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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련 세상보는 눈]예쁜 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육아일기
정련  |  9420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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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6  13: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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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련 본지 칼럼니스트
 [서울=동북아신문] 나랑 똑같은 딸을 낳아 손잡고 여행 다니고 수다 떨고 싸우고 삐치고, 이런 상상을 오랜 시간 해왔다.

시댁에 첨 인사 갔을 때, 큰 아주버님의 큰 딸이 또래라, 그 방에 숨어서 즐겁고 조용한 3일을 잘 보내고 왔다. 그 때 그 조카는 대학생이었고 당연히 나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잘 챙겨줬다. 아무 준비 없이 간 나에게 자기 홈웨어를 빌려주고 말동무도 해주면서 말이다. 그 때 막내삼촌 여자친구 구경하느라 온 가족이 모여들었고 작은 아주버님의 딸도 같이 와서 셋이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게 그때 작은 아주버님의 딸은 고3이여서 진로 고민이 한창이었고 야무진 이 아이는 나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대학 진학은 안하기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 사촌 언니는 사촌 동생에게 니가 생각하고 있는 하고 싶은 일이 어느 정도 인 건지, 대학이라는 것이 인생에 필수가 아닐 수 있어도 나중에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밑 걸음이 될 수는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며, 언니로서 진로에 대한 언니의 생각을 이야기 해주면서 진지하게 함께 고민했다.

동생의 고민을 함께 하고 동생의 진로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런 자매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 큰 조카는 여장부 스타일이고 그 사촌동생인 조카도 강단 있고 소신 있고 손도 야무진 아이였다. 그리고 이들은 부모, 가족, 사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월급 받아 사촌 동생에게 예쁜 옷을 사주고 싶어하는 아이들이며 알아서 차 끌고 할머니 찾아 뵙는 마음 따뜻한 아이들이다.

“요즘 애들”을 비속어 처럼 쓰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이 세대차이를 이해와 극복하고 싶어하지 않은 어른들의 보호막 같은 것인지 “요즘 애들”의 자기 중심적인 조금 지나친 것 처럼 느껴지는 그런 부분인 것인지. 내 입장에서 바라본 이 “딸”들은 “요즘 애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렇게 이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시댁에 대하여 좋은 첫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결혼을 결심하는 마음의 게이지가 10이라면, 그날 3 이상은 확보하고 가지 않았나 싶다. 이런 아이들을 키워 냈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님들이 바르고 고운 마음으로 고운 애정을 나누면서 오랜 시간을 살았다는 모습으로 나는 읽었다.

결혼식 날에도 두 사촌 자매가 와서 도와줄 친지 가족이 없는 나를 위하여 신부 뒷치닥꺼리를 다 도맡아 주었다.

결혼할 그때 중딩이었던 조카가 있다. 그 아이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준생 계열에 들어섰다. 내가 한국에 와서 살고 있던 만 11년 동안은 “여중생”에 대한 전설같은 스토리가 한창 왕성하던 시기를 지나 등골 점퍼의 시기를 지나 부모가 신용카드인 고졸 축하 여행이며 이런 것들이 마이너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회자되던 시기였다. 나는 그냥 노파심에 “등골 점퍼” 없으면 진짜 학교 생활이 힘든 건지 물어봤다. 내가 그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는 아무 주저 없이 당장 손잡고 가서 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이 아이는 그런 거 필요 없다고, 그런 거 밝히고 언론에서 이야기 하는 그런 친구도 간혹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더 많고 자기에게는 착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이 아이는 몇 안되는 고딩 때까지 엄마 손잡고 장도 보고 명절 때마다 전도 다 붙여주는 그런 아이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시간을 쪼개서 알차게 지내면서 아르바이트로 해외여행도 스스로 다니고 엄마의 살림에도 보태면서 여유가 나면 스스로 자산관리도 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도 친동생 같은 사촌동생이 있다. 그 아이도 나름 유복하게 사랑 받으며 잘 산 아이인줄로만 알았는데,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어릴 때부터 만원, 2만원씩 모아온 통장으로 스스로 졸업여행을 준비하였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당장이라도 여행경비를 보태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요즘 애들”, 나에게 요즘 애들은 이런 애들이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딸들을 키워 냈을까.

나는 참 잘 봤던 것 같다.

내가 남편을, 그와 함께 시댁을 선택한 아주 중요한 이유에는 사람들의 성품과 따뜻한 마음이었던 것 같고, 아이들을 통하여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그러한 성품과 따뜻한 마음 덕분에 지금도 행복하고 편안한 결혼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딸을 낳게 되면서, 나와 남편은 이 아이들의 미래, 진로, 자산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단 한번도 시작해본 적은 없으나, 이 아이들을 어떻게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배려도 할 줄 아는 “반듯한” 아이들로 키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시댁 가족들에게 보고 배운 것대로, 나와 남편이 스스로 “반듯한” 사람이 되고 사람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배려를 습관으로 가져가는 모습으로 살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 들이었고 그렇게 잘 만났기에 하던 대로 변함 없이 살기로 했다.

우리는 “부모가 어떻게 그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의 사랑이고, 엄마 아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꿈과 인생, 그리고 우리들만의 사랑인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생활을 해나가는 동반자이기에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거들어주고 도와주고 궁금해하는 것을 같이 경험해주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가족의 모습이다.

예쁜 딸을 키워내기 위하여 우리가 하는 첫번째는 우리끼리 사랑하고 우리의 가족을 사랑하고 우리 가족과의 순간순간을 즐겁고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족은 자고로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여야 하는 것 같다.

아이가 아픈데 어떻게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엄마를 보러 갈 수 있어, 무슨 엄마가 그래,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다 아프면서 크는 것이고 몸이 아프다가 나으면 건강해 지겠지만, 엄마는 나의 얼굴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 나에게 엄마냐 딸이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엄마예요”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그건 시어머님도 똑같은 “엄마”이다.

첫째가 할머니가 너무 예뻐서 껴안고 싶어하는데 “싫어요”라고 했던 적이 있다. 나는 2살짜리 아이에게 이렇게 대화를 했다.

“사윤아, 할머니는 내 엄마야, 사윤이는 엄마 사랑하지?”

“응.”

“사윤이는 누가 사윤이 엄마 싫어,, 라고 하면 속상하지?”

“응.”

“엄마도 그래, 사윤이가 내 엄마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그거 좀 부탁해도 될까? “

두살 남자아이 20명을 놓고, 전지현과 모 개그우먼의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20명 모두, 한명도 열외 없이 전지현한데만 갔다고 한다. 어린 아이의 마음에, 예쁘고 젊은 얼굴이 아닌 “할머니”를 막 껴안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시간이 필요하고 애정이 필요한 일인 것은 원초적인 동물적인 느낌의 일인 것은 알겠지만, 이 아이는 그 이후에 할머니에게 “싫어요”를 하지 않았고, 허그도 해드리고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훨씬 따뜻하고 훨씬 많은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순수하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예쁜 딸을 키워내기 위하여 하는 두번째 노력이 그런 것들을 믿어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엄마의 자기 인생에 대한 “욕심” 때문에 너무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생 후 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 어린이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과 아이들의 맑고 행복한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를 맡겼고 우리 아이를 돌봐주는 선생님과 원장님을 우리의 어머니처럼 고마워했다. 사윤이(첫째)가 한돌이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한돌이 되어 첨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가 들어오게 되었고, 엄마와 헤어질 때마다 너무너무 슬프게 울었다. 사윤이는 한참이나 더 큰 언니처럼, 와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괜찮아, 괜찮아, 이리 와, 나랑 같이 놀자, 하면서 챙겨주었다.

사율이(둘째)가 태어나 똑같이 3개월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다. 적응을 위하여 나는 사윤이를 보내 놓고 한참 뒤에 몰래 사율이를 놓고 나왔다. 신기하게도 4살 난 사윤이는 울음소리를 듣고 선생님께 “선생님, 우리 애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선생님께서 사율이가 왔다고 알려주자 사윤이는 영아반 창문앞에 얼굴을 대고, “우리 애기 잘 자고 있죠”, “우리 애기 울어요”, “우리 애기 맘마 먹었어요?”하면서 챙기기 시작한다.

선생님께서 농담으로 사윤이 눈치 보여서 사율이 데리고 있기 힘들다고 하신다.

둘째마저 그 영아 어린이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원장선생님과 함께 울었다. 고맙고 아쉬워서. 요즘도 이 아이들은 장난감 중에서 예쁜 것들을 골라서, 그리고 자기들에게 작아진 예쁜 옷들을 골라서 “초원어린이집”에 갖고 주자고 한다. 어린 동생들의 여벌 옷으로 쓰고 장난감 놀게 하고 싶다고.

아이들은 스스로 사랑을 먹고 사랑을 베푸는 법을 배운다.

사윤이가 4살 때, 내가 일찍 퇴근하고 데리러 간 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일찍 데리러 오면 안되? “

“그런데 사윤아, 엄마가 그렇게 하려면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게 되고 추리닝에 집에서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일하다가 와서 너 데려가고 해야 하는데…”라고 했더니, 사윤이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니야, 미안해, 그냥 가끔만 일찍 와주면 되”라고 한다.

사윤이도 엄마의 인생이 어떤 의미인 것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존중하려는 넓은 마음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비비적 거리면서 가족이 되어 주고 있었다. 

사율이가 태어나고 나서 사윤이가 조리원에 동생을 보러 왔다. 나는 애기를 방에 데려와서 사윤이에게 안아보라고 했고, 사윤이는 만지면 사율이가 부셔질까, 너무너무 조심스럽게 만졌다.

우리는 사윤이의 언니로서의 책임감과 교육관을 믿고 있고, 사윤이의 동생에 의하여 생기는 스트레스를 이해해주고 있고 사윤이의 동생에 대한 질투와 부모에게 목마른 마음을 안아주고 있다. 말 그대로, 아이의 진심을 믿고,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윤이가 3살 땐가, 그림책에 코끼리 그림을 보고 하마라고 신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아 사윤이는 하마로 봤구나, 그렇게 보이겠네. 라고 하면서 하마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우리는 부모는 아이에게 틀렸다고 지적질 하고 정답이 무엇이라고 가르쳐주고 인생의 그림을 그려주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요즘도 출근할 때면 사윤이가 내 옷을 골라준다.

얼마 전에는 아빠가 자기 사진을 보내면서, 오늘의 넥타이를 사윤이가 골라줬다고 한다. 사윤이가 여러가지 색상 중에, 이 색상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색상이니, 아빠가 이거 하고 가면 회사에 여직원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단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그냥, 이렇게 예쁘고 따뜻하고 씩씩한, 자기만의 꿈과 욕심과 잔머리마저 다 장착된 이런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시댁의 폭풍 사랑 속에서 이 아이들은 가끔 잔머리 굴려가면서 엄마에게 이겨 먹는 방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믿음직한 가족들에게 엄마도 새 며느리가 아닌 이상 이제는 그것 마저도 먹히지 않는다. 지난 번에 기가 막힌 해프닝이 있었다.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있을 때 사율이에게 감기약을 먹이려고 했더니 약이 싫은, 평소에 어디 다쳐도 울음이 1분 이상 가지 않는 이 아이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 대로 할머니와 큰아빠는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셨고, 천천히 먹이라고 안절부절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촌 언니 방에 사율이를 들어다 놓고 불을 켜놓고, “다 울고 나서 엄마랑 이야기 하자, 엄마는 울면서 말하는 아이와는 대화를 할 수가 없어.”라고 하고 놓고 나왔다. 난리가 났다. 애가 놀란다, 경기 한다… 그런데 갑자기 울음소리가 잠깐 끊기더니 다시 이어진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율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 아이는 나의 예상대로 들어가는 순간 울음은 없었고 울음 소리만 내고 있었으며 잠깐 끈긴 그 시간은 물병을 열어 물을 마시고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한창 물병을 닫고 있었다. 나는 빵 터졌고 온 가족이 빵 터졌다. 사율이는 말 그대로 딱 걸렸고, 이제는 약을 안 먹겠다는 그 어떤 잔머리도 안 통할 것이 뻔하니 그냥 순순히 약을 먹었다.

가끔 누워서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시끄러운 소리, 우리 집의 구석구석, 옆에 와서 애정을 구걸하는 남편, 이 모든 것을 보다 보면 우리는 생계를 끌고 가는 이 시대의 중년이 아닌, 그냥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진지할 것도 심각할 것도 없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달달하고 따뜻한.

오늘도 막 대졸인 조카가 과자를 사 들고 동생들을 보러 왔다.

우리 딸들은 신이 나서 엄마 아빠 미용실에 가는 데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훌쩍 내보내 줬다.

우리는 지금도, 이대로 살기만 하면, 따로 키우거나 신경 쓰지 않아도 이 아이들은 “예쁜 딸들”로 “만들어 질것”을 믿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아이들은 웬만한 일이 자신에게 닥치더라도 꾸역꾸역 잘 이겨내고 행복한 여자의 모습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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