않고 색상도 화려한 색상을 골라 입기를 좋아했다.

  전철에서 소리 높 여 전화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조선족이고 한국인들은 이어폰을 끼고도 입을 막고 낮은 소리로 전화를 한다. 중국에서 살 때는 한족들이 밉상이더니 한국에 나오니 길가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배달을 열심히 하는 한족이나 중국음식을 부지런히 만들고 있는 한족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무작정 그들과 한마디라도 대화하고 싶었고 전철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면 앞질러 가서 알려 주군 했다. 텔레비죤에서 중국과 한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중국에 있을 때는 한국을 목 터지게 응원하더니 한국에 나오니 자연 중국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타향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한국생활을 하면서 중국에서 살 때 보다 자신이 중국 사람임을 더욱 실감했다. 내가 여느 때보다도 중국을 그리고 내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 데는 한국이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중국에서 텔레비전 방송국의 편집으로 일 하다가 한국의 3D업종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의 지난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생활의 핍박이었고 삶의 사투이기도 했다. 식당일, 가정부일, 모텔 청소부, 별별 못해봤던 일들을 하면서 눈물도 수없이 쏟았고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그렇다고 매양 한국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 징 거릴 수도 없었다.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나가야만 이 낯선 땅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준 한국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고 내가 먼저 다가가 한국인과 소통하고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워야 했다. 평화와 통일의 하모니―<조각보>모임에 참가하면서부터 내 삶은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22일 국립 서울 현충원에서 6.25 60주년을 생각하며 중국, 북한, 일본에서 배운 한국전쟁, 남한에서 기억하는 6.25 등 소제목으로 남과 북 중국, 일본의 사람 책 7명과 아이와 청소년 어른 50여명이 참가하여 살아있는 책을 읽는 모임을 가지였다.  

한국의 역사를 알아가고 문화와 환경의 차이로 조선족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우리를 이해 할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열고 싶어 나는 기꺼이 중국 책이 되었다. 그날 7,8명의 사람들이 중국 책인 나를 읽어 주어서 너무 고마웠고 보람을 느꼈다. 또 하나의 깨우침은 지금까지 평화나 전쟁 또는 남북통일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남북통일에 중국조선족이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신심이 생겼고 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한국생활이 2년이 지난 후부터 나는 점차 경제적으로 그리고 마음 적으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그리고 힘든 이국생활 때문에 고민하고 방황하는 동포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나는 심리 상담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서서울생명의 전화>에서 매주 4시간씩 심리상담사 수업을 받았고 일 년 후 심리상담사 2급자격증을 따냈으며 나의 고민상담이야기를 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조선족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조상의 뼈가 묻어 있는 한국, 조선과 경제 및 문화적인 면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방면에서 불가분리적인 유대(紐帶)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계에 속한다. 내가 한국계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중국조선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고 그것은 또한 본연의 내 자신을 찾는 여행이기도 하였다.

▲ 박연희 수필가, 전동포모니터링단장, 재한동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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