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수 교수(호주 모나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 학과

[서울=동북아신문]한국에서 굵직한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대한민국이 어느 나라 못지않게 선진국가로서의 형식은 갖췄지만 내용이 미흡하다 보니, 그로 인하여 고통을 겪는 국민들이 줄을 이어왔다. "이게 나라냐?"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뒤죽박죽인가를 대변하는 질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회 청문회, 영장 인용/기각에 관한 뉴스에 이례적인 관심을 가지며 밤잠을 설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나는 때로 나 자신이 "한국 사람이기보다는 호주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생각이 지난 6개월간 무너지고 말았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재건설을 간절히 빌었다.

한국 정치의 수준을 얕잡아 보려는 주변의 동료들에게, "한국 사회나 호주 사회가 부패한 정도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고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뿐, 어느 사회이든 불공평하고 부패하다"는 나의 한국 사회 변호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왜 개운치 않았을까?

여러 번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진보적 시민의식이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소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된다. 질서 있고 평화로운 군중집회는 많은 외신들을 감동시켰음엔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에 보여준 질서와 평화가 난국을 이겨나가는 한시적 시민의식을 보여준 건지, 군중심리에 근거한 건지, 아니면 한국에 정착된 시민의식인지는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는 생각이다.

확실한 것은 한국 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조차도, 모범적이고 상식을 따르는 고위 지도자, 공직자, 기업가가 눈에 띄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죽하면 김영란법의 도입이 필요했을까? 지도자들이 국민을 아끼고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그리도 힘들까?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 못지않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기호 2번 홍준표의 높은 득표율이었다.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고서도 보수에 대한 그리움을 져버리지 못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이나 태극기를 든 사람들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엔 큰 차이가 없음을 믿는다.

단지 역사를 이해하는 사고, 방법, 그들의 이상이 다를 뿐이다.

그들 모두가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음이 한국 민주주의 토양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어떤 토픽에 관해서든 건설적이고 진지한 논쟁을 할 수 있고 상대방의 의견을 배려하는 문화야말로, 같은 민족으로서 공생, 번영하는 냉철한 지혜가 아닐까?

국가 재건설과 번영은 지도자의 지도력 못지않게 국민의 시민의식이 받쳐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의 선진화가 가장 시급하다.

한국 사회의 병폐 대부분은 권력의 남용과, 기업이 지나치게 재벌 위주로 경영되는 것에 기인한다.

한국 사회로부터 독재 정치는 물러갔지만 민주 정치는 자리 잡지 못했고, 경제발전은 이루었지만 경제의 민주화 그리고 부의 적절한 분배는 미흡하다. 정치와 경제의 구조를 바로잡지 않으면, 개인의 행동양식이 주어진 병폐적 구조를 이용 또는 악용하는 과정에서 구조는 더욱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런 사회의 구성원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사회구조도 개인도 ‘괴물화’된다는 것이다.

악순환의 계속이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재정비해야 할 지배 구조, 기업 구조, 부의 적절한 분배, 균등한 기회, 책임 있는 미디어, 그리고 남북 관계 증진을 통한 통일전략 모색 등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기대된다. 완장만 채워주면 안하무인이 되는 성향이 허락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을 단지 기업주의 부를 늘려주는 기계로 생각하는 기업인을 찾아보기 드문 사회로 한국 사회가 한 발짝 진보하길 기대해 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큰 실망을 가져올 것임이 뻔하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행동양식이나 정치/경제구조는 2-3년 안에 변화/정착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정치/경제 구조가 부패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변화의 기틀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 대통령의 거침없는 개혁 행보는 이미 시작됐다. 문 대통령이 업무 첫날부터 야당 지도부를 찾아 협력을 구했지만 청와대 인사발령, 내각 구성원들 내정자에 대한 독설은 이미 시작되었다. 건강한 야당은 정치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보수정당은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피차간에 생각과 이상은 달라도 궁극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정치인이든 시민이든 관계없이, 촛불을 들었거나 태극기를 들었던 것과 무관하게,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의 희망이 지나친 이상일 뿐일까? 한국 사회가 집안싸움에 빠져있을 때, 세계화 시대의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자국의 국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자칫하면 한국은 그들의 이해득실에 휘말리기 십상이란 말이다.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로 남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고래’가 되어 맞서야 하는 것만이 남아있는 선택이지 않는가?

국가 재건설은 대한민국이 ‘고래’가 되기위해 필요한 발걸음이다.

탈 권위적 태도로 국민과 소통하고 청와대 직원들과 일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은 보기 좋을뿐더러, 상식이 통하는 인간관계의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성패는 개혁과 민생의 향상으로 심판받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는 것이 보기 좋았지만, 값비싼 고급 음식을 먹어도 좋은데 대통령으로서 민생을 돌보는 영향력을 보여달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있었다. 이제 출범한 문재인 정부와 국민들이 다시금 국가 건설을 시작한 이때에 재호주 동포들이 뜨거운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 분노의 촛불이 번영의 횃불로 승화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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