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향미 : 장춘중의학원 졸업. 중국 천진서 번역회사 운영. 청도 모병원 출근,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수필, 칼럼 다수 발표
[서울=동북아신문]수필이라는 끈을 붙잡고 허겁지겁 달려온지 3년째, 글쓰기가 힘들고 고통스럽다. 스스로의 기준이 무엇인지 딱히 모르면서 그 기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안간힘, 안개속을 걷는 불안함과 막연함, 이것이 내 수필쓰기이다.

소속 문인회에서 원고 모집이 있을때마다 항상 마감일에 쫓기며 허우적댄다. 작품 창고에 원고를 쌓아두고, 필요할때면 성격에 맞는것을 택해 보낸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항상 꼴찌자리를 면치 못하고 마감일을 넘겨가며 식은땀을 흘린다. 무엇을 쓸까? 독자들과 어떻게 만날까?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머리속이 하얗게 엉클어지고 복잡해진다. 내 글쓰기는 언제나 마감시한에 맞춘 짜내기식 글이 될때가 많다는 사실이 날 괴롭힌다.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어도, 주방이 뒤죽박죽이여도,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모니터앞을 떠나지 못한다.

글감을 잡아놓고 단숨에 써내려갈듯 흥분하지만, 몇시간동안 앉아있어도 글 한줄도 쓰지 못한다. 야심한 밤, 고즈넉한 정적속에 마음을 담그고 있으면, 파릇한 감성이 움틀꿈틀 살아나면서 머릿속에 반짝이는 온갖 단어들이 글줄기 되어 달려나올 것 같다. 그러나 글이 막히고 얽혀 가슴을 꽉 메울때면, 절망의 늪에서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건져올리려는 힘겨운 글쓰기에서 그만 빠져나가고 싶어진다. 자신에 대한 불안과 의심으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쓰고픈 욕망은 넘치는데 도무지 써지지 않는 수필, 기나긴 숙고의 시간끝에, 고통의 끝자락을 붙잡고 가까스로 태어나는 작품은 엄마의 뱃속에서 막 태어나는 자식과 같다 하리라. 그래서 정성들여 글을 만들고 애지중지 예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글쓰기 고행은,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엄마의 고행, 자식같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고역이다.

임신을 위해 매달 어김없이 생리를 하고 자궁밭을 가꾸고, 그 밭에 씨앗을 심어 열달동안 품고 애정을 쏟다가 피부가 늘어터지고, 뼈가 벌어지는 고통을 견뎌 출산의 기쁨을 맛보듯이, 글을 쓰기 위해 창작의 자궁밭에 글감이라는 씨앗을 착상시키고, 영양을 공급하면서, 마침내 작품을 출산할때의 그 희열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래서 출산할때의 고통을 잊고 또 글을 쓸 마음이 생기는가보다.

임신후 물 한모금 먹지 못할 정도로 입덧이 심했다. 귀가시간이 늦어진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어둑스레한 방안에 홀로 앉아, 죽고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황혼녘의 기억이 생생하다. 예쁜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축복의 시간을 보낼 줄 알았던 임신이 왜 그토록 힘들고 아팠는지, 막연한 불안감과 기쁨이 교차하는 열달을 보냈다.

산고속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감히 눈을 뜨지 못하고 주변의 반응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신성하고 감미로운 분위기가 폐부에 닿아올때에야,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는 감동에 온 몸을 떨며 행복에 빠졌다.

“어머, 얘 눈이 삼각눈이네. 쪽 째졌어” 동네분 말씀에 또 한번 신경을 바짝 세운다. 내 몸에서 낳은 자식이 못생겼다는 평에 부끄럽고 초라한 마음이 드는것은 어렵게 탄생한 작품이 혹평 받을때의 좌절감과 같다고 할까. 

원고지 분량을 겨우 채우고 천신만고끝에 완성된 몇편 안되는 글들은 사람들앞에 얼굴 내밀기가 못내 쑥스럽고 무섭다. 어쩌다 해안선이라는 위챗 공중계정에 내 이름 석자가 찍힌 글이 발표되면 어서 빨리 다른 내용에 밀려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공포심이 발동된다. 여느 사람들처럼 본인의 작품을 모멘트에 버젓이 올려 널리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아직까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독자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수필쓰기를 시작해서부터, 수필을 너무 높이 생각하고, 적당히 버무려 써내는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성격에서 기인한것이리라.

정주고 사랑주고 뼈마디를 늘리는 고통을 인내하며 내 몸에서 출산시킨 수필은 아무리 못나고 추해도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면 될것을, 그게 잘 안되는 것은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사무치게 꿈꾸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달고싶다. 

아직도 나는 수필을 잘 알지 못한다. 부족함 투성이다. 스스로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제대로 가고나 있는건지? 안개속을 걷는 불안함과 막연함속에는 안개너머 저편에서 꿈틀대고 있을 밝은 햇살을 잉태하고 있어, 여태껏 겪었던 고통을 상쇄할만한 짜릿한 기쁨을 맛볼 그날이 꼭 오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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