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숙: 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서울=동북아신문]별빛이 내리는 고요한 밤, 나는 사색의 마차에 몸을 싣고 드라이브를 한다. 나의 처녀작 수필들을 다시 쭉 읽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처녀작인 것만큼 글의 짜임새가 그리 매끄럽지 못했지만 풀 속에서 피어나는 민들레의 향처럼 순수하게 느껴졌다. 새벽까지 글을 쓰던 그 때의 열정을 생각하면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지면서 살짝 미소가 피어오른다. 지적 욕망을 위해 열심히 독서 필기와 요점정리를 하던 모습이며, 어디를 가나 늘 글과 연관하면서 감상하던 그 시절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는 동안 행복한 일 중에 하나는 혼자의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했나 보다.

그런데 요 몇 달 째 나는 글쓰기도 손을 놓고, 예전에 적극적으로 다니던 단체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그 것은 내가 꿈꾸던 일이 한때 피었다가 지는 목련의 운명처럼 부딪치고 사라지면서 생기와 열정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쉬면서 독서와 산책으로써 나의 모든 것을 대신하였다. 어쩌면 그 속에서 또 다시 나를 찾을 수도 있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나를 응원해주고 도와주신 이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실패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책과 산책은 나를 위로해주었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지적해주는 듯하였다. 인생은 선택이었다는 것도, 어떤 일을 하 든 간에 잘못된 동기를 조금이라도 깔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꿈은 꾸되 너무 황홀하게 꿔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분야의 전문가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일정한 지식과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그 동안 “삶에 대한 태도”와 나의 경제 관리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면서 환상적인 꿈에서 헤어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어두운 외길에서 나는 삶의 진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는 물건을 가두어 인공적인 조명을 쏘는 쇼윈도의 빛도 있고, 하늘에서 스며드는 신선한 자연의 빛도 있다. 나는 독서를 통해 내 마음을 비추는 쇼윈도의  빛을 받았고, 자연의 빛을 받으면서 다른 질서를 보기 시작하였다.

독서를 하면서 내 마음의 병을 스스로 진단해보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실패 사례들에 비해보면 나의 좌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처 받지 않은 삶이 오히려 두렵다는 데서 위로를 받고 분발의 힘을 얻는다. 아픈 마음은 우선 스스로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도리를 깨닫게 된다.

산책길에 나서니 눈앞에 펼쳐진 자연은 난생처음 본 것처럼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람에 살랑살랑 고개를 젓는 키 낮은 꽃들과 작은 풀들은 정겹고, 선하고, 생생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속상했던 일을 금세 잊어버렸다. 무거운 생각들이 바람에 사라져버렸다. 그래, 내가 보는 것이 풀과 꽃, 나무가 전부다. 자연은 나의 정원이었고, 나의 열정이었고, 나의 연인이었다. 나는 자연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친밀한 교분을 가졌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속삭이기도 하고, 포옹하면서 예쁜 꽃들에게는 키스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때로는 사람들에게 밟히기도 하지만 비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 면은 내려  놓을 것을 내려놓을 줄 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의 즐거움도 슬픔도 쓸쓸함도 편차 없이 다 받아준다. 그 동안 내면의 자아를 드러내지 못 한 채 표면에 숨어서 살아온 듯한 자책감에 머리 숙여졌다.

자연 속 에 있노라니 언젠가 읽었던 시 한수가 떠올랐다.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이룬 것

저울질 해보니
자랑할게 별로 없구나

내 아느니
많은 날 헛되이 보내고

화살처럼 날려 보낸 좋은 뜻
못 미치거나 빛나갔음을

하지만 누가
이처럼 손익을 따지겠는가

실패가 알고 보면 승리일지 모르고
달도 기우면 다시 차오르느니

나에게도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도 있으리라. 진정 별로 자랑할 게 없지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현실사회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문화적 차이의 측면들을 찾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소통의 방식도 연구하며 배울 수 있었다. 그 것은 앞으로 똑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글로벌 시대에 적용되는 것이다.

실패는 고통뿐이 아니었다. 진정한 삶의 진리를 깨우쳐 주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환멸과 슬픔과 쓸쓸함 또한 우리의 생을 살게 하고 보다 높이 들어 올리는 힘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다가올 아름다운 여름을 맞이한다. 나의 식었던 열정도 처녀작을 쓸 때의 열정처럼 다시 타오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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